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87일을 맞이하는 12월 27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김영창 학생의 생일입니다.
김영창 학생입니다.
영창이는 네 살 터울 여동생이 하나 있는 두 남매의 맏이입니다. 다들 그렇듯이 영창이도 여동생하고 가끔 아웅다웅 다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영창이가 져주는 순하고 다정한 오빠였다고 합니다. 영창이는 언제나 가족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부모님을 배려하는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힘드실까봐 불평하거나 속썩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영창이는 집에서 엄마하고 '단짝'이었습니다. 장보러 가거나 영화관 갈 때 엄마랑 영창이랑 늘 손깍지를 끼고 함께 다녔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엄마가 추워하시면 뒤에서 껴안아드리는 상냥하고 애교 많은 아이였습니다.
영창이는 기계에 관심이 많고 손재주가 아주 좋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사주면 설명서 없이도 혼자 척척 조립했습니다. 그리고 영창이는 집에 있는 가전제품이나 게임기 등도 모두 뜯어보고는 처음 상태로 똑같이 다시 조립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진로를 결정할 때 영창이가 써낸 장래희망은 "건축가"였습니다. 그러나 꿈 많은 고등학생이었던 영창이는 발명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창이가 생활했던 2학년 8반 교실 전경입니다.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영창이는 배 타는 걸 조금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학창시절 마지막 추억이니 잘 놀다 오라고 달래주셨고 영창이는 착한 아이라서 금방 마음을 돌렸습니다. 떠나기 전날 영창이는 인터넷으로 제주도에 있는 숙소 사진을 찾아보며 잠도 안 자고 들떠서 신나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마음에는 이런 일들이 다 한으로 남았습니다. 영창이는 참사 이후 보름이 지나도록 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5월 초입에 부모님은 다시 바다로 나가서 영창이가 좋아하던 사과를 팽목항의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두셨습니다. 그날 5월 2일 영창이는 부모님 마음을 이해했다는 듯 227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손톱이 다 망가진 채로 돌아온 영창이를 안고 부모님은 펑펑 우셨다고 합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은 세월호 가족분들께 직접 마음을 전하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1111로 문자 보내 영창이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언제나 착하고 다정했던 영창이, 기계에 재능이 있고 손재주가 뛰어났던 발명가, 건축가 영창이를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