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았다. 사람들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 5. 20
전남매일신문 기자일동, 전남매일신문 사장 귀하
이 성명서는 일부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5월 19일의 참상을, 검열의 철조망을 뚫고 인쇄하려던 노력이 간부의 방해로 좌절되자 단문으로 작성한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나온 언론 관련자의 유일한 성명서 입니다.
그 때의 전남매일신문의 기자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금남로에서 일어났던 생생한 현장을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것이며, 민간인 사망자는 없고, 일부 불순분자들을 보면 즉각 신고해달라는 계엄군의 호소문을 그대로 싣는 수준에 불과했던 신문의 역할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신문 제작 거부 투쟁을 벌였습니다. 또한, 집단 사표까지 제출했습니다. 그 당시 편집국장은 불편한 심정으로 몇 사람 안 되는 사람들과 신문 제작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 신문은 1980년 5월 20일에 19일, 어제처럼 발행되었으나, 사설이 없는 신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정황 속에서, 시민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동참에 호소하는 유인물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 세력은 이것을 유언비어에 불과하다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엄중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설령 유언비어가 아닐지라도 신군부에 반하는 언행은 금지되었습니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그 때, 그 현장에서 일어났었던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인물을 보고 그 과장성에 의아함이 생겨, 시위가 있는 도심 한복판으로 걸어갔던 사람들이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에 적힌 내용이 정말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신군부를 위시한 계엄군의 말처럼 불순분자의 선동과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의 시위를 방관하다가, 군인들의 잔혹함에 항의를 하고, 그러다가 점차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광주에 있었던 비공식적 유인물들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 아닌, 대안언론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언론은 제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정보는 부족한 상황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위해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 정보에 의존하는 정보의 한 형태를 보이게 됩니다. 만약 이것을 단순한 문제적 현상이라고 지적한다면 전쟁이 발생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에 공식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면, 무엇에 의존할 것인지 어떤 정보의 형태에 의존할 것으로 보이십니까. 때론, 진실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일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p.s. 조용히 퍼지고 있는 대자보들과 이를 무서워할 것임에 틀림없는 특정 세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 측면에선 많이 유사한 것 같습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