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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_토마스 피케티 독후감
게시물ID : economy_228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PEX04
추천 : 3
조회수 : 116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2/06 1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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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결론: 부의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고, 양극화는 특이 현상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나 저성장, 저출산 사회에서는 급속도로 양극화가 진행된다. 과거 유럽 사회가 이미 양극화의 최정점을 찍은 바 있듯이 자본소득이 존재하는 이상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실이다. 세상이 잠시나마 자본주의가 부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체제라 느꼈던 것은 2차례의 큰 전쟁으로 인한 파괴 후 환상에 불과하며 지금 우리가 직면하듯, 결국에는 부의 양극화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한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자본소유 구조가 파괴되는 전쟁이 아니면 부의 양극화가 해소되기는 힘들다. 총 820페이지, 읽기도 쉽지만은 않은 책입니다. 요약본처럼 보시고 시간나시면 책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부의 분배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다. 오늘날처럼 신분제나 종교처럼 사회 질서를 구성하던 다른 요소들이 사라지거나 힘을 잃은 뒤 사람들은 더욱 공정한 부의 분배를 통한 사회질서를 열망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경험하는 삶과 사회에서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정당하지 않은지에 대한 자신만의 관념을 지니게 되는데, 따라서 부의 분배라는 문제는 주관적인 성격을 지닌 토론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려진 자료와 제대로 정의된 개념이 없을 경우 사실상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무엇에 관해 논쟁해야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저마다의 주장만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피케티는 자신의 책을 통해 부의 분배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과 그 동학을 분석하여 제공함으로써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부의 불평등을 개선할 방안을 제안함으로써 토론이 집중할 수 있는 주제을 던져준다. 부의 분배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이어져 온 논제를 저마다의 가치를 주장하는 가치토론에서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정책토론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낸 것이다.
   
든 사람이 동일한 능력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단순히 부가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이미 종결된 문제로 취급되는 공산주의를 끄집어내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저자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구분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능력주의가 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인 이상 우리는 노동소득의 격차는 쉽사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이것은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측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본소득의 불균형 문제를 집중 공격한다. 책에서는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보다 언제나 높아왔다는 사실이 부의 양극화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자본의 수익률을 r, 성장률을 g 로 두었을 때, r-g 의 차이만큼 자본소득자와 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자 사이의 부의 차이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고작 1퍼센트의 차이가 난다고 해도 30년을 한 세대의 길이로 잡았을 때 약35퍼센트의 차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1.01^301.35) 그런데 저자는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분석해서 rg보다 지속적으로 커왔으며 그 차이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말한다.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요소인 인구 성장률과 1인당 생산율이 모두 지금까지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지식의 확산과 기술의 발달수준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처럼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자본의 수익률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5퍼센트 가량을 유지해왔음을 보이며 저자는 부를 형성하는데 자본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임을 말한다.
   
자본이 필연적으로 부의 양극화를 야기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단순히 비관론자의 암울한 전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증명되지 않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옛 소설들의 내용 속에서 부의 양극화가 정점에 닿은 사회의 모습을 찾아낸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같은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열망하거나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은 상속받을 수 있는 재산이다. 개인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소득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며 등장인물들은 땅과 채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고 부의 상속이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꾼다. 19세기 사회에 대한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이와 유사한 모습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가장 엘리트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법률가나 고위 공무원들이 권력의 정점이자 우월한 소득자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 상징성은 날이 갈수록 퇴색되어가며 높은 가치의 건물이나 금융자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반대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능가하기 어려움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지식과 기술의 확산을 기반으로 한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능가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전쟁이라는 예외적인 현상이 빚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전쟁으로 파괴되거나 제 기능이 손상된 자본들로 인해 자본수익률은 낮아지는데 상위계층이 지출을 줄이지 못하면 상속 재산이 줄어든다. 동시에 나라를 재건하는 데 노동의 중요성이 극대화 되면 노동소득의 중요성 또한 부각된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폐허 속에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으며 급성장하는 시기가 끝나면 자본소득의 속성에 의한 부의 양극화 현상은 필연적이다. 저자의 주장은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상반되었던 국가들의 여론에 의해 증명된다. 국토가 파괴되었던 프랑스, 일본, 독일은 급성장을 겪은 1950년에서 1970년을 그리워하는 반면 국토를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보전했던 영국과 미국은 같은 시기를 각각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보수혁명까지 감행해야 했던 암울한 시기로 기억한다. 즉 전쟁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이 사람들이 인식하는 부의 양극화 현상을 완화한 것이다. 전쟁 후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뿐 지금 우리는 전쟁 전의 최고 수준의 불평등을 향해가는 과정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누진적 자본세라는 소유하는 자본에 매년 세금을 물리는 과세 정책을 제안한다. 적극적인 제도적 개입 없이는 부의 불균형은 점점 심화되어갈 뿐이며, 공정한 사회질서에 대한 열망은 시장의 힘과 기술 진보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시에 시장은 오히려 언제나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음을 지적한다. 전쟁 이후 매우 보편적인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 인플레이션은 실질적으로 국가 부채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예금자들의 효용을 감소시켰다. 한자리 수의 낮은 인플레이션 율도 장기적으로 보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실제로 노인 빈곤과 같은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오로지 미국에만 상위 0.1퍼센트의 고액임금을 받는 슈퍼경영자가 등장한 것 또한 임금 상승폭에 대한 제동의 여부와 같이 국가의 제도적 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시장을 신봉하는 자들이 말하는 한계 생산성 이론과 무관하게 시장은 언제나 정치적이었고, 따라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금기시될 이유가 없음을 저자는 주장한다. 적절한 시장개입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방대한 역사 기록을 이용한 연구는 저자와 상반되는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 쉽사리 반박할 수 없게 만든다. 한 세기가 넘는 폭넓은 범위를 분석한 결과를 반박하려면 그와 같거나 더 넓은 범위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오늘날까지 밝혀진 부의 분배에 관한 동학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책으로 자리할 것이다. 다만 그가 제시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배가한다. 해외 자산이 일반화된 시점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소유한 자본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장가치를 매긴 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전 지구적인 협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저자는 화폐를 통일한 유럽연합의 사례를 들며 우선 지역적인 연합부터 시작해 나가는 것을 제안하지만 최근 브렉시트나 독일의 난민 거부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각각의 국가가 소속그룹 전체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물며 연합조차 이루지 못한 다른 대륙은 더욱 저자의 이상과 멀다. 따라서 21세기 자본은 희망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번득이는 재능을 발휘하는 기업가는 언젠가는 자본소득자로 변하기 마련이고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늘었는데 출산율은 줄어들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급격한 사회변화가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 믿기는 힘든 현실 상황에 대해 21세기 자본이 말해주는 것은 부의 양극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불편한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히려 세계대전 이전의 부의 양극화 때보다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는 더 어려워졌다. 소수의 아주 부유한 자본소득자들의 사회였던 그 때와 달리 오늘날은 훨씬 더 많은 수의 덜 부유한 자본소득자들의 사회가 우리의 현실이다. 책에서 언급되듯, 이제는 소수의 엘리트층과 사회의 나머지 간의 싸움이 아니라 자본소득을 가지거나 가지길 열망하는 전체 인구의 큰 부분이 아주 흔한 불평등과 맞서는 상황이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우리는 불평등에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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