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똥이라는 놈은 참 야속한 놈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변기에 앉아있을 때는 쉽게 나오지 않고 중요하거나 결정적인 순간 특히 녀석이 나와서는 안 되는 방심했을 때
녀석은 세상에 등장하고는 했다.
제대 후 소개팅 정확히 말하면 내 인생의 미팅이 아닌 첫 소개팅 자리...
정확히 소개팅 3일 전부터 시작된 긴장은 약속 시각 30분 전 극대화됐다. 타는 목마름으로 아르바이트에 생수 한 잔을 요청해 마셨는데
그게 원인이었는지 물을 마시자마자 생수와 오장육부의 격렬한 갈등이 벌어졌는지 배에서 계속 꾸륵꾸륵 소리가 진동했다. 시간을 흘러
약속 5분 전 결국 나는 그녀와 성스러운 소개팅을 진행할 때 "죄송하지만 똥 좀 누고 오겠습니다! 이해하시죠?" 라 할 수 없어 남은 5분 안에 승부를
짓기 위해 다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 앞에서 좌절했다.
남녀공용....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바지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칸의 공용 화장실이었다. 다행히 사람은 없었다.
머릿속에는 "누가 (특히 여성이) 들어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런 절박한 심정을 이해했는지
집에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천천히 변기를 휘감던 녀석도 나를 도와 쿠알라룸푸르르르르 소리를 내며 기운 내고 있었다.
평소에는 애간장을 끓이더니 이런 중요한 날에 내게 힘을 주는 기특한 자식.. 훈련소에서 변비 걸렸을 때 시원한 쾌변을 보던 날보다 그날의
똥은 내게 더욱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졌다.
핸드폰 시계를 봤을 때 이제 약속 시간이 1분 남았다. 그녀가 이미 도착했을 수도 있었고 지금은 서둘러야 할 타이밍이었다. 신속하게 휴지를
손에 감은 뒤 뒤처리를 했다. 당당히 나가기 위해 문을 열려는 찰나 문이 열리고 여성 두 명이 큰소리로 대화하며 들어왔다.
내가 만일 지금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나간다면 두 여성은 깜짝 놀라겠지 하는 생각에 다시 좌변기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제발 그녀들이 굳게
닫힌 이 문을 두드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도 그녀들은 화장을 고치는지 그리고 맞은 편 좁은 공간에 혈기변성한 내가 움츠린
자세로 앉아있다는 것은 의식하지 않은 채 화장품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었다. 차마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그렇게 좋은 거면 저도 한 번 써봅시다.."
이럴 순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핸드폰을 들여봤다. 이미 약속 시간보다 7분이 지났다. 아직 그녀가 커피숍에 오지 않았을 거라고 나 자신에
최면을 넣으며 제발 그 두 여성분이 나가주길 기도했다. 정확히 9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두 여성이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또다시 밖에서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남자면 나가고 여자면..... 하아..
제발 소변기에 서서 쏴 자세를 취한 뒤 손도 씻지 않고 나가버리는 박력 넘치는 터프가이이길 기도했으나 흠흠.. 하는 헛기침 소리로 보아
여성이었다. 그 여성분은 내가 갇혀있는 문을 노크했다. 내가 만일 박력 있게 문을 두들긴다면 "어머 남자가 있었어!" 라며 놀랄 거 같아 손에
힘을 빼고 살짝 "여기 사람 있어요~~" 라는 신호를 보내는 연약한 노크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제발 나가길 기도했으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로 봐선 그녀는 기다릴 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장소가 **** 맞지? 그리고 시간은 12시 맞지? 도착했는데 없는 거 같아.. 커피숍에 남자가 없어 한 명도.."
헉.. 설마 나의 소개팅 상대인가.. 나는 그녀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전화 한 번 해보라고? 아까 문자 보냈을 때는 도착했다고 했거든..."
나는 마음속으로 "하지 마!!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를 외치고 있었다. 나도 참 병신이었던 게 그녀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을 때 빠르게
진동 모드 또는 무음으로 바꿨어야 했다. 하지만 당황한 마음에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이걸 어쩌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고 잠시 후 그녀와 내가
문 하나를 두고 있는 좁은 공간에 경쾌한 애니콜 기본 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
벨 소리가 울렸을 때 그녀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 먼저 나가 계세요.. 금방 나갈게요.." 라고 했고 그녀는 짧게 하지만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네.. 그럼 나가 있을게요." 라고 답했다.
너무 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어 그런지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섰을 때 문 앞에 한 여성이 웃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 숙인 내가 가리키는 자리로 향했고 나는 어미 소를 따라가는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비틀비틀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소개팅이 잘 될리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