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표현하기로 이 '망할나라'는 남자들이 할일이 참 많다. 한국에선 발렌타이데이는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주는 날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망할나라'는 애석하게도 남자가 뭘 받는 날은 father's day랑 자기 생일밖에 없다. 아니 저 아빠의날도 아빠가 아니면...(눈물/심지어 엄마의 날이 더 큰 행사임).
아무튼 그러하다.
나는 원래 기념일에 무심하다. 남편은 연애초반에 막 100일도 챙기고 200일도 챙기고 1년도 챙기고 했지만 나는 남편이 알려줘서 당일 날 알았다. 내가 챙기는날은 내 생일, 남편생일인데 그나마 둘이 생일이 3일차이나서 하루에 몰아하는 편이다. 애니웨이, 기념일 안챙기는 나한테 익숙해져 있던 남편은 여기에 와서 주변에서 다 하나같이 챙기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발렌타이데이 때 이곳 남자들은 자기여자한테 선물할 꽃과 주얼리, 가방 등등을 사려고 백화점을 기웃기웃 꽃집을 기웃기웃 그리고 길거리엔 너도나도 꽃과 선물가방을 들고 퇴근을 한다. 백발 할아버지도 손에 꽃을 들고 집에가는 모습을 본 남편은 대뜸 꽃을 사다가 안겼는데.. 내가 꽃 싫어한다고(안좋아하는게 아니고 싫어함) 100번 이야기 했는데 그걸 내 반응을 보고 이제서야(연애7년 결혼 약3년만에...) 진심으로 믿는거 같았다.
나는 입꼬리를 간신히 올려서 고맙다고 하곤 만지지 않았다.
남편이 그래도 내 생각했다고 사온거라고 하길래 그럼 선물도 내놔 했더니 그건 없다고 했다. 내가 반응이 없자 남편은 섭섭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넌지시 남편한테 브래지어 사주면서 입으라고 선물이라 하면 좋아할꺼야? 하고 물었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뭘 하면 좋겠냐고 물어서 에르메스 버킨백($10,000~) 현금으로 주고 사다줄꺼 아니면 굳이 기념일같은거 챙기지 말라고 다시 이야기 했다.
아무튼 남편의 발렌타이데이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내 지인들은 내가 너무하다 했지만 꽃 싫다고 10년 내내 이야기를 한 나의 의견을 묵살한 남편은 안 너무하냐고 반문해주니 조용해졌다. 남편은 다시한번 선물 주는건 어려운것임을 알았고 특히 물욕없는 사람에게 선물주기란 더더욱 어렵다는걸 안거 같았다.
그 날 남편은 자기전에 다시한번 이 '망할나라'는 남자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조용히 내뱉고는 잠이 들었고, 내심 연애초가 생각난 나는 잠든 남편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남편이 제일 좋다.
Ps. 애르메스 버킨백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나한테 5년만 기다리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