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스무살이 되었다. 난 눈이 벌개져 연애를 찾아헤맸다. 연애만이 날 구원해 줄 거라는. 생각은 없었을지 모르나.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로맨틱한. 어떤 낭만적인. 소나기 오는 거리를 함께 손잡고 걷는. 그럼에도 춥지 않은. 밥그릇 하나로 둘이 나눠 먹어도 얼굴만 보고 있으면 배가 부르는. 그런 연애가 있을 것 같았다. 집이 아닌 어딘가에. 학교가 아닌 어딘가에. 사랑은 달콤할 것만 같았다.
연애는 불꽃 같았지만 연료는 나였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났다.
어떤 썸을. 어떤 식사를. 어떤 대화를. 어떤 영화를. 그리고 연애를. 만남은 찾아왔고 그 중 몇을 간신히 손에 쥘 수 있었다. 손에 쥐지 못한 것은 백사장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난 언제나 나 자신이기 위해 노력했다. 바꿔 말하면. 나는 나였던 적이 없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어떤 인간이고 싶었다. 뭔가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만이 나의 지상과제였고. 그 곳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없었을까?
문득.
그 모두가 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구한 날 나를 잃어버리는 나날. 그게 나였다. 좋아했던 사람도 있었고. 날 좋아했던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가벼워지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자기혐오 따위의 자질구레한 허깨비들이 더께처럼 덮개처럼 날 덮고 있었고. 오히려 무거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게를 잃어버린 무게추처럼. 닻을 흘리고 온 통통배처럼. 조류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직업도 나이도 속박도 구속도 가정도
교우도 관계도 돈도. 특히 통장에. 남는 숫자도. 그리고 미래도. 미래라거나 미래라거나. 내일이라거나. 그걸 전부 버리기로 했다. 버리기로 한 것인지, 그것들이 나를 버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백사장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것은 내 발치쯤에 쌓여 있었다. 지난 삼 년 간. 난 그걸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삶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이고. 그렇다면 사랑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무엇일까. 어디일까.
요리를 하고... 어설픈 표현이다. 난 밥을 지어 먹었다. 언제나 밥을 지어 먹고. 그리고 면을 끓여 국수를 만들고. 고기를. 굽고 졸이고 쪄서 먹고. 청소는 게을리 했지만 내 고양이는 나를 사랑했다. 늘 술을 가까이 했고. 이마는 넓어지고. 살은 피둥피둥 쪘고. 하지만 담배를 끊었다. 끊는 것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흡연에 실패한 것일지도. 가끔씩은 치킨을 시켜 먹었고. 가진 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의외로 배가 불렀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슬슬 부르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모든,
헛배가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그 모든 게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난 그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냥 도망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더 생각해 보았다. 꽤 오랫동안 생각했다. 고등학교도 3년. 중학교도 3년. 나는 백수로 꼬박 삼 년을 지내며 차근차근 생각했다. 생각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게. 흘러가는 건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었을 뿐.
그리고 가끔. 그냥 연애가. 서로의 신체와. 그리고. 어찌 되었건 일상을. 고요하게 공유하는. 폭발적이거나 달콤하지는 않은. 밍숭맹숭한. 소금이야 나중에 치면 되는 거니까. 그런. 가벼운 애무와. 그리고 부드러운. 그런 교류 같은 것이. 필요하진 않더라도. 그저 느긋하게.
그럴 때가 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