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이 10일정도 남은 현역 군인입니다.
제 군대 동기들은 전역 후에 '여행도 가야지, 콘서트도 가야지, 여친도 사귀어야지' 하면서 되게 기대에 차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전역이 다가오니 별로 기쁘지가 않습니다. 물론 전역일을 하루하루 새기는 합니다만, 입대 초기당시에 예상했던 기분은 전혀 아니네요.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생각도 많이 해봤습니다.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부대 내가 솔직히 밖보다 편합니다. 밖에서 해야하는 자잘한 걱정도 안해도 되고 (인간관계, 옷, 음식 등),
해라는 것만 하면 되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밥도 삼시세끼 적절히 먹고 운동, 독서까지...
또 저희 집이 좋은 집은 아니라서 (화장실이 너무 추워요 흑흑) 시설도 부대 내가 더 좋고..
또 사실 저는 부대 내에선 정말 바른생활 사나이입니다. 그런데 휴가만 오면 비교가 되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참 쓰레기같이 지내네요.
바르게 살고싶은 의욕이 생기지도 않고요.
핸드폰 없이 몇 달도 잘 살다가 휴가만 오면 연락 올 사람도 별로 없는데도 하루종일 붙잡고 있습니다. 놓지를 못하겠습니다.
또한 할게 없으니 쓸데없는 예능프로그램이나, 컴퓨터게임이나 주구장창 하구요.
또 이런거 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수면리듬도 바뀌고, 낮과 밤도 바뀌고..
물론 지금까지는 다시 부대로 복귀하면 정상적인 리듬과 생활로 돌아가니까 걱정이 없었는데,
이젠 전역을 하고 대학교에 복학을 할텐데 계속 휴가 때처럼의 생활을 하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제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사람이라 군대처럼 제어장치가 필요한데, 전역을 하게되면 그런게 없으니까..
둘째로, 부대 내에서 간부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돈에 대한 욕망이 커졌습니다.
저는 병사로 한달에 20만원밖에 못 받아 옷 몇 벌을 사는것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 간부들은 수백만원을 벌고,
똑같은 조기출근, 당직을 서도 저는 헛고생인데 비해 그이들은 돈을 더 받으니까.. (아싸리 장교로 갈 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얼른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복학을 해서 대학생이 다시 된다면 또 돈걱정을 하면서 찌질하게 살걸 생각하니 슬프네요.
학자금대출이니, 교통비니, 의복, 식비, 휴대폰요금이니 하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신 부사관분들도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잘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대학을 계속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청춘이니 입에발린 소리를 해도 결국 돈을 더 벌려고 대학에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고졸이나 대졸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고..
셋째로, 2년간 고민을 했지만 제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 학과는 공대쪽인데 저는 수학,물리를 정말 못합니다. 대신 국어같은 것은 꽤나 특출나다 싶을 정도로 잘합니다. 과목 전교 1등도 몇번 해봤었고요.
그래서 부대 내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책도 많이 읽으면서 (국어, 사회쪽을 좋아해 인문도서로 약간 편향되게 읽긴 했지만)
'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자신있는 과(국문과)로 전과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꽤나 확실하게 스스로 결정을 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출사표라고도 할수있는 장문의 편지를 부모님께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답장에는 모든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 '그래도 니 밥그릇 하나는 챙겨놓고 니가 하고싶은것을 해야하지 않겠느냐. 국문과가서 뭐하냐'
가 적혀 있었습니다. 웃기게도 또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약해지더라고요. '내가 정말 국문과에 간절히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단지 수학, 물리가 없는 하나의 도피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잡생각들...
2년의 고민의 끝은 결국 똑같은 과, 똑같은 학교에 복학하는 것이었습니다.
2년을 고민했는데 결국 저 자신이 선택해서 바뀐것은 아무것도 없고 제자리니, 더이상 '고민'이라는 단어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모든것이 의미없게 느껴집니다.
여행을 갈까? 가봤자 뭐할거야. 블로그에 얼마나 자세히 나와있냐. 그리고 저건 다 과장된 SNS용 행복일 뿐이고 실제는 별거 없을거야.
예쁜 옷을 살까? 사봤자 뭐할거야. 보여줄 여자친구나 있냐. 그리고 예쁜 옷을 입든 오래된 옷을 입든 사람들은 너한테 관심도 없어.
영화를 볼까? 봐봤자 뭐할거야. 너 저번에 봤던 많은 영화들 중에 내용 기억나는 거 있냐? 다 잊어먹었잖아.
운동을 할까? 운동 좋지. 근데 너 군대에서 그렇게 살도 많이 빼고 몸도 좋아졌는데, 뭐 니 인생이 달라지는거 있었어? 똑같이 TV보고 컴퓨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그만좀 처먹어. 그맛이 그맛이야.
여자친구를 사귈까? 여자 사귀고 싶은 목적이 뭐야? 결국 섹스하고 싶은거 아니야? 야동을 봐 변태새끼
돈이나 모으자! 그깟 몇십만원 푼돈 모아서 뭐할건데? 사고싶은 것도 없잖아. 또 솔직히 사는게 필요해서 사는게 있기냐 있냐? 다 돈낭비지
같은.... 에휴
복학해서 또 다른 사람들과 의미없는 눈치보기, 관계형성, 감정소모를 해야하는게 걱정이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라는 작가는 이렇게 삶이 의미없게 느껴지면 자살을 하라고 했던거 같은데 하하
살아있다는 느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살 날은 많이 남았는데 저는 왜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사는 걸까요. 전 뭘해야 할까요?
글에 두서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