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주 소옥물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였다. 한 달 4만 원(내가 시작할 때는 4만 원이었다), 술자리 1차의 1/3가격(그 땐 애도 없어서 알량한 학원강사 월급에도 양주까고 다닐 때였다), 내가 술자리를, 그것도 한 차수만 줄이면 머나먼 타국의 아이 한 명이 한 달을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아~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한, 이기적인 계산이었다.
술자리 한 단계 줄여서 양심의 가책을 팔아버리자. 아 홀가분해라. 그렇게 내 컴패션은 시작되었다.
인도의 아이 카루빠사미.
그 아이는 언제나 나에게 눈이 동그랗고 어딘가 마음이 여리고 어린 사진 한 장이었다(내가 하도 오래 저 사진을 가지고 다녀서, 사진 일부가 벗겨졌다. 저거 비듬 아니다). 아동이었지, 암. 아동이었어. 그리고 진짜 말 그대로 한동안, 양심의 가책은 한 달 4만 원에, 그리고 4만 5천 원에 속절없이 팔려갔다. 진짜 오랜 기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제였다.
이제는 안 쓰는 번호로, 이제는 살지 않는 주소에 택배가 하나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받았는지는 묻지 말고, 어쨌든 난데없는 택배라 정체가 심히 궁금했다. 뭐였냐고? 카루의 편지였다. 아니, 정확히는 컴패션의 기도 부탁 선물 세트였다.
반송에 재발송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온 박스를 뜯었다. 누구는 박스권에 갖혀 있다는 프레임을 갈수록 커져가는 박스로 뒤집는 와중에, 그 박스에 들어있는 것은 펜 한 자루, 나무로 만든 휴대폰 거치대, 그리고 엽서 한 묶음과,
어느새 훌쩍 커버린 카루빠사미의 사진이 들어 있는 편지 한 장이었다. 카루가 쓴 편지는 아니었다. 이제 이렇게 커버린 카루가 앞으로 나랑 연결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인도 정부의 '알 수 없는' 행정조치로 인해 내가 낸 후원금이 카루에게 전달되지 못하여, 이제는 카루를 돌보게 될 수 없게 되었으니, 지금 컴패션 측도 미의회를 움직여 어떻게든 다시 결연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런 내용이었다. 요약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내 요약 실력을 무지 잘 알기 때문에 내 요약이 맞으리란 보장이 없으나, 특정 종교 편향적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원문은 그냥 저 사진으로 대체하는 척 안 보여 주도록 하지 않겠는가?
......
나는 그 '알 수 없는' 행정조치를 알 것 같다. 컴패션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구호단체고, 내가 낸 후원금이 전액 아동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아동을 돌보는 지역교회의 운영비로 들어가고, 지역교회에서 아동을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고 돌본다. 돈을 쌩으로 주면 그 돈으로 애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지 않고 부모가 다 가로채 버린다는 참으로 반기독교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기독교 자선단체라는 웃기지도 않는 논리가 숨어있긴 하지만, 일견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서,
(그리고 솔직히 차인표와 신애라의 강연 한 바탕 들으면 컴패션 결연 신청서에 서명 쯤이야 우습지, 뭐.)
결연을 신청하고 그리고 꼬마 카루가 청년 카루의 바로 문턱까지 이를 정도의 시간이 흐를 동안 유지하고는 있었는데, 이런 '특정 종교가 선진국의 자금력으로 자기 나라를 먹어치우는' 현상을 간디와 네루의 후예가 어디 가만 두고 보겠는가. 나도 쪽발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눈꼴시리게 안 볼 리가. 지금까지 컴패션을 가만 놔둔 것도 기적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이제 카루빠사미와 나는, 이러한 반제국주의적인 정책에 힘입어 다시는 먼 나라의 좋은 아저씨, 먼 나라의 귀여운 아이로 이어질 수가 없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내가 고른 거 아니다. 컴패션이 그냥 무작위로 연결해준 거다. 아니, 솔직히 신청서에 나라는 내가 골랐던가? 기억조차 안 나는데, 내가 골랐어도 아마 인도였을 거다. 내 영혼의 두 젖줄 중 하나가 바로 브라흐마차리아, 마하트마, 인도의 아버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아니었던가. 내가 골랐든 무작위로 연결된 거였든, 인도, 그리고 카루빠사미. 아이였던 아이가 말쑥하게 큰, 카루빠사미.
나는 기도를 믿지 않는다. 나는 골방에서 소리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떡 하고 나타나서 인도 정부를 캐발살내고 카루빠사미와 나를 다시 연결해주시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마 컴패션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골방에 틀어박혀 내 자산 중 하나인 목을 작살내가면서 부르짖을 생각은 없다.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자산 중 하나인 손가락을 놀려가면서 글을 쓴다.
기독교가 인도를 제패하게 해주소서? 아니다. 나는 '우리 목사님'도 없는 존재고 기도도 믿지 않는다.
다만 카루빠사미가, 앞으로도 내 양심의 가책을 팔아치운 대가로 더 말쑥하게 커서 청년이 되기를, 그래서 세상 권세를 쥔 사탄의 유혹에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싸워 나가 이길 수 있기를.
어린 시절 카루빠사미의 사진을 다시, 그리고 소년과 청년 사이 어느 즈음에 있는 카루빠사미의 사진을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