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다는 말을 붙이기가 힘드네요.
운은 제가 띄웠는데, 할말을 다 못 하고 울기만 했네요.
전 오랜 시간동안 함께했던 여자친구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어요.
제가 모질게 말하고, 여자친구가 울고, 그런 그림을 상상하고 결심했었는데 정 반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있는데, 여자친구가 오히려 저를 토닥여줬어요. 그래도 이쁘게 헤어져서 다행이라고.
참 강한 친구였네요, 되게 여린 친구일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면 또 울기만 할 것 같아서 여기에 써 봅니다. 공부는 안하고 맨날 핸드폰만 만지던 친구니까요.
얼굴보고 말도 못하고, 끝까지 찌질해서 미안해.
동아리 후배로 만나서 6년 하고도 4개월쯤을 더 함께 했었습니다.
저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내내 그랬고, 여자친구는 공무원준비도 하다가 취업준비를 하는 중이에요.
함께 학교 졸업하고 이쁜 미래를 그리고 있었는데..
매일 출근하는 길에 버스를 타면 항상 다른 사람들이 보이더라구요.
예쁜 사람, 사귀고싶은 사람 그런 다른 사람들 말고,
아침부터 회사가는 사람, 학교 가는 사람, 알바하러 가는 사람, 이른 아침부터 학원을 가는 사람들같은 부지런한 사람들이요.
제 여자친구는 참, 정말 다 좋았는데.. 이쁘고 애교많고 착하고... 딱 한가지가 절 힘들게 했습니다.
나만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말입니다.
정말 모두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고민만 많고 실천은 하지 않는 이 친구가 어느순간부터 힘들어지더군요.
나에게 기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20대에서 이제 30대로 넘어가는 순간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연애를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이자, 핑계죠.
먼저 취업하고 나니까 가까운 사람이 안보이더냐고 비난하면, 진심으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는 핑계.
물론 제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열심히 하고 있었을 그 친구의 노력이, 제 기대치에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그 옛날 어느순간부터 문득문득 들긴 했지만
30살이 되고 미뤄놓았던 졸업을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 되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너와 나의 인생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맨날 잔소리만 하고 정작 해주는 것도 없는데 옆에서 부담만 주고, 편하게 기댈 곳을 준 다는 것이 그만 너를 주저앉혀 혼자 뛰는법마저 잊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침 참 날씨도 춥지 않은 날, 퇴근을 일찍 하고 집앞으로 찾아갔어요.
변함없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여자친구를 보는데 미안한 마음에 표정이 펴지지가 않았습니다.
뽀뽀도 하고 안아도 보고...
마음을 먹고 나니 미안한 마음만 들더군요.
산책을 하자고 걷다가 운을 띄우고 울컥해서 더이상 말도 못하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먼저 말을 꺼내더군요.
정작 하려고 마음먹은 말은 하나도 못하고, 오히려 여자친구가 토닥여주는데...
이렇게 씩씩하고 강한 친구인걸 도대체 6년동안 왜 몰랐을까요.
2300일의 연애는 어느 선선하던 밤 그렇게 끝..
아 또 울컥하네요.
마무리?
추억의 책장을 덮었다?
네, 이쁘게 서로의 길을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
더이상 나의 품에 있지 않을 내 소중한 친구야.
그동안 정말, 정말로 행복했어.
너가 날 기다려준만큼 나도 널 기다려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너무 착하고 이쁜, 나에게 너무나도 과분하게 훌륭한 친구야.
비록 학교는 내가 먼저 떠나지만, 언젠가 소식 들릴때는 정말 부럽고 오늘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잘 되어 있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