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 >>>>
동생의 기일을 기린지 어느 덧 10여 년이 지났다. 당장이라도 달려와 새하얀 이를 보이며 환히 웃을 것만 같았던 지난 하루하루를 떠올리니 다시 목이 메여왔다.
화장대 위 한 구석에 놓인 손수건을 들어 동생의 사진틀을 가볍게 쓸어냈다. 혹시나 동생의 사진에 먼지가 가라앉으면 저 세상에서 짐을 지게 될까 걱정된 마음이었다.
그런 존재였다. 나의 사랑, 나의 보물, 나의 동생 혜진이. 부모보다 먼저 떠난 자식이 최대의 불효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언니보다 먼저 떠난 동생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몸서리 칠 만큼 괴롭고 쓸쓸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참혹한 일이다. 적어도 혜진이를 잃은 나에게는.
방 안에 어질러진 수많은 도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간 고통의 나날들을 힘겹게 감내하고 미친 사람처럼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꼭 그럴 필요가 있겠냐며 내 의지를 회유하려 했고, 또 누군가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자신을 대신해 처절하고 잔혹하게 마무리 해 줄 것을 요구했다.
10년이라는 닳고도 닳을 긴 시간. 날카롭게 낼름거리는 칼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방 구석에 놓인 검은 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방을 열고 쉽게 꺼낼 수 있을만한 공간에 조심스레 놓고는 다시 가방을 닫았다.
매캐한 공기가 감도는 방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방을 나서려는 찰나에 화장대 위에서 여느 때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생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기다려.”
짧게 말을 내뱉는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은 마치 고맙다는 듯 따스한 미소를 건내주었다.
그렇다. 동생의 죽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 <<<<
“언니! 나 늦었다니까!”
정신없이 머리를 말리고 있는 내 등 너머로 혜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쪼금만~”
“아 진짜. 언니 이러다 나 지각한다고!”
어느새 신발을 벗어놓고 내 곁에 다가온 혜진이는 내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야 이혜진!”
“그니까 빨리 쫌!”
쉴 틈 없이 쏘아대는 혜진이 때문에 결국 머리를 덜 말린 채 집을 나서야 했다. 한참이나 밑에 주차해 놓은 차를 향해 걸어가는 내내 혜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내 등을 떠밀었다.
“언니 빨리 가자. 빨리!”
“야! 그러니까 니가 부지런하게 일어났으면 된 거 아니야.”
“아아, 몰라- 아무튼 나 오늘도 늦으면 벌써 3번째야.”
한참을 티격태격 걸어 내려오면서 차 문을 열었다. 허둥지둥 올라타는 혜진이와 다르게 나는 좀 더 아침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시동을 켜고 오늘은 어떤 라디오를 들을까 돌리는 와중에도 혜진이의 잔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언니! 빨리 좀!!!”
사실 혜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내의 작은 공장에 취직했다. 동생만큼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몸을 버리고 굶주림을 가까이 하고 지냈는데 이 모든게 무산이 되고 말았다.
혜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제일 먼저 내게 말을 꺼냈다.
“언니. 나 그냥 대학 안가고 돈이나 벌거야.”
그 날 이후로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밤에 눈을 감기까지 우린 쉬지 않고 설득과 회유를 하며 다투었다. 부모없는 자매라는 틀 안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혹은 끝없는 동정심의 대상이 되는게 싫어 대학까지 포기하고 동생 뒷바라지를 했던 나날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동생의 고집은 너무나도 완강했고 결국에는 나도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혜진이는 자기 공부머리로는 대학을 나와도 소용없다며 차라리 돈이나 버는게 낫다고 좋아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우리 형편으로 대학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내색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혜진이도 그간 빠듯한 생활을 짐작했을 것이다.
물론 혜진이나 나나 공부머리는 없긴 하지만.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사거리 앞에 차를 세웠다. 오는 내내 시계와 창문 밖을 두리번대던 혜진이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조수석에 몸을 기댔다.
“아아. 다행이다-”
“뭐야. 늦지 않은거야?”
“응응. 언니 덕분이야. 고마워-!”
아침부터 쏘아대던 못된 혜진이는 어디 가고 이제는 상냥하고 귀여운 혜진이가 내게 눈웃음을 지었다. 쓴 웃음을 지어보이고 나는 혜진이를 재촉했다.
“어쨌든 이제 빨리 가. 여기서 여유 부리다가 또 늦는다?”
“예예-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리고 뒤돌아 걷던 혜진이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왜? 무슨 일인데?”
“흐흐. 언니 고마워. 이따 저녁에 봐!”
“칫.”
아이처럼 웃는 혜진이의 얼굴을 뒤로한 채 나는 서둘러 차를 돌렸다. 입을 빼쭉 내밀고 다시 돌아서는 혜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간 고생했던 나날들이 다시 떠올랐다.
대학은 둘째 치고 혜진이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살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다 부질없게 되버렸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엑셀을 밟았다.
* >>>>
차를 몰고 한참을 굽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인적이 드문 산 속을 헤집고 마침내 어느 인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검은 가방을 다시 천천히 어루만졌다. 가볍게 불어오는 풀내음을 살짝 들이 마시고 눈을 감았다. 앞으로 해야할 계획들을 천천히 되짚으면서 자그마한 여유를 느껴보았다.
멍- 멍-
강아지가 짖어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차를 댄 집 마당에서 작은 강아지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 씨박이구나!”
무릎을 쭈그리고 다가오는 강아지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봐서 들떴는지 씨박이는 침을 질질 흘리며 내게 묻혀댔다. 격한 애정표현의 흔적을 수건으로 닦아대는 사이에 집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누구요?”
집 안에서 나온 남자는 내 얼굴을 보더니 찡그린 얼굴을 곧게 폈다.
“아니 얼마만이야!”
“안녕하셨어요.”
일전에 신세를 졌던 김씨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잠깐 기다리라고 손을 휘젓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외투를 주섬주섬 입고 나왔다.
“씨박아 절루 가.”
아저씨는 씨박이의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치고는 개 집으로 돌려보냈다. 깨갱대며 도망가는 씨박이의 모습을 쳐다보던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저씨의 집은 자그마한 흙먼지들로 가득했다. 자는 공간과 작업실이 따로 구분 지어 놓지 않았다는 아저씨는 매일 이 안에서 지내셨다.
부엌에서 간단한 차를 내어온 아저씨는 나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허허. 오랜만이네.”
나는 대답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온거야?”
“사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금새 헛기침을 하고는 차를 들이켰다.
“버, 벌써 그렇게 된건가...”
“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저씨 얼굴이나 찾아뵙고 갈려고요.”
딱딱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어느새 방 안은 차에서 나오는 온기로 그 서늘함이 젖어갔다.
“그, 그래... 오늘이구나...”
아저씨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불안한 눈동자로 내 얼굴을 쳐다보던 아저씨는 손가락을 계속 톡-톡- 하며 움직여댔다.
“아직, 그 손은...”
“아아, 이 손?”
서둘러 손을 옷섬에 감춘 아저씨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그동안은 잘 지낸거지?”
“잘 지낼 리가 있겠어요...”
“그래도 뭐. 얼굴색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네. 허허.”
“흐흐. 그런가요?”
“암 그렇고말고. 처음에 왔을 때는 얼굴이 그냥 창백해서는...”
처음 아저씨를 만난 것은 5년 전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던 나날을 정리하고 굳은 결심을 한 후에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었다.
소싯적 꽤나 유명한 목수이자 금손이라고 했는데 어린 딸을 잃고 난 이후로는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저런 수소문 끝에 어렵게 아저씨가 사는 곳을 알아내었고, 곧장 이 곳으로 달려와 내 계획에 동참해 주기를 매일같이 매달렸다.
아저씨는 처음에는 나를 미친사람 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내 진심을 알고서는 끝내 수락했다.
“그래서... 이제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려고.”
“그런거 생각할 겨를이 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죠.”
“하긴. 그렇긴 하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찻잔이 우리의 대화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내 모습을 아저씨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아, 그래. 몸조심하고.”
배웅을 하려는지 따라 일어서는 아저씨에게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방 문을 열고 나가려는 와중에 오른쪽 작업대에 놓인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응? 응. 말해보거라.”
“아저씨는 그 순간에 어떤 기분이셨나요.”
내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는지 아저씨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리고 이내 내 시선이 어느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그 손가락을 툭-툭- 하며 불안하게 두드려댔다.
“아, 아니에요. 말씀하시기 불편하시면... 그럼 갈게요.”
“행복했다.”
아저씨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 놈의 피가 얼굴에 튀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대는대도. 뭐라고 해야 되나...”
힘겹게 입을 연 아저씨는 멍한 눈으로 여자 아이의 사진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이걸로 된게 아닐까. 안도감이라고 해야 될지.”
짧게 말을 끝내고는 아저씨는 더욱 손가락을 두드리며 몸을 웅크렸다. 혹여나 아저씨의 눈물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약해질까봐 나는 서둘러 고개를 꾸벅이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마당에 나와 있던 씨박이는 이별을 직감했는지 내게 다가와 바지자락에 얼굴을 비벼댔다. 오랜만에 느끼는 다정함에 나는 지그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차로 향했다.
* <<<<
“네!?”
수화기를 내려 놓고서도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고 이는 금새 뜨거운 눈물로 변해 내 볼을 타고 내려갔다.
.
.
.
서둘러 차에서 내려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마, 말도 안돼...’
붐벼대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치고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저기서 나에게 욕 지꺼리를 내 뱉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 문 앞에 다다라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몸서리치게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응급실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고통 섞인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긴 침묵을 지키며 의사와 간호사가 말없이 서 있는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천천히 그 곳으로 걸어갔다.
인기척을 느낀 간호사가 나를 발견하고는 말을 건냈다.
“혹시 아까 전화 드렸던 이혜진씨 보호자 분이세요?”
대답대신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제발 아니라고 가슴 속으로 끊임없이 외쳐댔다. 옆으로 비켜준 그들을 뒤로 한 채 침대에 누운 한 여자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선홍빛 핏물을 가득 뒤집어 쓴 낯익은 옷차림. 성한 곳 없이 심하게 뒤틀려 괴이하게 누워있는 몸.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일그러진 얼굴.
“혜... 혜진아...”
겨우겨우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실성한 듯 혜진이에게 달려가는 내 몸을 간호사와 의사가 잽싸게 잡았다.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됩니다.”
“혜진아!!! 혜진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그들을 힘차게 밀치고는 혜진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침에 투정부리던 그 얼굴은 어디가고 지금은 죽은 꽃처럼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혜진아- 아니야, 아니야- 흐흑. 혜진아!!!”
“어서 이 보호자 분좀!”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들이 내 몸을 일으켰다.
“이거 놔! 놓으라고!”
“보호자 분! 진정하세요!”
“아니라고! 이럴 리 없어!”
한참을 목놓아 울며 혜진이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
.
.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천천히 들어올린 오른 손에는 자그마한 바늘이 꽂혀 있었다.
“하...”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는지는 몰라도 몸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베개를 등져 앉았다. 쎄한 병원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나서야 잊고 있던 정신이 들었다.
“흐흑... 혜진아...”
울컥한 마음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손으로 쉼 없이 가슴을 두드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
.
.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난 혜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
차를 몰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동네였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사이좋게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은 이 곳이 어떤 곳인지를 잘 말해주었다.
차에서 내려 경사진 언덕을 한참을 올라가서야 도착했다. 끼익-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리자 마당에 앉아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여자는 들고 있던 빨래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세상에. 이게 누구야.”
“언니. 잘 계셨어요?”
“아니, 잘 있다마다. 올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군데군데 박힌 까칠한 굳은살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난 여자를 꼬옥 안아주었다.
“여기 안으로 들어와. 뭐 먹을건 없어도 내가 금방 내줄게.”
“아니에요, 언니. 저 먹구 왔어요. 괜찮아요.”
“에이, 사양말고.”
“아니에요. 저 정말 괜찮아요.”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이 금새 꺼질 것처럼 끽- 소리를 냈다. 한겨울이라 날씨가 무척이나 추웠는데 집 안도 밖에 온도와 다를 바 없이 냉랭했다.
주섬주섬 건네준 방석을 바닥에 깔고 앉았다. 여자는 싱글생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다 정말. 한 몇 년 됐지?”
“그러게요. 그동안 연락 없어서 죄송해요.”
“에이 아니야. 이렇게라도 얼굴 보는 게 어디야.”
언니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기라도 하는 듯 따뜻하고 상냥했다. 몇 번이나 느꼈지만 언니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잠시나마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만큼 아늑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언니에게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런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그 날인거니?”
“네...”
언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방 안의 공기처럼 분위기도 순간 차가워졌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겠니...”
언니가 다시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똑바로 고개를 들고 언니의 눈을 마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언니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언니는 내 손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까칠한 촉감 사이사이에 스며든 따스함이 자꾸만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시 생각해보렴.”
“미, 미안해요...”
몇 마디 되지도 않는 대화에 벌써부터 마음이 울컥했다.
언니는 동생을 잃고 난 이후 항상 내 곁에서 위로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니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자란 탓인지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려주었다. 미친 사람처럼 꾸역꾸역 하루를 넘길 때에도 나에 대해 어떤 쓴소리도 건네지 않고 오히려 보듬어주었다.
언니 덕분에 난 어느 정도 다른 이들처럼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은 결심을 하고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준비할 때에도 서슴없이 언니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언제까지고 나를 응원하고 내 편일 것만 같았던 언니는 내 얘기를 듣고서는 돌변했다. 그것은 물건을 훔친 자식을 나무라는 부모처럼, 비행에 빠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내게 나무랐다.
물론 언니가 나를 미워하거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었다. 그릇된 길로 빠지는 나를 어떻게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행한 것들이었다. 마치 혜진이를 위해 노력했던 나처럼.
“추울텐데 이거라도 좀 끼고 가.”
언니가 서랍장에서 장갑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검은색 털실로 엮어 만든 작은 손장갑이었다. 곳곳에 보풀과 헤진 자국이 눈에 띄었지만 나는 조심히 그 장갑을 들어 주머니에 넣었다.
“진작에 말을 들었으면 옛날에 그만뒀겠지.”
언니는 헛웃음을 내며 말했다. 어차피 내 고집을 쉽게 꺾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는 언니였다. 나는 내심 고마웠다.
현관문을 나서고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는 동안 언니는 묵묵히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미래의 죄책감에 나는 몸이 사르르 떨렸다. 언니는 싱긋 웃어 보이고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싸주었다.
“언니, 저 그럼 갈게요.”
차에 올라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는 언니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래.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무조건 언니한테 와. 언니가 다 알아서 해줄게.”
“풋- 알겠어요.”
“이거봐라. 이제야 좀 웃네.”
언니는 지그시 입꼬리를 올리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의 웃음에 좀 더 언니와 있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서둘러 차를 돌렸다. 내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남았다.
* <<<<
“빼, 뺑소니요?”
“아, 예. 그게 저희가 좀 확인해보니까 아무래도 뺑소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근처 CCTV 도 있고 하니까 너무 염려는 마십시오. 곧 잡아낼 겁니다.”
덥수룩한 수염을 메만지며 형사가 말을 끝냈다.
혜진이의 죽음은 그냥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형사의 말로는 길을 걷던 혜진이를 어느 승용차가 사고를 내고서는 그대로 달아났다고 전해주었다. 다행히도 목격자도 많았고 인근에 CCTV도 많은 터라 쉽지 않게 잡아낼 거라고 일렀다.
형사의 말을 듣자 동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순식간에 분노로 넘어올랐다.
‘가, 감히... 그 새끼를...!’
그리고 그 범인은 얼마가지 않아 드러났다. 바로 혜진이와 미래를 약속했던 은수였다.
범인이 잡혔다는 전화에 하던 일을 모두 내팽겨 치고 바로 경찰서로 달려갔다. 낯익은 뒷모습의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고 있었다.
요동치는 심장을 꾹꾹 눌러 삼키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야 이 나쁜놈아!”
사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아...”
“야 이 새끼야! 니가 사람이야!?”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은수의 머리채를 잡았다. 은수는 몸을 잔뜩 웅크려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걸어가던 형사가 재빨리 다가와 나와 은수를 떨어뜨려 놓았다.
“흐흐흑- 내, 내가... 어떻게 키운 앤데!!!”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만큼이나 배신감이 멈출 수 없을 만큼 끓어올랐다. 은수는 내 모습을 흘깃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자자 진정하세요.”
형사가 나를 부축하여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내어와 내게 건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흐흑... 어떻게... 딴 사람도 아니고... 저, 저 새끼가...흑...”
은수는 혜진이와 동갑내기 고아였다. 부모없는 자매라고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서 동정의 손길을 받으며 자랄 때 은수도 함께였다. 낯선 사람들의 손길에 혜진이는 늘 무서워했지만 또래의 은수가 항상 동생의 친구가 되주었다.
그런 은수가 내 눈에는 항상 예뻤다. 동생이 기죽지 않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항상 혜진이와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그런 빈 자리를 채워준 것이 바로 은수였다.
소꿉친구처럼 항상 붙어 다니던 혜진이와 은수는 어느새 서로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 둘을 위해 일부러 눈을 감아주었다.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와 혜진이가 남은 평생을 함께 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이고. 항상 배려 깊고 동생을 위해 애쓰는 은수야말로 혜진이의 짝으로서 제격이었다.
그런데 그런 은수가 혜진이를 죽였다. 그것도 뺑소니 사고로.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은 나를 더욱 배신감에 물들이게 만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형사가 내게 다가왔다.
“저어, 얘기 좀 드려도 괜찮을까요.”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생 분, 혜진씨가 보험을 들어놨더라구요.”
“보험이요?”
“네- 그쪽께서는 잘 모르고 계셨나봐요?”
“네, 그건 저도...”
“그 보험 들었던 것도 저 새끼가, 아니 저 놈이 부추겼나 봅니다.”
“흐흑. 그런...”
“동생 분 보험금 타먹을려고 이 짓거리하다가 걸린거죠.”
형사의 말을 들으며 은수가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근데 이게 다행이라고 해야될지 뭐라 해야될지.”
형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동생 분께서 수령인을 저 놈으로 해놨다가 몰래 언니 되시는 분으로 바꿨나 봅니다.”
“흐흑...”
“안타깝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튼 저희 쪽에서 저 놈 제대로 콩밥 먹여 줄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작 보험금 때문에 어릴 적부터 함께한 혜진이를 죽였다는 사실이 기가 찼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 10년이 넘는 시간을 그저 종이짝처럼 널부러지게 만드는건지 그 욕망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형사의 말을 다 듣고 나는 몸을 이끌고 은수에게 다가갔다. 머리를 조아리던 은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니.. 니가... 어떻게... 흐흑...”
“미, 미안해요 누나... 흑...”
그렇게 은수와 나는 마지막을 고했다.
* >>>>
마지막 인사를 모두 마치고나자 어느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음습한 공기가 불쾌하게 다가왔지만 오늘의 마지막을 위해서라면 최고의 날씨라고 다독였다.
목적지에 다다르고 차를 세웠다. 아까보다 더 거센 빗살이 매섭게 창문을 때려댔다. 나는 천천히 다시 오늘의 계획을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동생이 남겨준 돈으로 매일매일을 미친사람처럼 살았으며 자살까지도 기도했었다. 삶의 목적을 잃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살아갈 가치를 느끼지 못하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슬픔만 안고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조금의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을 결심했을 때에는 마치 새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내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잔혹하고도 처참한 복수. 못다핀 삶을 떠난 동생에 대한 자그마한 선물이었고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에 대한 처절한 보답이었다.
동생을 잃은 지금 나에게는 은수에 대한 복수만이 내 삶의 목적이고 그 종착지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되새긴 분노는 오늘을 대비해 조금의 양심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양분이었고, 김씨 아저씨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얻은 도구들은 오늘 파티를 위한 모든 것들이었다.
어서 빨리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밖으로 나와 놀고 싶어 하는 수많은 것들이 저 뒤에 가방 안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창문을 살짝 내려 먼 곳을 주시했다. 뻥 뚫린 도로와 힘 잃은 풀들이 비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늘만큼이나 쾌쾌하고 어두운 색의 건물이 서 있었다.
드디어 오늘. 은수가 출소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