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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떨어뜨린 그들의 건투를 빈다
게시물ID : freeboard_14458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직장인Y
추천 : 2
조회수 : 22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2/19 21:54:10
같은팀 여직원이 결혼하고 두 달 뒤 퇴사를 발표했다.

흔한 직장 상사가 없는 술자리에서
"내가 여기 그만둔다 진짜"
라고 외쳤던 그녀는 정말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고

우리팀과 인사팀은 그녀의 빈자리를 채워줄 신입사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파견직을 뽑는 절차대로 인사팀은 파견업체를 통해서 20통의 이력서를 받았고
이는 곧 뽑힐 누군가가 일하게 될 차선임자의 내 손에 쥐어졌다. 황송하게도.

나는 이 중에서 열 명을 골라야 한다.

꽃다운 이십 대 초중반의 그녀들 중 나는 열 명을 면접도 보지 못하게끔 골라내야 한다.




팀장님 손을 거친 스무 장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책상 가운데에 있다.

아직 사회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패기가 넘쳐서 뭐든지 시키면 잘할 것 같은 지원자도 있었고
이미 여러 회사를 걸쳐서 녹록지 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지원자도 있었다.

스무 명의 이력서를 꼼꼼히 살펴본다.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지원을 하게 됐는지.
무슨 자격증이 있고 무슨 회사를 다녔고 무슨 업무를 했는지.

예전에 내가 있던 장소들이 떠오른다.
회사가 망해서 팀장님이 미안하지만 월급을 주기 힘들겠다고 말하던 복도,
퇴사를 했지만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려서 출근한다고 나가고 울면서 이력서를 쓰던 카페,
면접을 망치고 집에 가면서 소리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종점까지 타고 가던 버스.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며 한 달에 백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으로 살던 고시원.

지금에야 난 그때를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난 비참하고 비참했다.
내가 떨어뜨린 그 사람들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 싫다 부담스럽다 미안하다.

오후 네시까지 열 명의 지원자를 골라야 하는데
아침 열시부터 하염없이 지원자들이 소신 있게, 떨리는 마음으로, 절망적인 생각으로, 기대에 부풀어서 쓴 이력서를 보고 또 본다.
몇 번의 인사팀의 재촉과 팀장님의 빨리 넘기라는 지시로 오후 다섯시 반이 넘어서야 열두 명을 추려서 인사팀에 제출한다.
집이 너무 멀어서 팀장님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지원자 둘을 더 넣었다.
경력직만 뽑으라지만 학교 때 공부도 열심히 했고 긍정적이고 뭐든 배워서 열심히 하겠다는 패기 넘치던 지원자도 넣었다.
어릴수록 좋다고 무조건 어린애를 뽑으라지만 능력도 있고 경험도 있는 지원자도 넣었다.

그 모든 지원자들에게 건투를 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떨어뜨린 몇몇 지원자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어딘가 꼭 필요한 인재로
다른,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에서 일하길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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