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멕시코 올림픽은 사연이 많았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멕시코 고원에 집결했다. 인간이 100미터 경주에서 10초 벽을 뗀 것도, 고지대였던지라 공기 저항이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멀리뛰기에서 기존 기록보다 무려 55센티미터나 더 나간 8미터 90센티미터라는 경이적인 기록이 등장한 것도 이 올림픽이었다.
이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한 스타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사람은 역시 이디오피아의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였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챙겼고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는 맹장 수술이라는 치명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마라톤 2연패를 기록하면서 동경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아베베가 우승 못할 줄 알고 이디오피아 국가(國歌)를 준비하지 않았고 일본 국가를 틀었다...) 불세출의 마라토너 아베베가 세 번째 올림픽을 위해 멕시코에 와 있었던 것이다.
“멕시코는 내 조국과 같은 고원 지대다.” 아베베는 자신만만했다. 무릎 부상 소식이 있었으나 그는 20킬로미터를 거뜬히 달리며 건강 회복을 과시했다. “두고 보시오. 이번에도 금메달은 내 것이니까.” 로마 올림픽 당시에는 일등병 계급이었으나 금메달을 딴 후 하사로 승진했고 이후 파격 승진을 거듭, 멕시코 당시에는 중위였던 서른 여섯 살 관록의 마라토너는 출전한 모든 나라의 마라토너의 최우선 경계 대상이었다. 아베베만 잡으면 된다...
마라톤 경기가 시작됐다. 아베베는 기운차게 달려 나갔다. 3연패를 향한 기세가 대단했다. 초반에 벌어지면 따라잡기 어렵다! 아베베를 잡아라. 다른 선수들 역시 페이스를 높였다. 헌데 그렇게 선두 그룹을 유지하며 달리던 아베베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17킬로미터 지점에서 별안간 아베베가 코스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다. 기권이었다. 올림픽 3연패를 자신하고 누구나 그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던 우승후보 아베베의 레이스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주변을 달리는 선수들이나 중계방송하던 사람들이나 연도에 늘어선 관중들이나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황, 바로 그때 역시 이디오피아의 젊은 선수 마모 윌데가 치고 나왔다. 아베베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던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한 윌데는 기운차게 멕시코시티의 아스팔트를 박찼고 마침내 이디오피아에 마라톤 3연패를 안기게 된다.
윌데가 영광을 돌린 사람은 비킬라 아베베였다. 알고보니 아베베의 무릎 부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골절상이었다. 그는 이를 숨기고 출전했고 후배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했으며 상대방 선수들의 기운까지 빼 버려 윌데의 우승을 뒷받침했다.
올림픽에 드리우는 국가주의를 예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베베는 한국의 손기정만큼이나 극적인 역사적 승부의 주인공이요 국가적 영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디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군에 맞섰던 이디오피아 군의 일원이었다. 그 아들인 일개 이디오피아 일등병이 한때의침략국의 수도의 가도를 맨발로 달리며 개선문을 통과한 ‘정복자’가 되는 모습은 실로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셀라시에 황제가 왕관을 벗어 씌워 줄 만 했다.
또 맹장 수술을 딛고 극한의 승부를 펼쳐 또 한 번의 우승을 거머쥔 아베베는 비단 이디오피아 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의 영웅이었다. 훈련 때, 극한의 상황에 처할 때마다 “아베베!”를 부르짖으며 이겨냈다는 선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거물이었다. 그런 그가 후배의 페이스메이커로 나섰고 골절상을 입은 다리를 딛고 후배 마모 윌데의 우승까지도 이끌어냈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베베는 그걸 했다. 그를 통해 일궈낸 이디오피아 남자 마라톤 3연패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그리 많이는 알려지지 않은 멕시코 올림픽의 비화 하나 더. 아베베가 달리고 윌데가 우승한 마라톤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탄자니아의 아크와리가 있었다. 그는 애당초 메달권에서 벗어났고 다른 선수들이 다 레이스를 마친 뒤에도 거리에 있었다. 관중들 태반이 자리를 뜨고 경기장 분위기도 어수선할 무렵 갑자기 장내 아나운서의 힘차면서도 떨려 나오는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 마라톤 경주의 마지막 주자가 지금 골인하고 있습니다.”
아크와리는 경기 중 부상으로 붕대를 감고 있었고 붕대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절뚝거리면서도 그는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해 악착같이 뛰었다. 마침내 아크와리가 결승점을 통과한 순간 남아 있던 관중들과 경기 진행 요원들과 기자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감동에 겨워 아크와리를 찾은 기자들은 앞을 다투어 아크와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의지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까?” 그때 아크와리의 대답은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명답이었다. “탄자니아는 나더러 참가만 하라고 지구 반바퀴 돌아야 하는 이곳에 보낸 게 아니라고요. 완주하라고 보낸 거라고요. 포기하지 말라고 보냈단 말입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지만 동시에 스포츠에 그칠 수 없는 이유는 가장 정직하게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발현되는 장이며 인간의 미덕과 악덕이 그럴 수 없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마라톤의 영웅이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우승을 장담하는 한켠으로 후배를 은밀히 불러 “내가 네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 내가 쓰러지면 네가 치고 나와라.”고 굳은 악수를 내밀고, 골절상을 입은 다리로 후배를 위해 악으로 깡으로 다른 선수들 진을 빼기 위해 달리기도 하고, “참여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발이 지축을 박찰 때마다 피가 뭉근하게 배어나는 부상을 딛고 달리기도 하는 것이다.
반세기 전에 열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구태여’ 회고하게 된 배경은 오늘 안희정 지사의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이다. 오랫 동안 그는 ‘페이스메이커’로 불렸다. 사람 속이야 알 수 없으니 그가 그 호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에사 본인이 이를 부정하고 이미 본인도 금메달을 노리는 출전 선수라고 선언한 마당이지만 어떤 이들은 아직도 페이스메이커라는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 아베베를 위한 마모 윌데라는 얘기다. 그러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페이스메이커란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가능성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마라톤 2연패의 관록’이나 ‘세계인의 우상’ 의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아베베가 윌데의 승리를 위해 페이스메이커로 나선 이유다. (아베베가 윌데에게 양보하라는 얘기냐?고 발끈하실 분들은 안계시리라 믿는다. 그런 얘기가 아니다)
아울러 모든 경기는 참가에 ‘의의’가 있지만 참여가 ‘목적’이어서는 곤란하다. 경기는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고, 안희정 지사는 아크와리처럼 무슨 난관이 닥치든, 무릎에 붕대를 감든 뼈가 부러지든 ‘페이스메이커’를 넘어서 결승점까지 달음박질칠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모르는 모양인데 나를 지지한 사람들이 페이스메이커나 하라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본인이 얘기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지지자들이 “모르는 모양인데 안희정을 페이스메이커나 하라고 내가 지지하는 게 아니야. 그는 이런 사람이라고!”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여건과 수준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은 참으로 사연이 많았다. 올림픽개최에 반대하는 학생들 수백명을 학살한 틀라텔로코 참사 열흘 뒤 개막의 팡파르를 울렸고 IOC가 인종차별 국가 남아공과 로디지아의 참여를 거부했지만 정작 올림픽 시상대에서의 인종 차별 반대 시위를 한 이들은 선수촌에서 추방당했다. (메달은 빼앗지 않았다지만) 그러나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드는 동료 메달리스트들의 행동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도 인종차별 반대 배지를 달았고 그로 인해 말못할 고난을 겪었던 백인 은메달리스트 피너 노먼처럼, 그리고 아베베, 윌데, 아크와리처럼 인간의 가치와 품격을 드러내는 이들도 그 역사를 장식했다.
그야말로 우리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을 했나 자괴감으로 충만한 2017년 한국...에서도 그런 울림이 퍼져나기를 바라 본다. 안희정 지사의 대통령 출마 선언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