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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이야기] 내 혼의 세 구절
게시물ID : readers_275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날강도!
추천 : 5
조회수 : 3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29 11:25:00

"나의 진정한 열정 혹은 재능이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인간에게 주어진 경험을 한 조각이라도 맛 보는 데 목표를 둘 것이다."

-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국인*, 시어도어 젤딘이 그의 신간 <인생의 발견>에서 날 박살낸 팩폭탄 한 구절.



책은 거울인데, 진짜로 원하는 것을 보는 마법의 거울이다.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 것을 비추는 것도 아닌, 정말로 내가 봐야만 했고 봐야만 하며 진작에 봤어야 할 팩폭탄급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말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한반도 영혼의 한 조각이셨던 법정 스님의 수필, 그 중 한 구절 此外何所求는 뭐 분석이고 이성이고 감성이고 감정이고 역사고 추억이고 간에 그냥 내 영혼이 되어버렸다. 번역도 걸지다. "이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랴!" 깨끗이 씻고 머리까지 싹 미신 어떤 스님이 욕탕 벽에 휘갈긴 깨달음을 법정스님이 보시고 감탄하시면서 수필에 언급하신 것인데, 난 저 한 구절로 이루어진 영혼 덕에 오늘도 잠들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 아쉬움이 없구나, 기쁘고 또 기쁘다.'하며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그렇지만 인간이 또 그렇지만은 않은 법,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천재는 늙지 않는다는 말을 몸소 밝힌 시인,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구절.

이밖에 바랄 것이 없는 삶인데
사랑을 어찌나 찾아 헤메었던지.
나를 사랑했다면 정말로 이밖에 바랄 것이 없는 삶이었을텐데.

이 두 구절로 혼숨을 쉬며 살던 삶의 마지막 버거움,

'나는 가치있는 인간일까?'에 대한 마지막 대답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게 만든(영국과 프랑스의 앙숙관계야 뭐...) 시어도어 젤딘의 한 마디였다.



나는 그저 지금 이 순간 한 조각을 맛보는 데 집중하리라.
내 열정, 재능, 그까이꺼 없으면 좀 어떠냐.




* 참고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프랑스인은 아트사커의 창시자(?) 에릭 칸토나라고 한다. 영국인이 사랑한 프랑스인은 축구선수인데 프랑스인이 사랑한 영국인은 철학자다. 프랑스에서 만 권 팔면 전세계에서 백만 권은 우습다던가? 프리미어리그 절정의 구단에서 정점을 찍은 박지성의 국내 위상은 말 안 해도 될 것이고. 뭔가 그들의 문화와 취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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