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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 기관총
게시물ID : military_12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롤랑
추천 : 3
조회수 : 285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13 18:19:24

1914년 9월, 프랑스가 마른(Marne)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독일의 맹공을 간신히 막아낸 후 전선의 곳곳에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한 참호가 깊게 파여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치 상황은 잠시고 전쟁 초기의 치열한 기동전이 곧바로 재현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파여진 참호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방어 진지로 변하였고 어느 틈엔가 제1차 대전 당시 서부전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방어를 위한 구조물인 참호는 전선이 고착화되었음을 의미하였고 이때부터 전쟁의 대부분은 양측이 만들어 놓은 참호선 사이에서 벌어졌다. 장장 4년 동안 수백만의 양측 병사들이 이곳에서 사상 당했을 정도로 싸움은 참혹했다. 전투에 많은 무기들이 동원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기관총은 최고의 살인기계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독일군과 연합국 모두 같은 기관총을 사용하였다. 바로 모든 기관총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맥심(Maxim) 기관총’이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양측 모두에서 사용되며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맥심 기관총
사진은 맥심 기관총을 시험하는 발명자 하이람 맥심.

작은 생각에서 출발한 총기사의 이정표

제1차 대전을 계기로 많이 부각되었지만 사실 맥심 기관총은 당시 처음 등장한 신무기는 아니었다. 이를 만들어낸 하이람 맥심(Hiram S. Maxim)이 1883년에 특허를 출원하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던 무기라 할 수 있다. 미국 태생으로 영국으로 귀화한 발명가 맥심은 사격 시에 발생하는 반동을 이용하면 탄환을 자동으로 재장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런 작은 아이디어는 총기 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당시 대부분의 총은 수동으로 재장전하는 형태였으므로 연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전투에 많은 인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였다. 계속 방아쇠를 당겨 쏘는 반자동총이나 개틀링건(Gatling Gun)처럼 일부 연사가 가능한 총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수동식이었고 사용이 불편하였다. 연구 끝에 맥심은 새로운 개념의 총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맥심 기관총이라 명명하였다.


발사에서 장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었으므로 사수는 오로지 목표물만 바라보고 사격만 하면 되었다. 이 때문에 맥심 기관총은 현대식 자동화기 또는 기관총의 효시로 보는데, 이전의 개틀링건 방식과 달리 탄띠급탄식을 채택하여 분당 최대 650발의 발사속도를 가졌다. 이는 숙련된 50명의 사수가 발사하는 소총의 화력과 맞먹는 것이었을 만큼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경이적인 수준이었다.

맥심 기관총의 도면. 반동을 이용하여 다음 탄환을 장전·발사하는 최초의 기관총이다.

1895년 제작된 초기 형태의 맥심 기관총.

이미 시현된 무서운 화력

처음에는 개인이나 식민지 정부 등에서 시험 삼아 구입하였고 1888년 11월,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에라리온에서 원주민 탄압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정작 군 당국에서는 이 혁신적인 화기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아 맥심은 판매를 위해 직접 유럽 각국을 돌며 시범을 보여야 했다. 시범을 본 많은 이들은 빠른 발사 속도에 경악하며 관심을 표명하였고 속속 구매의사를 보였지만 정작 주문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1889년 최초로 도입하였지만 대량 채용을 거부하였던 영국군의 생각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기관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던 맥심 기관총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적어도 5~6명의 인원이 필요했고 수랭식 시스템을 채용하였음에도 종종 과열로 문제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강력한 화력을 인정하지만 일선에서 보병들이 사용하기에는 곤란한 무기로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맥심 기관총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1893년 짐바브웨에서 원주민의 항거가 벌어졌는데 4정의 맥심 기관총을 보유한 불과 50여 명의 경비대가 무려 4천여 명의 원주민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한마디로 학살이었고 이것은 제1차 대전의 비극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특히 정규전이었던 1905년 러일전쟁 당시에 1정의 러시아군 맥심 기관총에 일본군 1개 대대가 도륙되기도 하였다.

러일전쟁의 여순 전투에서 공격하는 일본군을 도륙한 러시아군의 사진. 이 전투는 맥심 기관총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일본이 결국 전투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일본 군의 인명피해는 러시아 군보다 훨씬 컸다.

피아 모두가 채택한 기관총

동시기에 맥심 기관총의 효용성을 깨달은 여러 나라들이 라이선스 제작에 들어갔는데 그 중 가장 앞장섰던 나라가 독일이었다. MG08 스팬다우(Spandau)라 명명된 독일형 맥심 기관총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썰매모양의 거치대등을 장착하는 식으로 일부 개조가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인 사양은 동일하였다. 그 결과 1914년 제1차 대전 발발 당시에 독일은 총 10만정의 맥심 기관총을 장비한 최대 보유국이 되었다.


또 하나의 군사대국인 러시아군도 같은 방식으로 맥심 기관총을 라이선스 생산하였다. 러시아용은 별도의 제식 소총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약실이 개조되었고 이런 저런 사양 개조로 가장 무거웠던 맥심 기관총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PM M1905기관총이다. 제1차 대전 당시에는 이를 좀 더 개량한 PM M1910이 대량 사용되었는데 이후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군에 공급되어 우리와 악연이 있다.


맥심의 모국이기도 했던 영국도 애용하였지만 제1차 대전 직전에 보병대대당 2정만 배치하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경쟁국에 비해 홀대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영국군이 제식화한 모델은 맥심 기관총의 가장 큰 단점인 무게를 반 정도로 대폭 줄인 비커스(Vickers)기관총이었다. 현대식 기관총과 비교한다면 이것 또한 무거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여타 국가의 맥심 기관총과 비교한다면 훨씬 다루기 용이하였다.

독일이 라이선스 생산한 MG08 스팬다우 기관총.

PM M1910 기관총. 소련(러시아)판 맥심 기관총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이 썼다. 사진은 제2차 대전의 모습.

맥심 기관총이 지배한 죽음의 경쟁

1914년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지옥을 현실에 만들어 내었다. 제1차 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희생이 그토록 컸던 점은 무기의 발달에 비해 전쟁을 지휘하는 이들의 생각이 너무 고루하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나폴레옹 시대의 공격 제일 사고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돌격명령을 받고 적진을 향해 뛰쳐나간 병사들이 상대편 참호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속수무책 당하는 것이 전선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오늘날 같으면 기갑장비를 이용하여 참호선을 돌파하는 작전을 펼치겠지만 당시만 해도 포격 후 보병이 돌격하는 방식 외에 마땅히 구사할 전술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포탄의 비를 퍼부어도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였고 이렇게 살아남은 방어자들은 포연을 헤치고 돌격하는 공격자가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름이 조금씩 다를 뿐인 맥심 기관총에 의해서 무명의 병사들은 하염없이 숨져갔다.

맥심 기관총의 영국판 경량형, 비커스 기관총을 쏘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영국군 병사.

참호를 파고 전선이 고착화되자 맥심 기관총의 위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너무 무거워 공격 시에는 재빠르게 옮겨 다니며 지원할 수 없었지만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에 나섰을 때는 다가오는 적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알을 퍼부어대는데 적격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참호전과 더불어 맥심 기관총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학살을 뜻하는 대명사로 바뀌어 갔다. 바로 죽음의 경쟁이었다.

  1. 맥심 기관단총 제원 (초기형)
    중량 27.2kg(냉각 용수 제외) / 전장 108cm / 총열 67.3cm / 탄약 .303 British / 작동방식 리코일(recoil)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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