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끝까지 씨만 뿌리던 그들의 위하여
이 리뷰는 ‘도깨비는 해피엔딩 드라마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해피엔딩이다. 누구는 해피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이다. 또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본인의 의견은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쪽에 한 표를 던진다. 그렇기에 이 리뷰의 제목을 ‘끝까지 불행했던’이라고 시작하는 것이다. 위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은 모두 해피엔딩을 꿈꾼다.
도깨비 신부인 지은탁은 그녀의 인생을 소개할 때 사고무탁으로 시작하여 조실부모로 말을 이어낸다. 그 누가 봐도 행복이랑은 거리가 먼 그녀의 인생이다.
도깨비는 어떠한가. 그는 존재 자체가 신의 벌인 존재였다. 영생을 살아가나 죽음을 꿈꾸고,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슬퍼해야하는 존재.
저승사자 역시 전생에 큰 죄를 지어 벌을 받는 존재이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어 괴로워하고, 전생에서 그의 신하에게 독살 아닌 독살을 당하는 존재. 박충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뱀의 혀에 취한 존재이다.
그리고 김선 혹은 써니는 전생에 오라버니인 김신과 지아비인 왕여. 그 사이에서 죽음을 당하는 존재. 그리고 현생에서 역시 도깨비와 저승사자 사이에서 존재하다 다음 생을 기약하며 이별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모두 불행했고 해피엔딩을 꿈꿨다.
본디 인간은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꿈꾸는 존재이다. 도깨비는 죽음을, 저승사자는 전생을 기억을, 지은탁은 행복을, 써니는 자신의 연인과 행복하게 살기를 말이다.
그렇기에 본인은 그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들이 가진 행복은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단편적으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써니의 대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있는 모든 순간이, 슬프고 힘들었던 것조차 다 그조차도. 다 좋았네요.”
위 대사를 보고 누가 ‘아 행복했구나.’ 라고 단정 지어 말 할 수 있을까 싶다. 순도 100% 행복을 그들의 인생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김선의 말에는 유독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해피엔딩이었다. 해피엔딩인가요?, 해피엔딩이 되었나요? 등등 말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끝이 났다. 인물 중에 해피엔딩으로 끝난 인물이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더라도 어느 캐릭터가 행복해졌구나. 라고 미소를 지을 존재는 없다.
도깨비는 죽음을 탄원했으나 신부를 만나고 죽음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의 운명에 따라 죽음을 경험했고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돌아왔다. 그러나 도깨비 신부를 죽음으로 잃었다. 그리고 그의 벌인 자신과 가까운 자들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픔을 계속 경험했다.
저승사자는 전생에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자신마저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저승사자가 되어선 끊임없이 전생의 기억을 궁금해 했다. 끊임없이 신에게 질문을 던졌고 어떠한 대답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의 전생을 기억나게 하는 징벌이었다. 이를 통해 저승사자는 끊임없이 죄책감에 빠져있어야만 했고 그 스스로가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지경까지 이르었다.
도깨비 신부는 그녀의 삶 자체가 고난이었고 슬픔이었다. 도깨비를 만나 이제 좀 행복해지나 싶었더니 도깨비가 무로 돌아갔다. 10년이 넘는 세월 약으로 버티었고 우울증에 약까지 달고 살았다. 그리고 도깨비가 돌아오고 다시금 행복을 꿈꿔볼까 하는 찰나에 그녀는 희생이라는 단어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선. 그녀는 자신의 정인을 기다리다 나이를 먹었다고 신세를 한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만나 연애를 하는가 싶었으나 왕여와 김선은 전생부터 꼬여버린 업이 너무나도 깊었다. 전생에 자신을 죽게 한 존재. 그러나 너무나도 사랑한 존재. 정말로 싫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왕여를 위해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난다. 이번 생에도 이루어지지 못한 그녀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내생이 시작되었다. 30년이 지나고 도깨비는 결말을 맞는다.
도깨비는 여전히 살아있다.
도깨비 신부는 기억을 가지고 환생하여 다시금 도깨비를 만났다.
왕여와 써니는 이번에는 이별하지 않고 서로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끝이 난다.
아마 이 부분에서 작가는 해피엔딩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결말은 행복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은 이것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다시금 말할 수 있다. 또 다시 김선의 대사를 차용하자면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전생 다 기억났다고 해서 내가 진짜 김선이라도 된 줄 아나본데.”
써니 자기 자신이 전생의 본인인 김선과의 존재를 확연히 구분 짓는 말이다. 자기 자신은 김선이 아닌 써니 즉 독립적인 개채라는 것이다. 결국 김선과 써니는 별개의 존재이며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결국 이는 본인이 꿈꿨던 존재들이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내가 행복하길 꿈꿨던 것은 지은탁이었고, 써니였고, 김우빈이었다. 강남서 강력계 이혁이 아니고. 여배우가 된 유인나도 아니고 지은탁의 환생인 박소민도 아니었다.
전생이 기억나지 않는 이혁이 행복하다고 해서 왕여가 김우빈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김선 역시 마찬가지다. 김선과 이혁은 해피엔딩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가지길 바랐던 행복은 전혀 다른 존재가 가지었다.
전생과 내생으로 이루어진 동일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 상태라면 전혀 다른 존재이고 조금 과격하게 말해서 얼굴만 같은 사람이다. 도플갱어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결국 써니와 왕여는 불행하게 끝이 났다.
그렇다면 전생을 기억하는 소민 즉 지은탁과 도깨비는 어떠한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얼굴이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존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철학적인 논쟁이 되기 쉬우니 넘어가고 극중에 나왔던 대사를 다시 한 번 언급한다. “내가 전생 다 기억났다고 해서 내가 진짜 김선이라도 된 줄 아나본데.”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고 극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은탁이라는 존재가 살아온 시간과 길이. 박소민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환생했을 때 걸어온 그리고 걸어갈 길이 동일한 길이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박소민은 써니와 같은 사장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반장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반장이 주는 행복. 라디오PD로 가질 수 있는 행복, 써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복. 그 모든 것을 지은탁은 누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었다.
결국 지은탁 역시 행복하지 않은 엔딩이었다.
마지막으로 도깨비는 신의 벌이 끝났음에도 그녀의 신부를 위해 이 세상에 남아있으며 앞으로 끊임없이 이별을 격어야 한다. 계속해서 슬퍼해야 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별을 애써 담담한척 모른 척 해야 한다. 그녀가 올 때마다 깨어나고 그녀가 죽으면 함께 죽는 그런 편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슬픈 도깨비의 운명이다.
김선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해피엔딩이 되었나요? 그리고 나는 대답한다. 아뇨 지은탁은, 써니는, 김우빈은, 유신재는 그들은 세드엔딩으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