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29%, 안희정 19%, 황교안 11%, 이재명 8%, 안철수 7%로 나왔습니다. 안희정의 약진이 단연 돋보입니다. 1주일 사이 거의 갑절 상승했습니다.
야권에 제2후보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지지율이 급등할 경우, 20% 내외가 되면 꼭지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 흐름이었습니다. 안철수도 20% 내외에서 내리막을 걸었고, 최근 이재명도 그랬습니다.
이번에도 그러한 흐름이 재현될지는 반신반의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또한 친노 후보라는 점입니다. 과거 안철수, 이재명의 경우는 문재인과 비등한 지지율을 보이면, 친노 성향의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껴 결집하고 상대 후보를 집중 견제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야권의 여론 지형이 예전부터 친노 대 비노가 50 : 50의 비율이었는데, 비노 성향의 후보가 문재인에 대등한 지지율을 보인다는 것은 야권의 비노 성향의 다양한 국민들이 모두 그 후보에게 지지하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오를 여지가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안희정의 경우에는 이런 전통적 분석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친노 성향의 국민이 월등히 많아진 점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반반으로 갈리고, 진보 진영은 다시 친노, 비노로 반반 갈리는 형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야권 정당과 야권 대선주자의 지지율의 총합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보수에 유리하게 잡아도 보수 대 진보가 4 : 6이고 진보 진영의 여론 지형도 어쩌면 친노 대 비노가 3 : 2의 비율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안희정이 지지율을 모아갈 공간이 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0% 내외가 되면 다 찼다는 식의 분석은 예전의 여론 지형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희정의 지지율에는 보수 진영의 지지자가 많이 몰려든 것도 그 이유입니다. 대연정론과 충청 대망론이 보수표를 많이 끌어왔습니다. 대연정론이 야권 진영 지지자에게는 쥐약이지만, 지지율 게임으로만 보면, 이보다 더 멋진 전략이 없습니다. 지금 보수 진영에서는 반기문의 중도 사퇴로 유력 후보가 없다시피 합니다. 어차피 야당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거라면, 보수 진영의 지지자들은 누구를 밀고 싶을까요? 박근혜를 체포하여 감옥 보내겠다는 이재명을 지지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새누리당과 대연정하자는 온건 노선의 안희정을 지지하고 싶을까요? 보수층, 특히 박근혜 지지층은 박근혜를 보호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희정이 좋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청 대망론이 안희정에 투영된 것도 고무적입니다. 이 충청 대망론은 안희정이 도정 운영을 잘하고 젠틀하고 얼굴이 미남이어서, 대통령 되면 참 좋겠다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충청인의 한이 서린 대망론입니다. 충청 지역 유권자들은 최근 1, 2년간 반기문으로 인하여 이번에는 충청도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있겠다는 행복한 꿈을 꾸며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쁜(?) 비판자들의 견제로 중도 사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좌절감은 아쉽다는 정도가 아니라 김종필 때부터 대통령을 배출해내지 못한 데 따른 분노, 허탈, 자괴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럴 때 집권이 유력시되는 민주당 소속의 안희정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보수, 진보를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한 맺친 충청 대망론이 안희정으로 투영된 점은 향후 안희정의 정치 인생이나 대선 구도에 폭발력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친노 내지 친문 진영으로부터 견제받기가 어렵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친노 성향의 국민 중에는 안희정이든 문재인이든 누구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도 꽤 됩니다. 게다가 안희정은 이재명의 반문연대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제3지대의 정치인들이 개헌을 고리로 한 문재인 고립화 행보가 극에 달할 때에 홀로 용기를 내어 문재인 왕따의 정치는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이런 행보는 당내 김부겸, 박원순, 이재명, 그외 많은 비주류 의원과 다른, 용기 있는 모습입니다. 문재인 지지층은 이런 안희정에게 빚을 졌다고 여기기에 지지율에서 문재인을 추격한다고 해서 곧바로 견제구를 날릴 것 같지 않습니다. 과거의 선행으로 복을 받고 있는 거지요.
안희정의 지지율 상승은 과거 안철수, 이재명의 지지율 상승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안철수, 이재명의 급등기 때의 지지율이 야권 비노 성향의 국민들의 지지에 많이 의존한 반면, 안희정은 보수 진영 지지층과 충청권의 지지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안희정의 지지율이 좀더 오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황교안이 분발해서 보수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붙들어매지 않는 한 더더욱 그렇습니다.
ps. 이 글에 언급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2월 7~9일 사흘간 실시한 것으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