암 환자예요.
항암 치료하는 중인데, 다른 사람들은 살이 빠지던데 저는 엄청 많이 쪘어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기운이 없어서 거의 침대에 누워만 있다보니 근육은 다 빠져 버리고 지방덩어리가 되었어요.
머리도 다 빠져서 없어요. 팔다리에도 털이 하나도 없어요. 눈썹도 빠졌어요.
피부 착색도 심해서 얼굴은 흙 색이고, 이것도 부작용인지 피부도 다 뒤집어졌어요.
저도 제가 참 못볼꼴인거 알거든요. 성격도 원래 나빴는데, 치료받으면서 더 예민해지고, 부정적이고, 폭력적으로 악화되었구요.
감히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생각 안해요.
그래도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나봐요.
병 치료 전부터 호감이 가던 오빠가 있어요.
잘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얼마 안되서 진단받고 안되겠다고 포기했어요.
그런데 치료 받는 내내, 항암 들어갈 때마다 전화해주고. 힘든거 이야기 들어 주는 게 너무 좋았어요.
치료받기 전 몸 상태 그나마 괜찮을 때는 차라도 한 잔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게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저 병 생기고 이쪽으로 공부하더니 좋은 정보같은 것도 많이 줘서 늘 고마워하고 있었고요.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푸념을 했어요. 나는 결혼도 못 해보고 죽겠구나 라고.
지난 연애에서 많이 사랑받지 못했는데, 그게 내 인생의 마지막 연애라는 게 너무 슬프다고. 이렇게 못 생겨져 앞으로 어쩌냐고. 난 가망이 없다고.
안쓰럽게 이야길 들어주다가는, 지금은 어쩔 수가 없으니 마음 비우라고.
지금은 그저 치료 열심히 받고, 빨리 완쾌되라고. 다 나아서 살 빼면 사겨주겠다면서 모자 위로 머리를 토닥토닥 해 주더라고요.
내가 살을 빼면 너따위를 왜 만나냐! 하고 두들겨 패줬어요. 요즘 기분 안 좋았던 거 화풀이 할 겸 실컷 때리고 나니까 물어보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어떻게 생각하냐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그럼 5년 뒤에는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빨리 나아서 살빼라고 또 놀리길래 꺼지라고 투덜투덜 거리다 보냈어요.
모자 위로 토닥토닥 해주던 손길에 아직 설레어요.
완치 판정은 치료 완료 후 5년 뒤에 나거든요. 저거 청혼한건가 혼자 의미부여하고 심장이 콩닥콩닥 거리고 그러네요.
살빼라는 거, 원래 이쁜 여자 보면 정신 못차리는 사람이라 진심인거 아는데, 단순히 동기부여 해주는 거 일수도 있는데,
괜히 설레이네요.
쑥쓰러워서 잔뜩 때려주고 왔는데,
오늘 스트래칭 30분이나 했어요! 다른 분들 보시기엔 저게 뭔가 하실 거 아는데, 거의 안 움직이고 살았거든요.
조금 있다가 준비해서 등산도 갈 거예요! 가는 길에 돌아 올 것 같긴 한데, 일단 나가보려구요.
솔직히 저는 완치 가능성 버렸거든요. 5년 뒤에 제가 살아 있을 지 없을 지, 자신도 없어요.
살빼면 사겨준다는 말, 다른 상황에서 들었으면 진심으로 쌍욕만 나왔을 것 같네요.
그런데 그 말 이 왜 저한테 희망으로 다가왔는지, 신기하네요.
치료 잘 이겨내서, 운동할 체력 만들어서, 꼭 살 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