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요, 당신이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된 것이.
당신의 시작은 벚꽃이 많이 피는 타지에서 다니기 시작했던 성당의 오빠.
친근한 외모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말이 많지는 않지만 신나면 많아져.
굵은 저음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조근조근 말을 예쁘게 해.
속이 깊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해.
알고 지낸 4년 동안 한 번도 안 좋은 인상 없이 늘 '저 사람 참 괜찮네'라고 생각하게 되던 사람.
그 괜찮다는 게 이성으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 였기에 지난 시간 동안 그저 편하고 말 잘 통하는
친오빠 같은 느낌으로만 다가왔던 사람.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전거를 탄다고 했었고
이로써 공통 관심사가 두 개, 거기에 말도 잘 통하고 가끔씩 사진 관련 자문을 얻기도 하고.
한 번씩 당신이 있던 지역에 가면 꼭 당신을 보고 왔고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상
고민 같은 걸 맘 편하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담 없고 어려움 없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왔어.
그러던 오빠가 어느날 내게 고백했었고 나는 그 당시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었기에
게다가 누군가를 좋아해도 티를 안내는 오빠 성격상 그 고백이 너무나 뜬금없었기에 거절.
며칠 후 오빠는 다시 전처럼 오빠동생으로 잘 지내자고 메세지를 보내왔지.
외국생활 중 만났던 정말 사랑했던 전남자친구의 바람으로 배신감에 크게 실망했던 이후로
내가 과연 다시 누군가에게 설렐 수 있을까, 두근거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마음을 내려놓고 살았던 지난 시간들.
2년동안의 외국생활동안 나를 좋아해서 다가온 사람도 있었고 외로움에 단발성으로 누군가를 찾기도 했지만
그 모두가 그저 아무 느낌없이 스쳐갔고
알고 지냈던 사람 중에서 편함과 설렘을 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다보니
2년 전 오빠가 고백했던 것이 생각나 문득 그 날의 벚나무가 마음 한켠에서 무럭무럭.
한국에 들어오기 몇달 전부터 한국에 가면 당신을 꼭 만날거라고. 만났으면 좋겠다고.
나 오빠 만나기에 그렇게 못나진 않았잖아? 라며 한번 고백했었으니 아직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한 자신감을 갖고 오빠에게 고백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을 오랫동안 좋아한다는 말에 그 마음은 허탈하게 무너져 버렸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엄청 길게만 느껴졌던
당신이 내게 온 길.
그래도 깊이 빠져서 좋아한 건 아녔으니까 금방 괜찮아질거야-했지만 당신을 볼 때마다
애타는 마음을 어찌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
말을 걸고 싶어도 괜히 정리 안될까봐 멀리해보기도 하고 당신과의 모든 연락을 멈춰보기도 하고.
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안다는 말이 참 고맙게만 느껴졌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다정스레 말 건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
약간의 무심함으로 나를 대했던 그대가 갑자기 '나랑 데이트 한번 해'라며 따뜻하게 말했을 때
네 마음과 진심을 무시할 수 없어 교통정리를 하고왔다는 당신의 말에 이미 내 마음은 저 멀리 두둥실.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영원한 겨울이던 내 마음에 물을 주고 빛을 준 당신.
나는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고 메말라 갈라져있던 마음의 바닥도 눈이 녹아 촉촉해졌어.
간질간질, 바닥에서 뭔가 솟아오르려는 걸 보니 아마 벚나무일 것 같아.
그동안 혼자인 시간을 보내면서 언젠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내가 그간 만났던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 시간들은 모두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어'
라고 주저없이 말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말, 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다는게 요즈음 나의 큰 기쁨.
마음 속 매섭게 얼어붙었던 얼음들은 나날이 스르르 녹고 있고
곧 더 따사로와져서 내 마음 가장 큰 벚나무 가지에 연분홍 꽃잎들이 주렁주렁 피어나기 시작하면
'내 여린 맘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