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매일매일 카톡창만 보고있는 아재입니다.
그분과의 마지막 대화들을 매일 보고있는겁니다.
보고있노라니 아직도 가슴이 아련해지기도하고 훈훈해지기도하는 복잡한 감정이 드는데요
그 중에 한가지 잘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강 이런 문장이었을겁니다.
"다음번엔 누가 신호를 주면 바로바로 답을하세요, 알고서도 침묵하지 마시고요"
"신호요? 그게 무슨뜻이죠? 저는 눈치가 지독하게 없어서 그런거 잘 몰라요"
"그럼 먼저 다가가보시길"
"늘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제게 그건 너무 어렵네요..."
"(.....)"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대화에서 그분이 제게 말씀하셨던 "신호"란게 대체 뭘까요?
전 당체 이 "신호"라는게 무엇인지 진심으로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거절을 겪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전 제 자신에게 "사랑받을 자격없는 새끼"라는
디폴트값을 매긴채 살아와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인간이란 없다라고는 알고는 있지만 저의 경험들이 절 그렇게 신호를 못 알아채는 남자로 만들어줬네요.
잠시 과거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무려 지난 세기(!)의 일인데요 당시 저는 "불타는 영화광" 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영화광이지만 저 당시에는 "불타는" 이라는 접두사가 붙었었다는게 좀 다르겠네요.ㅋ
지금은 업종 자체가 없어졌겠지만 당시엔 비디오대여점이라는게 있었죠.
저는 저희집앞 버스정류장에 있던 한 비디오가게의 단골이었습니다.
가게가 재법 규모도있었고 사장님도 친절하셨고 제가 수집을 위해 좀 레어한 비디오테이프를 주문드려도
빠지지않고 구해다 주셨기에 그 비디오가게 말고는 다른곳엔 가지 않았었네요.
(이레이져 헤드나 전함 포템킨, 데드 얼라이브같은 영화도 척척 구해다 주셨죠ㅎ)
그 가게에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물어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나이대는 저와 비슷했거나 아님 조금 어렸을겁니다.
워낙 단골이다보니 오고가며 인사정도는 나눴고 그 외엔 딱히 대화는 없었는데 어느날은 제게 대뜸 이런말을 하더군요.
"ㅇㅇ씨는 피셔킹에 나오는 제프 브리지스같네요"
"네?"
"머리모양이 비슷하셔서...ㅎㅎ"
"아, 그런가요, 죄송하지만 아직 보지못한 영화라 잘 몰랐어요..."
"아, 네...ㅎㅎㅎ"
대화는 딱 이게 끝이었습니다. 꽁지머리를 묶고다닌게 그 여학생 눈에는 좀 튀어보여서 그랬나보다 싶고 말았는데
며칠뒤 비디오가게에 가보니 그날은 웬일로 사장님이 나오셔서 일하고 계시더군요.
오늘은 웬일로 이 시간에 나와계시네요, 알바가 쉬나보죠? 라고 여쭤보니 사장님은 잠시 뜸을 들이신 대답으로
그 알바하던 여학생은 오늘부로 그만 뒀다고하십니다.
대학교 방학기간 동안에 잠시 알바를 한건데 개학을 해서 알바를 그만두고 학교 근처로 내려간거라네요.
그 아이가 알바 그만둬서 아쉽니? 라고 물어보십니다.
전 아뇨, 딱히... 라고 대답드린 뒤 그날 볼 영화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신 말씀이...
"그만둔 다음날 잘가라는 의미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사줬는데 그친구가 그때 그러더라 너한테 마음이 있었다고말야"
"?!?!?!?!"
전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 여학생에 대한 정보라고는 그냥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얼굴은 이쁘게 생겼네...
정도밖에 없었고 다른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심지어 대화란것도 손님과 점원간의 대화 말고는
마지막날에 대뜸 던졌던 피셔킹 이야기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귀신이 봉창 두들기는 소리!?
"너한테 호감이 있어서 눈치 여러번 줬었는데 다 무시해버려서 좀 미웠다고하더라ㅋㅋㅋ"
이러시는데 전 얼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슨 눈치를 줬다는건지 진심으로 모르겠거든요.
전화도 해봤는데 네가 엄청 빨리 끊어버렸다던데?
네? 전화라뇨...
아, 생각해보니 그 여학생에게 전화가 온 적은 몇번 있긴 있었죠...
오전에 비디오가게 전화번호로 연락이와서 받아보니 어젯밤에 빌려간 비디오가 최신영화라 대기손님이 있으니
가능하면 빠르게 반납 가능하냐는 지극히 업무적인 전화말입니다.
전화받고는 참 빡빡하게구네 싶어서 옷 대충 챙겨입고 스쿠터타고 슈웅 달려가 빌렸던 비디오 반납하고
다른걸 빌려와서 또 영화를 봤던 기억은 종종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곧바로 "여자가 그렇게나 눈치를 줬는데 그렇게 다 무시해버리면 천벌받아 임마ㅋㅋㅋ" 이러십니다.
전 진짜 억울하더군요, 아니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왜 직접 말을 않고 남의 입을 통해서 알게 만드신건지...
사장님께 그 여학생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느냐고 여쭤봤지만 그건 그쪽에서 그러지 마시라고 말했다며 안알려주십니다.
그래서 그때 그 일(?)은 이걸로 끝이 나버렸습니다만 전 이 일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걸보니
어지간히도 답답했긴 했나봅니다. 그 여학생에게도, 그리고 제 자신에게도 말입니다.
아마 그 피셔킹 이야기가 신호란 것 이었나봅니다.
제가 아재라 잘 모르겠는데 이럴때 말하는 그 "신호"나 "눈치"란게 요새 많이 쓰이는 "썸"과 비슷한 건가요?
그게 맞다라면 썸이란게 최소한 제게는 참으로 얄궂은 것이네요...
생각해보면 그 썸이라는게 제 인생에 찾아왔던 적은 없지는 않았습니다.
혼자서 극장에 가 영화보는걸 즐기는 제게 부득불 같이 영화보자며 조조영화도,
하루 세편관람같은 하드코어한 영화덕질도 마다않고 나와주던 여사친도 있었고
밤마다 전화를 해 몇날며칠, 몇시간씩 인생상담(ㅋ)을 해와서 저로 하여금 헤드셋 전화기를 사게 만든 여사친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오정 전화기라고 반짝 유행했던 물건입니다)
그 외에도 자기가 쇼핑을 나가는데 밥사줄테니 나오라며 하루종일 쇼핑셔틀로 써먹던 여자인간들은
숫자도 하두 많아서 제가 자연스레 여성복 코디쪽에도 눈이 트일 정도였구요
<쇼핑셔틀로 열일만하고 소득은 없어서 악에 받혀 그려본 그림입니다ㅋ>
이런 사소한 것들이 다 "신호"였고 "눈치"였고 "썸" 이었다면 저는 마누엘 노이어를 능가하는 철벽남이겠네요.
(하지만 전부 그랬던건 아마도 아닐겁니다.)
제가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답답한게 바로 이겁니다...
제게 생각이 있으셔서 신호를 주신 거라면 좀 당사자가 눈치를 챌 수 있게 주시라는 겁니다...ㅠㅠ
두번째 고민이랄까요? 눈치없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호의 엇나감"도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전 연애에 대한 생각, 즉 연애관이 좀 남다른 놈입니다.
섹스를 하기위해 누굴 만나고 싶어하지는 않는 편이어서 어떤 여성에게 마음이 생긴다면 그 동기가 다른 남성들과 조금은 다릅니다.
그런데 제 연애관이 이렇다고해서 섹스를 염두해주고 만남을 가지는 사람들을 나쁘게보는건 절대절대 아닙니다.
성인남녀 혹은 성소수자 포함해 자신들의 리비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게 나쁜것도 아니고 불순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별종이라서 힘든 것일 뿐인걸요...ㅠㅠ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가 왜 튀어나오냐면...
이성에 대한 접근동기가 남다르다보니 전 작업(?)횟수자체도 남들에 비해 적은편이고 또 그런걸 원치 않아하시는 분들이 많다는겁니다.
그래서 그런건지 신호를 신호로 이해 못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어느 누군가와 오랬동안 눈을 마주보는 일이 있다면 그때 저와 상대방은 서로를 보고있지만 다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자면 어느날은 친구들 (부랄친구같은 여성들도 섞여있는)과 잔뜩 모여 술을마시다가 연애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들 연애담을 자랑하거나 이런저런 이야길하는데 전 연애경험도 섹스경험도 없어서 그저 남들 이야기만 듣고 있을 뿐이었죠.
근데 이런 술자리는 십중팔구 저에대한 성토로 이어집니다.
사지 멀쩡한놈이 왜 남들 다하는 연애질 한번 못해보고 청승이냐며 구박이 들어옵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 없으니까 너같이 해괴하게 생긴놈도 다 연애 할 수 있으니 일단 아무나 빨리 만나라고 다그칩니다.
전 그런거 싫다라고 한사코 거부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뭐 아시다시피...
"사내새끼가 그 나일 먹도록 밤일 한번 안해본건 문제다 문제"
"맞다, 맞어ㅋㅋㅋ"
전 대답합니다. "나중에 다 때되면 하겠지 뭘 그리 닥달이야?"
"니는 내가보기에 지금 그대로면 오십살을 먹어도 못한다. 내가 돈 내줄게 588이라도 댕겨온나ㅋㅋㅋ"
"내가 그런거 싫어하는거 알면서... 윤락업소 안가는거는 내 긍지거든!"
이때 같이있었던 여자인간들이 했던 말이 전 아직도 가슴속에 사무칩니다...
"ㅇㅇ야, 여자들은 그런데 다니는 남자를 싫어하긴 하는데 그보다 더 싫어하는게 너같은 초짜새끼야ㅋㅋㅋ"
"맞어, 완전 못할거야냐ㅋㅋㅋ"
"시, 시끄러 이기지배야!!"
"너 그거 아냐? 여기 이새키들(남자들을 가르키며) 나한테 최소 한번씩은 들이댔다가 다 까였거든ㅋㅋㅋ"
"근데 딱 한놈 너만 예외야, 너땜에 완전 자존심 상한다 나ㅋㅋㅋ"
다른 여자인간 한놈도 거듭니다,
"나두 나두ㅋㅋㅋ"
하... 저 말은 솔직히 아직도 가슴에 콕 박혀서 절 작아지게 만듭니다.
제 연애관과 세상사람들의 생각의 괴리랄까 간극을 느끼고 더욱 더 자신이 없어지네요.
전 그 여자인간들에게 심장이 쿵쾅대는 그런 느낌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것 뿐인데
어째서 저런소릴 들어야 하는걸까요ㅠㅠ.
저는 섹스가 싫다거나 불능인것은 아닙니다만 섹스가 목적이 되어서 누굴 만나기는 싫은 것 뿐입니다.
저 술자리에서 충격을 받은 저는 좀 흑화를 해 버렸습니다.
모쏠, 동정이라는 낙인이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서 윤락업소에라도 가보라는 친구들의 제안에 동의를 해버렸죠.
그래서 친구들이 낸 돈으로 세번, 제가 돈을 내서 한번, 총 네번 윤락업소에 출입을 해 봤습니다.
근데 사실 전 제 연애관을 포기하거나 수정한건 아니었고요 단지 동정남이라는 멸칭을 털어내려고 꼼수를 부린 것 뿐입니다.
입구에서 친구들이 대충 흥정을 한 뒤 절 밀어넣으면 전 마지못한듯 개별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뒤 절 상대해주실 분이 들어올 때마다 사정이야기를 해 드린뒤 그냥 같이 시간만 때우다 가셔도 괜찮겠냐고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그쪽분들도 저같은 케이스가 처음은 아니신지 그러자며 대략 삼십분 정도 같이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눠주셨죠
그러고는 침대맡의 전화밸이 울리면 바이바이~
( 첨 뵙는 여성분이랑 단둘이 커피마시고 수다를 떨어보니 아마 소개팅을 나가면 이런분위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ㅋ)
피같은 거금을 날려버렸지만 아무튼 거길 네번 다녀오고나니 술자리에서의 공격이 사라져서 아주 편하긴 하더라구요.
[*뱀발로..... 전 제 가치관은 관철했지만 대신 저로인해 적지않은 금액이 윤락업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 지하경제에 한 몫을 한 것만은 틀림 없기에 이점에 대해서는 떳떳하지 못합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단지 섹슈얼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제게 다가오는 여성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또 한가지 들어볼게요.
제가 한때 어떤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공장에서 폭풍같은 열일을해서 사장 이하 여러 임원들에게 제법 괜찮은 대우를 받고있던 우등일꾼이었죠.
그 공장은 돈벌이가 꽤나 짭짤해서 수많은 지원자들이 넘쳐났고 사장은 일단 받아서 써본 뒤 게으르거나
일이 적성에 안맞는 사람을 쳐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덮어두고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사평가를 제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사장의 명령(?)으로 일을하는 틈틈이 땡땡이를 피우는 사람들을 추려서 사장에게 보고하면
사장이 그 사람들을 쳐내는 식이었죠.
공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차피 쳐내야하는것도 있었지만 저 스스로도 자기임무에 소흘한 사람이 극혐이어서
가차없이 모가질 쳐내는데 협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장 인부들 사이에서 저에대해 수근거리는 일이 많았었나봐요.
하루는 공장에서 쉬는시간에 한 여성분이 제게 오셔서는 오늘 일이 끝나면 자기네 집에 초대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여성분은 자신을 포함 여성친구 다섯명으로 뭉쳐 움직이던 그룹의 일원이었고 초대하는 집도 그 다섯명이 같이살고있는
임대주택이었습니다.
전 흔쾌히 승락하고 저녁시간에 약속을 잡았습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깨끗하게 샤워를 한 뒤 새옷으로 갈아입고 주류판매점에서 여성들이 좋아하는
오렌지 머스켓 와인과 로제와인도 한병씩 선물삼아 샀습니다.
그리고 초대받은 그 집에 들어갔는데...
분명 여성분들 다섯명이 살고있다고 들었는데 절 초대해주셨던 여성 한분만 계시더군요. 뭔가 이상합니다.
집안 조명은 딤머로 한껏 줄여놨는지 영 게슴츠레하고 입고계신 옷은 너무 헐하네요.
"아, C-va..." 단번에 눈치를 챘습니다. 이분은 저녁식사와 술자리가 목적이 아니었고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절 부른거였네요.
누가봐도 라면먹고 가라는 분위기인걸 알겠더라고요. 그것도 저라는 인간 자체에 목적이 있던것도 아니고
자신을 포함한 친구 다섯명의 안정적인 일자리확보를 위한 목적이라는 것도요.
전 그분께 선물로 샀던 와인 두병을 안겨드리고 갑자기 급한일이 생겨서 죄송하지만 가봐야겠다고 말한 뒤
그 집에서 도망나왔습니다. 여성분은 당황스러운 눈치셨지만 그런거 신경 쓸 경우가 아니었네요.
섹스가 목적이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목적을 위해 섹스가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는건 귀동냥으로 들어봤기는 했는데
실제로 겪을 뻔 해보니 혼자 걸어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많이 서글펐습니다.
근데 이런 이야기를 왜 했지... 아, 저런 경우도 "신호" 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 신호라면 몇번 받아 본 적이 있었지만 제가 다 물리쳐 냈었습니다.
저런 경우를 계기로 연인관계가 되는 케이스도 있는건지 궁금하네요.
만약 맞는다면 저는 제게 다가오는 기회를 제 발로 뻥뻥 잘 차버리며 자칭 모쏠로 살아온 놈이됩니다...
저는 많은 여성분들에게 자기 말 잘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줘서 참 고마운 사람이라는 이야긴 많이 듣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능력"이 제가 가진 몇 안되는 것들 중 중요한 부분이란걸 알고있구요.
그런데 딱 거기까지더군요.
어느날 가슴이 쿵쾅거려 고백을 해보면 늘 까입니다.
대화상대 그 이상은 제게 매력이 없는거겠죠. 그건 제가 그정도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약 "전에 내가 신호를 줬는데 계속 무시하다가 왜 이제와서 뒤늦게 뒷북이야?"...
라는 케이스가 있다면 그건 가슴이 너무 아프겠네요.
신호를 잘 받아내는 남자가 되고싶습니다.
신호를 잘 받아내는 분들의 테크닉(?)을 듣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