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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wedlock_6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개꽃잎
추천 : 24
조회수 : 1901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7/01/28 17:26:38
우리엄마는 자식이 넷이나 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나만 빼고는 순서대로 쪼르륵 좋은 나이에 착하게 시집갔다.
사랑스러운 아가들 낳고 행복하게 사는 큰언니, 작은언니.
신혼인 셋째언니.
그리고 아직 시집 안 간 나, 막내딸.
오늘은 셋째언니가 시집간 뒤에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다.
좁은 집에서 북적북적 살던 여섯 명의 가족은 세 명이 되었다.
여섯 명이 살 때에도, 어느 저녁에는 아직 더 들어와야 할 가족이 남은 것처럼 허전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셋이서 재잘재잘 대화할 때에도 거의 적막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튼 이 집에는 작년부터 우리 셋이 살고 있다.
오늘 아침이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나를 부산스레 깨워서는 짧게 찬송을 하고 기도를 했다.
원래는 이모와 우리가족을 모아놓고 늘 외할머니가 하시던 기도였다.
1년에 두번씩 듣는 그 기도에는 늘 울음이 섞여들었다.
엄마는 좋은 날 왜 울고 그러냐며 할머니를 놀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 셋이서 모여 드린 엄마의 기도는 울먹임으로 끝났다.
내 물음에 엄마는 감사해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많던 가족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하고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시골집에 갈 때마다 우리에게 짐짓 쏟아지는 시선은 차가웠다.
묘하게 냉정한 태도의 할머니와 고모들이 의아했다.
우리는 어렸다.
막내삼촌의 아들들은 더 어렸는데, 할아버지, 삼촌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엄마는 어른들만 먹는 상이라고 했다.
나는 거짓말, 저 꼬맹이들은? 말해봤으나 엄마는 너무 아가라서 어른들이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선들의 말마따나 넷이나 되는 자식 중에서 하나 쯤은 아들이었어야 했다.
형제들 사이에서 우리아빠는 큰 아들 노릇을 못한 자식이었다.
그 집안 전체에서 우리엄마는 큰 며느리가 되어선 제사도 못 가져가는 재수없는 구박덩이였다.
고모들이 그렇게도 괴롭혔다고 했다.
철이 들면서 시험, 약속, 멀미, 각종 핑계를 대며 친가에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도 일이 바빠 못 간다고 했다.
어떻게 큰며느리가 돼서 와보지도 않냐며 욕하는 소리가 전화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가지 않았다.
아빠 혼자서는 꼬박꼬박 가곤 했지만 이번 설에는 아빠도 가지 않았다.
휴일이 시작되던 어제,
엄마와 나, 우리는 채소가 너무 비싸다며 멀리 시장에 가서 박스를 이고 왔다.
셋이서 둘러앉아 그걸 다듬었다.
열심히 갈비의 핏물을 빼서 재어놨다.
맛이 없어질까 부치는 건 내일 해야겠다며 전의 재료들을 준비했다.
잡채를 만들고 떡국을 끓였다.
엄마는 연신, 언니들 언제 오는지 카톡해봐, 하고 주문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언니들은 오늘도, 내일도 못 올 것이다.
서울에 사는 큰언니는 금요일엔 시부모님 집에서, 토요일엔 시가 친척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작은언니는 우리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금요일 새벽에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토요일 한밤중에 올 것이다.
셋째언니는 아예 전라도 지방 전체 순회공연을 하고 일요일 밤에나 도착한다.
설 당일에는 아무도 못 온대, 하고 머뭇머뭇 엄마를 살폈다.
엄마는 으응 그래, 하고 다듬던 파를 마저 다듬었다.
오늘 아침,
엄마는 울먹이면서도 딸, 사위, 손주들 이름까지 한명 한명 읊어가며 긴 기도를 마쳤다.
그리고는 떡국에 비싼 놈의 소고기를 넣었더니 엄청 맛있다며 세 그릇 가득 상에 올렸다.
나는 내가 결혼했을 때를 생각했다.
어쩌면 "좋은" 시댁을 만나면 나 혼자라도 엄마를 도와주러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절 당일 아침에 처음으로 먹는 떡국과 갈비, 짧은 찬송과 울먹이는 엄마의 기도를 함께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나마저 오늘 같다면.
만약 그러면 엄마는 좋은, 좋은, 좋은, 좋은 장모님이 되는 셈이다. 하하.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엄마는 또 울 것이다.
조심히 갔다 오라고 우리에게 이모티콘을 보내고
아빠와 둘이서 기도하며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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