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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3개월, 재충전의 3개월
게시물ID : freeboard_14915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靑香
추천 : 1
조회수 : 5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2/16 02: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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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글이 베스트에 많이 보이길래
도움이 될까 해서
저도 현재 겪고 있는 것 올려 보아요.

결게에 올릴지 고게에 올릴지 포고게시판에 올릴지 고민하다가
그냥 맘 편하게 자게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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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은 지금까지의 3x해 인생 중 최악의 한달이었다.
크게 두 사건이 한꺼번에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여파는 계속 되고 있고...


결혼하고 1년 넘게 주말부부를 하면서
생기면 낳고 안생기면 둘이 즐겁게 살지 뭐 하던 우리 부부의 생활에서
10월 거의 끝날때
테스트기에 나온 희미한 두줄에 너무 궁금해
결게에 질문글도 올리고
기대하며 산부인과에 갔더니
증상은 임신증상이 맞는 것 같은데
아직 아기집이 보이지 않으니 다음주에 다시 초음파로 확인하자며
피검사를 하고 돌아왔다.
축하합니다!
피수치로는 임신이 맞으니 1주일 후 오시라는 연락에
아직 확실치 않기 때문에 동네방네 소문은 못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뻐했었다.


이틀 후 아침
출근길에 피가 살짝 보였지만 착상혈인가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단 출근을 했지만
웬지 모를 예감에 걱정이 되어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더니
이 증상은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설명과 함께 다시 실시한 피검사
2~3일 사이에 다시 실시했기 때문에
임신이 유지중이라면 검사수치가 확 뛰어야 정상이라는데
나는 거의 변화가 없는 숫자...

'화학적 유산'...

의사는 실제로 착상까지 한 것이 아니라
테스트기에는 두줄이었지만
그냥 생리하듯 지나가는 유산이고
유산 축에도 끼지 않는 가벼운 증상이니 너무 안좋게 생각하지 말고
주말부부여서 임신이 잘 되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수정이 되지 않았느냐
두 분의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니
오히려 좋게 생각하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때까지도 나도 별 생각없이
그래 만약에 초음파로 아기집까지 봤는데 유산했으면
엄청 상실감이 컸을텐데,
미끄러진 셈 치지.
저런. 왜 꼭 자리를 잡지 못했니.
아쉽다. 이정도의 가벼운 느낌뿐.
만약 태명이라도 지어놨으면 더 슬펐겠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시 처럼...)
단지 테스트기의 흔적으로 지나갔구나
하고 그날만 조금 울적했고 다음날부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처음 산부인과에 다녀온 날 바로 주문을 해서
유산확인 전날 도착한 그 유명하다는 '임신출산대백과'라는 노란 책은
배송이 오자마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앞부분을 몇번이고 읽었지만
이제는 저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다.

진짜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쉽다. 
문자 그대로 아쉽다 는 생각이 다였다.


두줄이 나온 날은 마침 주말이어서
아침에 바로 남편한테만 테스트기를 보여줬을 뿐,
가족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다음에 다시 노력해보자.
그정도로 이번 작은 사건은 끝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전부터 직장에서 몇 달째 지속적으로 겪고 있었던
클라이언트의 불만과 요구사항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11월 말에


결국


내 이성은 폭발했다.




직장생활 다 그렇고 그런 거니
참고 버텨보리라 생각했지만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남편의 권유로 처음 정신과에 발길을 향했고
의사선생님과 인지치료를 시작한 지 2회가 지난 날.


직장에서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호흡곤란과 어지러움 증상을 보이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갔지만
온갖 검사결과 혹시나 걱정했던 심장쪽이나 다른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급하게 조퇴하고 찾아온 남편과 함께 오후에 정신과에 찾아가서
몇백문항짜리의 검사지를 풀은 결과
나는 공황과 중증우울증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날부터 리보트릴과 렉사프로라는 약도 먹게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휴직하는 것이 좋겠다는 진단서를 받아
직장에 제출하고는
짐을 싸서 바로 시댁으로 올라왔다.



12월 1월 2월...
벌써 3개월이 흘렀다.



무조건 빨리 이겨내고 떨쳐내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는 친정에서보다
오히려 내 병에 대해 이해해주고
내가 스스로 헤쳐나갈때까지 기다려주는 시댁에서
저녁에 퇴근해 올 남편을 기다리며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나는 친정에 양해를 구하고 시댁에서 계속 지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직장에다가 6개월정도 치료를 받으며 쉬겠다는 휴직서를 제출했고
시댁 근처에 있는 큰병원으로 진료를 옮겼다.


처음 11월 12월에는 약 때문인지 잠을 엄청 잤다.
깨어 있을 때도 계속 방에 처박혀서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천장의 무늬가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밥맛도 없어서 두숟갈만 먹어도 속에서 받지 않아 몸무게도 엄청 빠졌었다.
지금은 다시 입맛이 돌아와서 몸무게도 평소대로 되돌아왔지만...


기운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허무했다.
갑자기 이렇게 이상하게 변해버린 내 자신이 한심해보였다.
감정기복도 엄청 심해서
계속 우울해져있다가
조금이라도 기운이 생기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그냥 죽어버려야지 하고
진짜 죽으려고 생각한 적도 몇번 있었고
실제로 베란다에서 울면서 바닥을 내려다보며 뛰어내릴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엉엉 울면서
핸드폰 충전기 전선으로 고리를 만들어 머리를 집어넣은 적도 있었다.


처음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 병의 가장 주요 원인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라며 인지치료를 시작했지만
새로 옮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내가 유산을 겪었기 때문에
호르몬 등 신체적 변화도 있었을 거고 심적인 고통도 컸을 거라고 해서
처음에는 새로운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임신에 대한 마음이 조급해졌었나 보다.
주변 사람들, 친구들과 비슷한 나이에 고만고만하게 결혼하고
고만고만하게 알콩달콩 생활하고 있지만
평균적인 진도랄까,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부부에게
주변에서 주는 은근한 압박...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임신의 기미는 없고
게다가 주말부부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더 희박하고.
나중에는 아이 자체에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트 같은데 가면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도 엄청 짜증이 났고
그냥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도 싫고
아기,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싫었던 것 같다.
거기에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도화선이 되어 불이 확 당겨졌다고나 할까.
이젠 다 지나간 일이지만.


약을 먹은 지 두어 달 쯤 지나니
이제서야 일상적인 생활이 약간은 가능해졌지만
동네만 한바퀴 걷고 와도 체력이 금방 고갈되어서
바로 침대로 가 쓰러져 2~3시간 낮잠을 자야
에너지가 다시 충전될 정도였다.

아직 사람이 많거나 시끄러운 곳은 가기 두렵다.
그리고 감정컨트롤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는 감정소모가 힘들어서 보지 않고 오로지 뉴스만 틀어보고 있다.
(요새 하도 뉴스거리가 많아서 매일 봐도 새롭다)

어두운 것이 무서워 방 불을 항상 켜놓고 잠들었다가
이제는 수면등을 사서 켜놓고 안대를 끼고 잠이 든다.
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시키기 어렵고 역설적이긴 한데,
어두운 게 무서우니까 불은 꼭 켜고 자야 하는데,
불을 켜고 자면 눈이 부셔서 깊게 못 자고 잠을 설치기 때문에
안대를 끼지 않으면 안 된다...... 뭐 그런 논리다.


한달쯤 전부터는 (팬텀싱어 덕분에)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고
TV프로 다시보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는 나를 발견했고
설거지를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지지난주부터는 드디어 약을 줄여서 렉사프로만 복용하기 시작했고
내 가방에는 여전히 리보트릴 반알이 비상용으로 들어있다.

약은 자기 직전에 먹어야 하는데
아까 12시에 약을 이미 먹은 상태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오늘 잠자긴 글른 것 같다... 망했다. 벌써 2시라니.


잠은 여전히 매일 12시간 이상 자고 있지만
오후에는 그놈의 포켓몬이 뭔지
포켓몬고 덕분에 매일 30분 이상 산책 겸 운동을 꾸준히 나가고 있으며
3월부터는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원하는 악기도 배우려고 등록도 했다.


2월의 나의 월간 목표는 혼자서 광화문까지 가 보는 것이다.
거기가 포켓스탑의 성지라던데
가서 포켓볼도 양껏 충전하고
아프기 전에 지역 촛불집회에 딱 한번밖에 못갔는데
촛불집회가 끝나기 전에 꼭 가서 참여해 보고 싶다.



아프게 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이제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나는 나였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한 것 같다.
그 사이 새해가 찾아왔고, 겨울이 거의 다 지나갔다.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나는 
더욱 기운을 내어 알차게 놀아 보려고 한다.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못해본 것들도
체력의 무리가 없는 한에서
다 시도해 보고

내면의 에너지를 꽉 채워서
다시 복귀할 것이다.


꼭 건강해져서
남은 약도 끊고

나중에, 지금을 되돌아보며

그런 때도 있었지...
몸과 마음은 정말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지...

라고 회상할 날을 기다린다.


그런 날이 오려나?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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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힘 내시고
오늘 밤 안녕히 주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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