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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낯선 아내와의 날들
게시물ID : panic_924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전증오나봐
추천 : 21
조회수 : 2759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7/02/15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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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당신은 몸서리치며 깬다. 잠시 버둥거리다, 부들 떤다. 그러고도 정신이 덜 돌아왔는지 아직 멍한 눈으로 여기저길 둘러본다. 그리고는 그제야 깨달았는지 혼자 묻는다. 여긴 어디지? 물론 당신 혼자 밖에 없는 방안에서는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없다. 아직은.
 
  하얀 방, 창문도 없고 문 하나, 책상 하나, 침대 하나, 그리고 그 침대 위 당신. 방안은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이 장소가 너무도 낯설다. 익숙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그냥 아예 생판 모르는 곳이다.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던 당신은, 잠시 생각에 빠진다. 아무래도 차근차근 과거를 떠올려 이곳이 어딘지 유추해보려는 것이겠지. 그러나 당신은 곧 더욱 당황하고 만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서다. 어제 일도, 그제 일도, 그보다 더 먼 과거들마저 하나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당신은 제일 무서운 사실만 떠올릴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질 모르겠다는 사실. 당신은 당황을 넘어 일순 공포마저 느낀다.
 
  잠시 시간은 지나, 간신히 마음을 다 잡은 당신은 일단 주변을 둘러보려는 듯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당신은 일어서지 못한다. 의아함을 느낀 당신은 다시 시도를 하지만, 다리가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뭐지, 뭘까, 당신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드러난 다리는, 양쪽 다 두꺼운 깁스로 감싸여 있었다.
 
  그 깁스를 보는 순간 당신은 다시 당황에 빠진다. 이거 왜 이래? 물론 당신은 왜 그런지 알 길이 없다. 결과는 이미 거기 있지만, 과정에 대한 것이 생각나질 않는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연한 것이겠지.
 
  당신이 한참을 다리와 이 장소에 대한 의문으로 방황하는 사이, 예고도 없이 방문이 열린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당신이 방문을 바라보자, 그녀가 밝은 얼굴로 들어온다. 그리고 일어난 당신을 보더니, 당신처럼 깜짝 놀란다. 왠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잠시 뒤 다시 웃는다.
 
  일어났어? 그녀가 당신에게 묻는다. 그러나 당신은 쉽사리 답하진 못한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처음 이 방을 둘러보았을 때 만큼이나 낯선 기분을 받았기에 그렇다. 당신은 결국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세요, 라고.
 
  그녀는 그 말에 잠시 멈칫, 거리다가 묻는다.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겠어요? 당신은 대답한다. 지금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걸요, 아무 것도 떠오르질 않아요. 그녀가 재차 묻는다. 아무 것도요? 당신은 대답한다. 아무 것도요.
 
  저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슬픈 어조로 대답한다. 그런 것치고는 왠지 모르게 밝은 표정이었지만, 당신이 그 사실을 궁금해 하기도 전에 그녀는 당신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럴 수도 있겠죠, 큰 사고였으니까요. 그리고는 웃는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당신의 아내인 제가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순간 알아듣지 못했던 당신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다가 반문한다.
 
  아내, ?
 
  네.
 
  그러니까 그쪽이 나의?
 
  네.
 
  그녀는 웃고, 당신은 입을 다문다.
 
  그리고는 당신과 낯선 아내와의 첫 번째 날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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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당신이 당신의 낯선 아내와 함께 한지 어느새 일주일이나 지났다. 꽤 답답하게 흐른 그 시간동안 당신은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당신의 이름은 강우진. 서른여섯 남자다. 무난히 굴러가는 중소기업의 사무원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휴직신청을 해둔 상태였다. 물론 그것은 당신의 아내가 당신이 깨어나기 전 모두 처리해둔 모양이었다. 당신의 이름은 조금 익숙한 발음이었지만, 역시나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 사이에서 아주 약간의 익숙함만 다가왔을 뿐이다. 이름마저 당신은 멀리 있는 기분이다.
 
  아참, 당신은 과거를 떠올리지 못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일반상식정도는 떠올렸다. 당신의 아내는 뭔가 해리성, 역행적, 뭐 그런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지만원인은 어차피 사고로 머리를 다친 거고, 결과는 기억을 잃었다는 거 뿐, 어쩐지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듣는 둥 마는 둥 넘겨두었다. 원래의 자신도 왠지 이런 이야기는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당신과 당신의 아내는 결혼한 지 벌써 육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뭔가 어색하게 서서 웃고 있는 결혼식 사진을 보았지만 역시 와 닿지는 않는다. 이 집은 결혼하고 모은 돈으로 얼마 전 이사 왔다고 아내는 전해주었다. 당신은 그럼 이 방은 누구 방이냐고 물었고, 아내는 당연히 당신의 방이라고 답했다. 이 방을 꾸민 게 누구냐고 묻자, 아내는 자신이 꾸몄노라고, 당신의 취향에 맡게 꾸민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취향, 취향이라, 잠시 되뇐 당신은 하얗고 휑한 당신의 방을 둘러본다. 이렇게 삭막하고, 하얗기만 한 방이 자신의 취향이었다는 사실이 뭔가 믿기질 않는다. 아니,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방을 꾸미는 센스가 이따구야, 불평을 내뱉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굳이 입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신의 취향이라지 않는가. 계속 지내야 할 당신 취향의 방.
 
  음, 그러고 보니 이것저것 짚어가다 하마터면 당신의 사고가 뭐였는지를 이야기 안하고 넘어갈 뻔 했다.
 
 
  당신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퇴근길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뺑소니를 당했다고 한다. 범인은 다행히 잡혔다는 모양이다. 그 뒤 이야기는 아내도 잘 모른다는 것 같다. 사고로 깨어나지 못하는 당신 걱정과 수발로 바빴단다. 당신은 그 사고 뒤 정신을 잃고 무려 한 달 가까이 깨어나지 못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덕에 당신은 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쩐지 양다리가 분질러지는 큰 사고를 겪고도 다른 곳은 큰 이상이 없는 것 같더니... 당신이 일어나지 못한 한 달간의 시간과 치료가, 다리를 제외한 다른 부위의 (아주 다행스럽게도) 경미한 것으로 그쳤던 상처들을 다 치유해준 모양이었다.
 
 
  뭐, 불행히도 그 시간이 당신의 기억은 되찾아오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니, 오히려 가져간 걸까? , 알 길은 없지만.
 
 
  당신을 치료한 의사는 만나지 못했지만, 당신의 아내는 아마도 사고 당시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고, 다행히 뇌 자체는 큰 문제는 없을 거라 했다. 애초에 기억을 잃을 정도면 큰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퇴원해 버린 뒤라 뭐라 하기가 그랬다.
 
  이 대목을 문제 삼을 즈음, 당신은 의사 대신 아내에게 문제제기를 했었다. 아니 왜 그리 빨리 퇴원을 했냐고, 다리가 이리 되고 정신이 안 돌아 올 정도면 더 입원하고 있었어야 맞지 않냐고. 그러자 당신의 아내는 조용히 웃으며, 나도 의사예요, 내가 당신을 돌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라고 고백했다.
 
  당신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당신에 대한 것만을 계속 다그치듯 물었을 뿐, 아내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이름은 이아름. 당신보다 한 살 어리다 했다. 의사고, 당신을 돌보려 현재는 쉬고 있는 중이란다. 당신은 아내가 어려워 보이는 단어를 이것저것 척척 알려주는 게 신기하던 참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다며 감탄했다. 그리고 자신은 대체 얼마나 잘난 사람이었기에, 겨우 회사원 주제에 의사아내를 둔 사람이었을까, 또 감탄했다. 감탄할 정도의 상식이 남아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감탄하면서.
 
  그렇게 아내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들으며 당신은 자신의 과거를 알아갔다. 그 과정에서 뭔가 떠오르기를 기대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당신은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아내는 기억을 찾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며 당신을 토닥였다.
 
  그리고 그렇게 토닥임을 받는 사이, 며칠이 흘렀다.
 
  당신은 이제 슬슬 참기 힘든 지루함 속에서 몸이 근질거림을 느꼈다. 당신 자신에게 남은 상식으로는 분명 티비와 컴퓨터와 핸드폰이라는 좋은 여가도구가 있음을 아는데, 아내는 그런 것을 전해주지 않았다. 이전의 당신이 싫어하는 전자도구였단다. 아 그래, 하고 당시에는 일단 넘어가고 말았지만... 일주일째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누워있기만 하다 보니, 슬슬 참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아내는 꽤 단호했다. 당신의 요구에 몸도 안 좋은 사람이 그런 도구를 이라는 둥, 이전 당신이 좋아할 리 없는 행동이라는 둥, 칼 같이 당신의 부탁을 거절해갔다.
 
  아니, 그래도 너무 심심한데... 라는 당신의 칭얼거림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당신의 아내는 차선의 방법을 선택한 듯했다. 산더미 같은 책을 가져다 준 것이다. 얘기로는, 이전의 당신은 독서광이었단다. 한 달에도 몇 십 권의 책을 사고, 읽고 또 읽으며 여가를 즐길 정도의 독서광, 책 오타쿠. 그런 것 치고는 방안에 책 한권도 없는 게 이상했지만, 서재를 두고 따로 관리했다는 대답에 아 그랬군,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가져다 준 책은 그 서재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일단 지금 뭐가 좋을지 몰라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가져왔단다.
 
 
  어쨌든 당신은 심심함을 달래려 책을 읽는다.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있어 (정말 막 집어온 모양이었다) 이전 당신이 어떤 취향이었는지는 알기 힘든 편이었다.
 
  어차피 당신은 심심함만 달래준다면 상관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책읽기가 재미없어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할 짓이 없으니까 읽었다.
 
  생각보다 책읽기가 힘들어서 놀랬다.
 
  다만 이전의 당신 좋아했다고 하니까더 참아봤다.
 
 
  그리고, 생각보다 책이, 너무나도 새 것 같아서, 아니, 아무리 봐도 새 책이 분명해서, 자꾸,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혹시, 아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불쑥, 당신의 마음에 의심이 싹튼다.
 
 
  그렇다고 한다면, ?
 
  무엇 때문에?
 
 
  의문 속에서, 첫날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의문은 더욱 커져갔다.
 
  그렇게 당신이 혼란해 하는 사이,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아내였다.
 
 
  무슨 일 있어요? 아내가 웃으며 물었다.
 
  어... 아니, 아무 것도. 당신은 쓰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녀는 그 대답을 듣고는, 말없이 침대가의 당신을 그저 내려다보고, 보고, 보았다.
 
 
 
  당신은 그 시선에 일말의 공포를 느끼며, 살짝 몸을 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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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의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당신은 아내의 행동 하나하나를 열심히 관찰했고, 혹시나 하는 과거에 대한 의문은 반드시 물어봤다. 물론, 아내의 대답을 믿지는 않는다. 그저 당신의 의문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일 뿐. 새삼스럽고 참 번거로운 일이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친절한 아내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당신은 믿었다.
 
  물론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어떤 질문에도 그녀는 순순히 답해주었고, 언제나 대답들은 그럴듯했다. 또한 당신을 보살피는 태도 또한 언제나 친절하고 정성이 담겨져 있었다. 그녀의 그런 태도 앞에서 당신은 매번 고민에 따져들었다. 내가 괜한 오해와 의심으로 그녀를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하지만 금세 당신의 마음속엔 낯설음이 가득 차고, 곧이어 의문은 점차 힘을 얻어갔다. 그래, 정말 내 과거라면, 내가 좋아했던 거라면, 이렇게 낯설기만 할 리가 없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그리고 꾸준한 의심 속에서, 수상하고 어긋난 부분들은 조금씩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리막을 구르는 눈덩이마냥 덩치를 불려갔다.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크게, 크게.
 
 
  그리고 마침내 오늘, 당신이 깨어나고 한 달 만에 당신은 큰 결심을 한다.
 
  아내를 협박하든 뭘 하든 해서라도 진실을 알아내고, 이곳을 벗어나자고.
 
  계획은 매우 간단하다. 식사시간이든 다른 핑계든 그녀가 다가올 때를 노려 어떻게든 제압하자는 것.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당신으로선 별 수 없다. 다리를 다쳐 걸을 수도 없는 환자로써는 그저 그녀가 다가와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연유로 당신은 조용히 식사시간만을 기다렸다.
 
  잠시의 기다림 뒤, 당신의 아내가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웬걸, 식판이 보이지 않는다. 여차하면 식사시간에 쥐어주는 식판이나 포크 같은 것으로 그녀와 다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겼던 당신은 당혹스럽다. 아니, 애초에 밥 먹을 시간이 맞는데 가져오지 않고 그녀만 들어왔다는 게 더 이상하다. 당신이 부른 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없이 들어온 아내가 왠지 점점 수상하다.
 
  당신은 혹시의 가능성을 잡아냈다. 설마 아내가 계획을 눈치 챈 걸까, 라는 가능성을. 생각이 그쯤 도달하자마자 당신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웃어버리지도 못한 채, 굳어버렸다.
 
  아니, 의심받을 행동은 최소화했는데- 하지만 또 혹시 모르는데- 내가 의심하고 있던 게 좀 티가 났을까- 아내가 알아채고- 나를-
 
  아내가 다가온다.
 
  무언가 말을 한다- 당신은 제대로 듣지 못한다.
 
  웃는다- 웃지 못한다.
 
  바라본다- 마주 보지 못한다.
 
  뭔가 내민다- 받지 못한다. 받지 못한 대신 그 팔을 당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신은 어느새 아내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행위에, 순간 당신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지경이다. 어쨌든 목적한 바대로 그녀를 제압하기는 했지만, 당황스러움을 떨칠 수 없다.
 
 아내는 얼굴을 찌푸리고 뭔가 말을 하려 한다. 당신은 당황한 채 다시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을 주며 다급히 묻는다. 진실을 말해, 말하란 말야, 다그친다. 아내는 뭔가 말하려 하지만 이내 켁켁 거리는 소리만 낸다. 당신은 아차 싶은데, 이상하게도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가질 않는다. 아내의 목에서 당신의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대신인지, 목을 조르는 당신의 손을 잡아끌던 아내의 손이 대신 떨어진다
 
  그녀는 고통스럽지도 않은지 어느새 웃고 있다. 그런데 왤까? 그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기분이 든다. 낯설고 먼 타인이 분명한 그녀의 그 웃음이, 처음으로 익숙하다고 당신은 느낀다. 익숙함 때문인지 당신은 목을 조르던 손을 풀고, 그녀를 내려다본다. 여전히 그녀는 미소를 띠고 있다. 다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상스러울 정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대로 죽은 모양이다. 웃으면서.
 
 
  당신은 깨닫기 무섭게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나는데, 내짚은 손에 뭔가 닿아온다. 아까까지는 없던 접힌 종이가 거기 있다. 그러고 보니 죽기 전 그녀가 뭔가 건네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이건가 싶다고 당신은 짐작했다. 자세히 확인해보려다가, 당신은 다시 웃는 모습으로 숨을 거둔 그녀를 한 번 바라본 후, 일단 방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간다. 방을 나가 확인하는 게 났겠다 싶은 판단이었다.
 
 
  나온 바깥은 매우 평범한(당신에게 남은 상식 안에서) 아파트의 거실 분위기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냐, 잠시 자신을 다독인 후 당신은 들고 온 종이를 펴본다.
 
 
  그녀의 편지다. 당신은 그것을 조심스레 읽는다.
 
 
 
[ 안녕, 당신.
 
  갑자기 이게 무슨 편지냐고 묻고 싶겠지?
 
  당신, 요즘 궁금한 게 늘어나고 있는 눈친데, 거기에 대한 답을 주고자 편지를 쓰기로 했어. 그러니까 되도록 끝까지 읽어주었으면 좋겠어.
 
  우선 당신이 지금 제일 의심하는 거, 그거 알려줄게.
 
  아쉽게도 나 당신 아내가 맞아. 의사도 맞고, 결혼한 지 육년 된 것도 맞고. 심지어 이 집, 우리가 6년 만에 모은 돈으로 새로 산 집도 맞고. 믿을 수 없어? 그래도 사실이야.
 
  물론 이 방은 당신 방은 아니야. 하지만 당신 취향은 맞아.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 이 방은 사실 당신이 꾸며준 내 방이거든. 나에게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은 당신이 나에게 새로 꾸며준 하얀 방. 날 가둬두곤 했단 감옥.
 
  매일, 내 목을 조르며 내려다보곤 했던 그 방.
 
  당신은 언제나 나를 사랑한다고 했었지. 처음 연애를 한 때부터, 결혼 하고, 얼마 전까지도.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강압적이고, 무서웠어.
 
  대체 언제부터 그 사랑이 무서워졌는지는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그 목을 조르던 손 때문인 걸 확신해.
 
  병원 회식이 끝나고 조금 늦게 들어온 날이었던 것 같아. 당신은 화를 내곤, 소리치더니, 내 목을 조르며 사랑한다고 말했지. 그 다음 날 간신히 일어난 나에게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당신을 보며, 불안한 예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사랑을 느꼈어. 한심한 일이지만, 그랬어. 그래서 당신을 용서했더랬지.
 
  물론 당신은 점점 심해졌고, 나에게 집착했고, 목을 졸랐어.
 
  이 집은 당신의 집착이 정점에 달했을 때 산거야. 나를 가두기 위한 집. 난 그걸 알고 있었지만 당신을 떠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온 것만 같아서 그저 끌려가듯 이곳에 오고 말았지. 어쨌든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서로 너무 삐뚤어진 채 멀리 왔지만 그래도 사랑했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당신이 너무나 무서웠어. 당신의 손길이 평소보다도 더 힘이 들어가 있었고, 당신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 거칠게 터져 나왔어. 그런 당신에게 목이 졸린 순간, 이대로라면 죽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간신히 당신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지.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현관을 뛰쳐나가 도망쳤어.
 
  그런데 정신없이 뛰는데 뒤에서 뭔가 쾅, 하더라고.
 
  당신이었어.
 
  날 쫓아 나온 당신이 나만 보고 달려오다가 그대로 사고가 나버렸더라고.
 
  그리고는 당신에게 말한 대로, 당신은 입원하고, 치료 받고, 그러다가 이상할 정도로 깨어나지 못하는 당신을 놔두기 힘들어서 집에 데려와 내가 간호하기 시작했어.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라고 해둘게.
 
  나말이야, 당신이 깨면 그대로 떠나려고 했어. 근데, 깨어난 당신이 나를 기억 못하고 낯설어 하더라. 의심 가득한 눈 대신 어딘가 강 너머 사람 보듯 거리감 느껴지는 그 눈에, 왜 갑자기 가슴이 뛰던지. 아마도 우리 처음 만나던 날, 어색해 하던 당신이 떠올라서 그런 걸까? 우습게도 말이야.
 
 
  그래서 당신을 못 떠났어. 그리고는, 당신의 기억이 혹시라도 돌아올까 봐 전혀 다른 과거를 열심히 지어냈지. 그런데 꽤 괜찮은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당신은 그게 아니었나봐. 어느새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더라. 그건 좀 무서웠지만, 이미 못 떠나버려서인지 다시 도망칠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
 
  다만,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것도 힘들고 지겨워. 그만 당신에게 사실을 말할까 해. 직접 말하기는 그렇고, 일단 이렇게 편지로 하기로 했어.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우리 있잖아, 예전에는 편지 참 많이 썼었잖아. 그냥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더라, 그래서 편지로 하려고.
 
 
물론 혹시라도 내 눈앞에서 당신이 기억을 찾고 다시 돌아올까 봐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긴 해.
 
하지만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이제는 상관없을 것 같아. 당신을 사랑하니까.
 
- 아름 ]
 
 
  당신은 편지를 다 읽었지만,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이게 무슨 소리지, 혼자 되놰본다. 다시 읽어볼까 하다가 멈추고, 다시 부스럭 편지를 펴봤다가, 다시 놓고. 그러다가 확 편지를 구기기도 하고, 구겼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 화들짝 편지를 다시 폈다가, 또 내려놓고, 다시 주워들기를 반복한다.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이 방황한다. 당신이 그러는 새 당신의 손에서 편지는 구겨지고 찢겨져서 조금씩 형체를 잃어간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은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처음 보는 기억이, 아니, 하지만 익숙한 무언가가 머릿속에, 마음에, , 나는, , 당신은, 그녀는, 우리, 아내, 당신, 그녀, 우리는, , , 아아아아아............................
 
, 난, 나는, .
 
.
 
...
 
 
......
 
 
.........
 
 
 
뭔가 머리가 아프다.
 
동시에 왜인지 몰라도 긴 잠이라도 잔 듯 멍한 기분이다.
 
내가 뭐 하고 있었지?
 
지금 몇 시야? 왜 이렇게 어둡지?
 
여긴 어디? ? 집에 있는 건가, ?
 
왜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러니까 어디보자, 분명 아내와 좀 다투고...
 
그래, 조금 격하게 이야기를 하다, 뛰쳐나가버린 아내를 쫓아 밖에 나갔었던 것 같은데.
 
, 아아, 머리가 다시 깨질듯 아프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전혀 모르겠다.
 
, 아내는 어디 있지?
 
대체 이 여편네는 어디로 간 거야?
 
혹시라도 그 사이 아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지?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내를 떠올리니 불안한 예감이 든다.
 
그녀를 찾아봐야겠다.
 
 
집에 다시 돌아왔을까?
 
아님 어쩌지?
 
아내는 어디 있지?
 
어떻게 하지?
 
그래, 일단, 일단은 그녀를 찾아봐야겠다, 아내를.
 
여보, 여보? 아름아, 어디 있어? 혹시 방 안에 있어?”
 
-----------------------------------------------------------------------------
 
 
안녕하세요!
 
이번 글은 이전에 3부작으로 예상하고 짧게 짧게 올렸던 [낯선 아내와의 날들]을 올리지 않았던 세번째 이야기와 앞부분 극소수정한 내용의 통합버전입니다 ^^ 
 
이걸 대체 몇 달 만에 마무리 짓는건지 제가 다 아득할 정도네요......(......)
 
저도 참.....ㅎㅎㅎㅎㅎㅎ;;;;;;
 
최근 오버워치나 다른 취미도 있고 일도 나름 바쁘고 하다보니 글 쓸 시간이 없었어요... (솔직히는 생각이 안났...ㅋㅋㅋㅋ)
 
그래도 몇달만에 생각이 나서 마무리 짓게 되어 다행인거 같습니다. ㅎㅎㅎㅎㅎ 
 
 
다만 몇 달에 걸쳐서 이어쓰다보니 짧은 내용임에도 매우 내용이....좀......거시기 한 부분이 많네요....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게 된 부분도 있고....
 
특히 추가된 부분은 충분한 퇴고를 거치지 못해서 내용이 조금 막 흐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죄송....여.....ㅋㅋㅋㅋ(사과드림다 ㅋㅋㅋ)
 
 
 
 
어쨌든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저는 다시 야근 겸 월급루팡하러 가보겠습니다 :-)
 
다들 수고하세요~~~
 
20000!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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