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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름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내린 결론
게시물ID : history_273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023fs
추천 : 0/19
조회수 : 868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12/25 17:10:27




위안부 관련 증언집, 많은 책들 읽고 내린 결론...


1. 일본 군경이 민가에 난입하여 조선인 여자를 납치해가는 식의 강제동원은 없었다.
( 일본육군에선 군을 참칭해 위안부들을 납치하는 인신매매단을 엄벌하는 지령을 내렸다. 
육군 병무국 병무과 기안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 1938년 3월 4일 육지밀 제 745호 )

2. 주로 조선인(or 일본인) 민간업자들이 취업사기, 인신매매 등을 통하여 전쟁터로 데리고 다니며 성노동을 강제캐했다.

3. 전쟁 말기 위안부들은 업자에게 빚을 다 갚으며 귀국할 수 있었다. ( 1944년 미군이 남긴 조선인 위안부 포로 심문 보고서 )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media/File:Japanese_Prisoner_of_War_Interrogation_Report_No._49_p1.png

4. 위안부 중에는 일본군과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5. 위안소 마다 놓인 환경이 다 달랐다. 

6. 일본군은 너무 어린 위안부가 오면 집으로 돌려보냈다.

7.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보다 조선인 업자에 대한 증오를 증언하는 경우가 많았다. ( 위안부증언집. 정대협 저)


강제인가 아닌가.

군의 요청이나 공고를 보고 이에 응한 업자가 취업사기로 데려갔으면 이는 강제라고 봐야된다.

일본군도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고 이용했으므로, 책임을 지는 게 맞다.

다만, 총칼로 미성년 소녀를 일본군경을 이용해 납치하지 않았다.는 건 제대로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세계 각지에 위안부 동상을 만들어 네셔널리즘을 자극하기 보다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 양국 국민이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당시 위안부피해자에게 가해진 가부장제(가난해서 딸을 팔았다거나,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거나, 우리안의 협력자 등), 내부의 협력자 문제 등
모든 걸 다 꺼내놓고 네셔널리즘 없이 가르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결국에 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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