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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유비는 정말 울보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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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군대민영화
추천 : 7
조회수 : 1840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2/16 20:18:49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687016&cid=265&categoryId=4820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유비는 정말 울보였는가?


중국 속담에 ‘유비의 강산은 울음으로 얻은 것이다.’란 말이 있다. 독자들의 뇌리에 새겨진 유비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바로 걸핏하면 잘 운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징의 출처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온 게 아니라,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비롯된 것이다. 나관중은 유비의 특징을 묘사함에 있어서 울음이라는 소재를 즐겨 이용했다.


제36회에서 서서가 이별을 고할 때를 펼치면, ‘유비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울었으며’, ‘얘기가 끝나자 눈물이 마치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현덕이 울면서 이르기를’,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등의 묘사가 줄을 잇는다.

제38회 제갈량의 모려(茅廬)를 세 번째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제갈량이 여전히 하산하려 하지 않자, 현덕이 울면서 말했다. “선생께서 나오시지 않으면 저 불쌍한 백성들을 어찌합니까?” 말을 마치자 눈물이 도포의 소매 자락을 적시어 옷이 온통 다 젖었다.’라고 묘사했다.

또 제41회에선 유비가 조조의 대군을 피해 백성을 거느리고 번성을 떠나 도망가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현덕이 배 위에서 바라보고는 크게 슬퍼하면서, ······ 강물에 뛰어들어 자진하려 함에 좌우에서 급히 말렸다. ······ 배가 남쪽 언덕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돌아보았다. 건너지 못한 사람이 있었기에 남쪽을 향해서 울었다.’고 했다.

제42회에서는 조운이 아두를 가슴에 품고 천군만마 속을 헤쳐 나와 유비를 만나는 장면이 펼쳐진다. ‘조운이 말에서 내리더니 땅바닥에 엎드려 울고 유비도 울었으며 ······ 유비는 자식 때문에 훌륭한 장수를 잃을 수 없다고 하면서 아두를 땅바닥에 던져버렸다.’고 묘사했다.

또 제55회에서 유비가 동오(東吳)의 사위가 된 뒤 형주로 돌아가야 될 일이 생기자, 손부인(孫夫人)을 보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말을 마치자 눈물이 비 오듯 했다.’, 또 ‘현덕이 급히 수레 앞으로 가서 손부인에게 울면서 고하기를’ 등의 묘사가 줄을 잇는다.

제56회에서는 노숙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 달라고 요구할 때였다. ‘유비는 제갈량의 지시대로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가리고 크게 울었다.’,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현덕의 오장육부 깊은 곳을 건드리자, 진정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목 놓아 통곡했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제60회의 장송을 송별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는 식으로 묘사했고, 제65회에서는 유장의 투항을 받아들이면서 ‘성채(城寨)를 나가 영접하는데, 악수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등등의 장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열거 내용은 아직도 방통이나 관우, 장비의 죽음을 포함하지 않은 울음일 뿐이다.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유비는 아주 유명한 효웅(梟雄)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ㆍ주유전』에는 주유가 손권에게 올린 서찰에서 유비를 효웅의 자질이라는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고, 『삼국지ㆍ노숙전』에는 노숙이 손권을 달래면서 유비는 천하의 효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유비를 충후장자(忠厚長者), 인덕지군(仁德之君)으로 그리고자 했다. 이 때문에 효웅으로서의 유비의 이미지는 크게 약화되었다. 예를 들면 독우의 종아리를 친 사람도 유비요, 박망파(博望坡)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도 유비인데, 나관중은 도리어 이를 장비와 제갈량이 한 일로 변형시켜 놓았다. 사나이라면 모름지기 가벼이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는 시대였는데, 하물며 효웅이라 불리는 인물이 어찌 그리 걸핏하면 눈물을 비 오듯 흘릴 수 있었겠는가?

『삼국지ㆍ선주전』 배송지의 주에서 인용된 『구주춘추(九州春秋)』에는 한 때 유비가 상당한 기간 동안 형주에서 기거했는데,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붙은걸 보고는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으며, 또 『전략』에서는 유비가 유표의 묘를 지나다가 고별을 하고 마침내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다는 기록(이 두 기록은 모두가 『삼국지연의』에 흡수되어 활용되었다.)이 있다. 그러나 사서의 기록에서는 비록 울었다고 기록했지만, 이 울음은 영웅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한 감개를 표현하거나, 절친했던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비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기에 위에서 묘사한 울음과는 결코 동일 선상에 두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나관중의 목적은 이렇게 여러 차례 우는 모습을 통해서 유비가 인자하고 거짓 없고 성실한 자세에서 인의로 천하를 얻은 진정한 군주임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여러 차례 우는 모습을 묘사한 게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울음은 장소나 정감이나 이치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불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차례 반복되는 울음은 사서의 기록뿐만 아니라, 유비 본래의 효웅적 특성과도 어긋난다. 특히 동오의 손권이 형주를 돌려달라는 요구에 대응한다는 미명 아래 제갈량이 울라고 하면 바로 울고, 혼인하라면 또 바로 그렇게 순순히 응해버려서, 마치 생각도 줏대도 없는 하나의 나무인형 같을 뿐이다. 물론 나관중이 제갈량의 재지(才智)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하여 취한 조치였겠지만, 일세의 효웅이었던 유비를 꼭두각시 배우로 묘사한 것은 별로 정당한 수법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노신도 ‘유비의 장후한 인품을 드려내려 하다가 오히려 가짜 같이 되어 버렸다.’고 평했다.

청나라 조설근(曹雪芹)의 『홍루몽』에 나오는 임대옥(林黛玉)의 울음은 유비의 울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짜처럼 느끼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대옥의 울음은 그녀의 성격 변화 상 필연적인 결과이기에 누가 보아도 감정상으로나 이치상으로 합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유비의 울음은 나관중이 억지로 꾸민 것이라 자연스럽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손을 댄 흔적이 현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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