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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를 인용할 때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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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명광개
추천 : 7
조회수 : 104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12/14 01:27:54
1. 작성 동기

 

위덕왕의 즉위기년에 대한 역사동호인 분들의 논의가 오가면서, <일본서기>의 기록이 <삼국사기>의 기록보다 신빙성이 높다는 의견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특히 위덕왕 즉위기사가 3년 후에 나온다는 것을 대표적인 논거로 제시하시기도 했는데, 실상은 <창왕명석조사리감>은 백제 창왕(=위덕왕) 13년을 정해년(568)로 기록함으로써 백제 위덕왕은 555년 즉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많은 역사동호인들이 정황적인 면만으로 일본서기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본서기는 7세기, 8세기 경의 기록도 오류가 보이곤 합니다.[1] 이에 저는 일본서기를 인용할 때에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2. 왕이 된 김춘추가 이찬(伊飡[2])이다?
 
삼국사기에는 (특히 신라본기에는) 관등이 소급 적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삼국사기의 관등을 부정하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관등을 더 신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라인의 관등 또한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688년) 5월 계축 갑술(22일), 토사숙미근마려(土師宿彌根麻呂)에 명하여 신라의 조문사절 급찬 김도나(金道那) 등에 조(詔)하여, "태정관의 경들이 (중략) 그때 신라가 말하기를, "신라의 칙을 받들 사람은, 본래 소판(蘇判)의 위에 있는 사람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문에 법마려(法麻呂) 등은 알려야 할 조서를 선언할 수 없었다. 만일 전례가 되는 것을 말한다면, 옛적에 고토쿠(孝德)덴노가 붕어하셨을 때, 거세도특(巨勢稻特) 등을 보내 상을 고하는 날에, 이찬(翳飡=伊飡) 김춘추가 칙을 받들었다. 그것을 소판이 칙을 받든다고 말하는 것은 전의 일에 어긋난다. (중략) 그대의 왕에게 전하라."라고 하였다.  
고토쿠 덴노는 654년 10월[3] 죽었습니다. 그런데 김춘추는 654년 4월에 신라 왕에 즉위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서기는 당시 이미 왕이 된 이찬 김춘추가 왜국 사절의 교서(칙서)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일본서기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654년 10월 당시 이미 왕에 즉위한 김춘추를 이찬으로 다운그레이드(?)시키고 있다.
2) 신라 왕 김춘추가 왜국의 교서를 직접 받들었다는 서술을 하고 있는데, 당시 신라와 왜의 국력을 비교해보았을 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일본서기>가 인용한 <백제신찬>의 중대한 오류
2년(420년) 가을 7월, 백제의 지진원(池津媛)은 덴노가 장차 부르려고 하는데도, 석천순(石川楯)과 통하였다. [옛 본에 석하고합수(石河股合首)의 선조 순(楯)이라고 하였다.] 덴노가 크게 노하여, 대반실옥대련(大伴室屋大連)에게 조(詔)하여 하여금 부부의 사지를 나무에 묶어 매어 임시의 자리 위에 놓고, 불로 태워 죽였다. [백제신찬에 말하였다. 을사년 개로왕이 즉위하였다. 덴노가 아례노궤(阿禮奴跪)를 보내, 미녀를 청하였다. 백제는 모니부인(慕尼夫人)의 딸을 단장하여 적계여랑(適稽女郞)이라 하였다. 덴노에게 바쳤다.]
 
겨울 10월 신미 계유, 길야궁에 갔다. (후략)
-《일본서기》유라쿠 덴노 2년조
붉은색으로 표시한 주(注)가 2년조의 7월조와 10월조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서기의 저자는 이 사건을 유라쿠덴노 2년으로 본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유라쿠 덴노 2년은 420년인데, 주에 쓰인 을사년은 429년입니다. 즉 저자가 실수로 9년의 오차를 낸 것입니다.
이처럼 일본서기는 연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오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개소문의 사망년도 같은 사례인데,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심지어, 429년과 가까운 때에 즉위한 왕은 비유왕(427~455)이지, 개로왕이 아닙니다. <백제신찬>마저 오류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상한 일본서기의 백제 왕계
 
21년(477) 봄 3월, 덴노는 백제가 고려에 의해 파멸하였다고 듣고, 구마나리(久麻那利)를 문주왕(汶洲王)[4]에 주고, 그 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중략) [문주왕은 개로왕의 모제(母弟)이다. <일본구기(日本舊記)>에 구마나리를 말다왕(末多王)[5]에 주었다 한다. 아마 이는 잘못일 것이다. 구마나리는 임나국의 하치호리현(下哆呼唎縣)[6]의 별읍(別邑)이다.]
 
(중략) 23년(479) 여름 4월, 백제의 문근왕(文斤王)[7]이 훙(薨)[8]하였다. 덴노가 곤지왕(昆支王)의 5명의 아들 중 둘째 아들인 말다왕이 젊고 총명하므로, 칙하여 궁중에 불렀다. (중략) 백제의 왕으로 하였다. 무기를 주고, 아울러 축자국(筑紫國)의 군사 500명을 보내 나라에 호송하였다. 이를 동성왕이라 한다.
이해 백제의 조공이 어느 해보다도 많았다. 축자의 안치신(安致臣), 마사신(馬飼臣) 등이 수군을 거느리고 고려를 쳤다.
-<일본서기> 유라쿠 덴노 21년조, 23년조
 
(4년, 502년) 이해, 백제의 말다왕이 무도하여 백성에게 포학한 짓을 하였다. 국인이 제거하고, 도왕(島王=무령왕)을 세웠다. 이를 무령왕이라 한다.
-<일본서기> 부레스 덴노 4년조 
여기서 일본서기의 아주 중대한 착오가 눈에 띕니다.
문주왕이 즉위한 지 2년만에 삼근왕이 죽는 걸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주왕의 즉위년대는 475년인데, 일본서기는 477년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삼근왕의 재위기간 또한 477~479년인데, 그렇다면 문주왕 즉위 후 삼근왕이 죽을 때까지 5년이 걸린 겁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2년 만에 문주왕이 즉위하고 삼근왕이 죽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문주왕이 죽었다거나, 삼근왕이 즉위했다는 기사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또한 무령왕의 즉위년도에 대해서도 1년의 오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5. 결론
 
사실 사례는 훨씬 많지만 귀찮고 힘들어서(......) 글 작성을 그만하고 결론을 내려 볼 까 합니다.
일본서기의 대한관계 기사는 4~5세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6~8세기까지의 일본서기의 기사 또한 섣불리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일본서기>에는 가끔씩 중국 측 사서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전하지 않는 귀중한 기록이나 정황증거가 담겨 있곤 합니다. 하지만 열도답게(?) 여러 잘못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일본서기>를 인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황적인 면만 보고, 일본서기가 더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서기>의 기사 중에서는 다분히 설화적이거나 일본에 의해 각색된 기록도 여럿 보입니다. 1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연구의 현실에서 <일본서기>는 마치 달콤한 장어와 같이 보이기도 하겠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복어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일본서기>의 4세기 기록 등, 그 이전의 기록은 그냥 막장이죠. 물론 건질 게 있기는 있습니다.
[2] 飡은 분명히 '찬'이라는 음이 있는데, 컴퓨터에서는 '먹을 손'으로만 인식해서 쓰는데 애먹었습니다 ㅠㅠ
[3]<일본서기>에 654년 10월 임자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인터넷에는 11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왠지 모르겠습니다;;
[4]우리 측 기록의 文周王인데, 한자가 다릅니다.
[5]말다왕은 동성왕을 말합니다. 동성왕의 이름이 모대(牟大)인데, 이것의 일본식 표현이 말다(末多)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6]여기서 재미있는 떡밥 하나를 던질 수 있습니다. 가야 말기에, 현(縣)제가 실시된 것인가...
[7]문근왕은 삼근왕(三斤王) 또는 임걸왕(壬乞王)으로 여겨집니다.
[8]왕(王)이 죽었다는 의미로, '붕어'보다 한 단계 낮은 표현입니다. 실제 백제 왕실의 경우 사마왕릉지석에서 보이듯이 붕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일본서기는 이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어제 오유 가입한 명광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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