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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가 조선일보에 양심고백을 했을까?
게시물ID : history_130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랑랄라
추천 : 12/4
조회수 : 2732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3/12/17 22:46:08

초록불님의 글을 인용해서 쓴글입니다.

http://orumi.egloos.com/335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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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전에 역게에 이병도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기사가 게시물로 하나 올라왔군요. 그러면서 그 하단에는

 

고 최태영 박사의 설득으로 죽기전에

식민지때 금광으로 번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한민국 초거대 메이져언론인

조선일보에 진실을 밝힌 기고문

스승은 양심에 승복했으나 그러나 그 경지를 뛰어넘은 제자들이 수두룩했으니......

 

요런 작성자님의 사견이 쓰여 있었습니다.

 

직접 그 기고문을 보겠습니다.

 

123.jpg

으아.. 뭔가 길기도 긴 글이군요.

 

이에 대해서 많은 환단고기 추종자분들을 말씀하십니다. "생전에 이병도가 단군을 신화로 치부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고백을 한 증거이다" 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애초에 우리 환단고기 추종자분들은 주작질은 최고라서 믿을수가 있어야 말입죠 ㄷㄷ)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조선일보

단군은 즉 이 천신족과 지신족과의 결혼에서 생긴 것이라고 하겠다.

국사대관

단군은 즉 이 천왕의 아들이라하여 천왕을 봉사하던 고조선 사회의 제주祭主요 군장이었던 것이다. 고조선뿐만 아니라 신정시대 - 즉 제정일치시대의 모든 군장이 다 그러한 관념과 직책을 가져 제주는 의례히 군장의 직을 겸임하고 군장은 또 의례히 제주의 직을 겸하였던 것이다. (중략) 하여튼 나 역시 이를 고유명사로 보는 이보다 어떤 존칭, 존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p26)

 

환단고기 추종자분들의 주장과는 다르게(애석하게도) 이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는 단군의 실재여부를 고백했다고 할만한 대사가 없습니다. 고작해서 위의 단군에 대한 설명이 전부이지요. 그런데 그런 조선일보의 내용은 불행히도 이병도가 48년에 처음 쓰고 54년에 증보한 국사대관에 이미 언급된 내용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국사대관의 내용을 간략히 줄여 쓴것에 불과하지요. 국사대관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단군이란 고조선이라는 여러 정치 집단들의 각각의 종교지도자 혹은 정치지도자들을 부르는 명칭이기에 이 단군이라는 명칭은 특정 개인을 말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존호나 보통명사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겁니다.

 

확인사살 해볼까요? 조선일보의 내용입니다.

 

'신화를 검토하면 환웅천왕의 존재는 실상 지상국가를 개창한 군장이라기 보다는 인간사회의 백사를 주관하는 수호신적 성격을 가진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예 조선일보에서도 이미 단군신화에서 등장하는 인물을 고유명사의 특정 인물이 아닌 신화적인 존재로 해석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요? 애초에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명칭들이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화적인 내용들은 일반적으로 오랜시간의 시대를 축약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나 후대의 시각에서 가탁되고 조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군왕검이니 환웅천왕이니 하는 존재들은 특정 개인을 말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의 보통명사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라는 것입니다.

 

.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조선일보

이 수호신의 주처는 곧 신단수로 이것은 지금 민속중에 생생히 남아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서낭당이 그곳이니 선왕당(서낭당)은 즉 천왕당인 것이다. 이 서낭당의 나무가 곧 신단수 그것이고 그 밑의 돌무더기가 신단이다. 그리고 옛날에 이 신단을 중심으로 한 부락이 신시였던 것이다.

국사대관

환웅천왕이 강하하였다는 신단수하는 즉 신역神域이요 제단이요 그 주위는 한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신시라 한 것이다.(중략) 요컨대 환웅은 고조선의 시조신인 동시에 국인의 생명, 재산 선악, 길흉을 맡은 남성의 수호신이니 후세의 소위 [산왕당山王堂](산신당) [선왕당仙王堂] 내지 [성황당城隍堂](중국의 성황신명을 음상사音相似에 의하여 차용한 것)이라 하는 것은 다 이러한 천왕을 위하던 [천왕당天王堂]의 전칭傳稱이라고볼 수 있다. (pp25-26)

 

조선일보에서 말하고 있는 신단수나 신시에 대한 설명도 국사대관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 애초에 조선일보에서 말하고 있는 신시에 대한 설명도 환단고기 추종자분들이 말하는 신시라는 고대 도시의 설명이 아닐뿐더러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국사대관에서도 신시란 당대 수목숭배 신앙에 근거해 집결한 부락집단을 부르는 보통명사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가장 논쟁거리가 될수 있는 평양의 위치 문제입니다.

 

조선일보

이때의 평양은 지금의 평량(평토량)이 아니라 고구려의 황성(황성, 즉 환도성)의 대안인 동황성(금강계)인 것이다. 지금의 평량에는 아직도 이때 낙랑군이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인왕검지택이라고 한 평량은 후일의 평량(지금의 평량)의 지칭이므로 전후자를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국사대관

동황성의 위치는 자세치 아니하나 환도(일명 황성黃城)의 동편(아마도 강계지방?)인 듯하며,삼국사기의 평양천도설은 후일 평양의 동명同名(동황성)과 혼동한 데서 생긴 착오라고 해석된다.

 

역시나 무슨 고백하며 이병도가 자신의 의견을 바꿨다고 환단고기 추종자 분들을 말씀하시지만 아니였군요? 국사대관의 내용과 조선일보의 내용이 다를바가 없어요. 더구나 이 평양의 위치의 문제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기 이전에 등장하는 평양기사에 대한 해석이며 그 위치 또한 압록강일대 이기 때문에 환단고기 추종자 분들이 그토록 목놓아 주장하시는 한사군 요령설이나 대륙 고조선설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주장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1976년에 이병도가 저술한 한국고대사연구라는 책에서 그가 단군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도록 합시다.

 

한국고대사연구

우리 국사 첫머리에 봉착되는 중요한 문제가 단군에 관한 문제라 하겠다. 단군에 관한 고기록이 너무나도 단편적인 데다가 설화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또 그것이 비교적 후세의 서수록된 까닭에 혹은 황탄시荒誕視, 혹은 후인의 날조捏造라 하여 이를 말살, 부인하려는 무리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솔하고 무모하고 또 비과학적인 태도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단군에 관한 기록 중에는 거기에 약간 후인의 윤필이 가해진 곳도 있지만, 대체로 볼 때 이를 후인後人의 조작으로 단정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고, 도리어 음미 검토할수록 이것이고인古人의 오랜 설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고전임을 인식하지 아니할 수 없다.

 

어떠신가요? 그가 단군을 가상의 인물로 치부하고 있나요? 눈이 있고 읽을줄 아는 분이시라면 느끼실겁니다. 그가 얼마나 단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이제 한번 돌아보세요. 그리고 본인들이 생각했던 그 주장을 다시금 곱씹어 보세요.

단군을 부인하려는 무리를 경솔하고 무모하며 또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는 그가 단군을 부정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시킨 장본인이라고 아직도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뭔가 잘못됬다라는걸 느끼고 계신가요?

조선일보의 내용은 이병도가 생전에 주장하던 국사대관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으며 심지어 조선일보에 실린 내용마저도 환단고기가 아닌 기존 학계에서 따르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고대사연구에서 그는 단군을 가상이 아닌 실존했던 역사라고 못박고 있지요. 그런데도 이병도가 말년에 양심고백을 했다 어쨌다고 하면서 주장하는게 옳은 것일까요? 아니면 선동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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