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沖繩)가 일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직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은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지요.
지난 5월 마쓰시마 야스카쓰(松島泰勝) 류우코쿠(龍谷)대학 교수 등 오키나와 지식인들은 ‘류큐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마쓰시마 교수는 일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태평양의 팔라우는 인구 2만명의 작은 섬이지만 어엿한 독립국”이라며 “인구 140만명인 오키나와가 독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요.
새로 결성된 학회는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했습니다. 주민투표로 과반수 찬성을 얻어 독립을 선언하고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UN 헌장과 국제인권규약이 주민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데다 팔레스타인이 지난해 11월 ‘옵서버 조직’에서 ‘옵서버 국가’… 로 격상된 점을 염두에 둔 것이지요. UN ‘탈식민지화 특별위원회’가 탈식민지화를 추진하는 ‘비자치령’ 명단에도 ‘류우큐우’(오키나와의 옛 지명)로 등록시킬 방침입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키나와는 약 130여년 전인 1879년까지 엄연한 독립국가였습니다. 1600년대 들어 일본의 침공을 자주 받다가 메이지(明治) 정권에 의해 강제 병합돼 오늘의 오키나와 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미국에 의해 1972년까지 점령당했다가 반환되는 운명을 겪기도 했지요. 1,0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일본에 귀속된 역사가 100년도 채 안 됩니다.
지난 2007년 현지 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 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42%에 달할 만큼 민족적ㆍ문화적 이질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홋카이도(北海道) 원주민 ‘아이누’처럼 언어도 전혀 다르지요.
오키나와 주민과 본토인들과의 갈등의 중심에는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이 있습니다. 지난 1995년 주일미군 병사가 12세 소녀를 끔찍하게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오키나와 주둔미군과 주민들 간 반목과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요.
헬기 및 수직이착륙기의 잇따른 추락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집권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가 주일미군 비행장을 오키나와 섬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일본 본토 주민들의 맹렬한 반발로 끝내 총리가 사임했다는 사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오키나와 지역 내 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1945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의 시간들이지요.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종전 교섭을 앞두고 본토를 지키고 일왕(히로히토)을 보호할 시간을 벌기 위해 오키나와를 방패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군이 상륙하면 남자는 사지가 절단되고 여자는 강간 후 처형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주민들의 집단 자살을 유도하고 강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섬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12만 여명이 목숨을 끊었지요.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왕의 전쟁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미군에 장기 조차(租借) 형식으로 넘기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오키나와를 두 번 버림 셈이지요.
이처럼 오키나와 주민들 가슴과 뇌리에 ‘대학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잠재돼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28일,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미 점령군사령부의 지배와 간섭을 벗어난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주권회복의 날’로 명명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미 점령군이 일본 정부와의 강화조약을 근거로 오키나와를 집어삼킨 ‘굴욕의 날’을 도리어 대대적으로 기념함으로써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좌절감과 배신감을 심어준 셈이 됐고, 이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분노와 공포에 기름을 부어버렸지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의 망언도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하시모토는 지난 4월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방문, “풍속업소(매춘업소)를 활용하지 못하면 미국 해병들의 성적(性的) 에너지를 제대로 컨트롤하기 어렵다”며 “주일 미군들이 풍속업을 좀 더 활용해주면 좋겠다”며 오키나와에서 매매춘을 권장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키나와 현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오키나와 여성들은 매춘업에 종사해도 괜찮다는 뜻이냐”며 하시모토를 맹렬하게 비난했지요. 미군 성범죄의 책임을 오키나와 매춘업 탓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오키나와의 젊은 여성들을 잠재적 매춘여성으로 비하시키면서 자존심마저 무너뜨린 겁니다.
일본 열도에 있는 미군기지의 74%(면적 기준)가 제주도보다 조금 큰 2,276㎢의 섬에 편중돼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일본 정부와 본토인들의 속내는 드러납니다. 골치 아픈 건 모두 오키나와에 떠넘기고 일본 정부와 본토인들은 실속만 챙기겠다는 거죠.
오키나와 현에 따르면 섬이 일본정부에 반환된 1972년부터 2010년까지 미군의 범죄 건수는 총 5,705건으로 월 평균 약 13건입니다. 특히 부녀자들을 상대로 한 성폭행이 빈번히 일어나다 보니 대형마트에서는 어린이용 ‘방범 부저(벨)’를 성인 여성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기지를 섬 밖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오키나와 주민 10만 명이 ‘오스프리(수직 이착륙 수송기) 결사 반대’를 외치며 데모를 벌였지만 결국 후텐마 기지에 오스프리가 배치됐죠. 기노완(宜野彎)시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비행장을 이전해달라는 요청도 수년 째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오키나와 독립 문제를 다룬 저서로 온라인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한 히가 코분(71) 기자는 한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까지 ‘독립’이라는 단어를 외치면 조롱받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기지와 결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립’일 수도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조금씩 하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오키나와 독립’이 단순 구호의 차원을 넘어설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내 보수 지식인들의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지요. 보수 월간지 ‘세이론(正論)’은 6월호에서 사고가 잦은 오스프리에 대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자체 조사를 통해 벽신문을 제작하도록 한 중학교 수업을 소개하며 “의무교육 현장에서 소름 끼치는 (반미) 세뇌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1월에는 우익단체 회원들이 집회에 참석한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매국노들은 일본에서 꺼지라”며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우익 논객들이 활동하는 사이버 커뮤니티에서는 “오키나와 좌익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활동자금을 박고 있다”는 루머까지 퍼지고 있지요.
이처럼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일본 정부도 살얼음판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아베 일본 총리와 루스 주일 미 대사가 ‘후텐마’ 기지 이전 시기를 ‘2014년까지’에서 ‘2022년 이후’로 변경하기로 한 것을 비롯 오키나와 현에 있는 5개 미군 기지·시설 반환 계획에도 최종 합의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과 일본 정부는 양국 외교·국방 장관이 참여하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이전 작업의 실마리를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거지요.
그러나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비행장을 또 다른 오키나와 지역인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로 이전하는 계획을 일본 정부가 강행하려 들 경우 오키나와의 상황은 일촉즉발 위기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일본 언론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극심한 국론분열과 적대행위에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어느 새 동북아시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오키나와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띤 모습입니다. 한국과는 독도로, 러시아와는 쿠릴열도로, 그리고 중국과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이 자칫 독립을 위한 내전에 돌입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지요. 이제 오키나와는 더 이상 작은 섬이 아닙니다.
이진우 (창조경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