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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저주를 부르는 눈 - 귀안(鬼眼)
게시물ID : panic_918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24
조회수 : 2617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12/19 15: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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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죽였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것도 당연했습니다.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파출소 내의 경찰들 모두가요. 하지만 이내 곧 시끌벅적해졌습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고, 그가 이 곳에 온 이유도 단지 술 취한 행인과의 폭행 문제 때문이었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새벽녘의 파출소는 별별 이상한 사람들이 모이는 집합소에 다름 없습니다. 외계인을 봤다는 사람부터, 자신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안다는 둥, 혹은 미혼인 여자 대통령에게 딸이 있다든가 하는 희안한 이야기들이 예사로 들려오곤 합니다.
하여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
 
지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죠?”
... 어르신... 하하하 조금 놀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술도 안 취하신 거 같은데 그런 섬뜩한 얘긴 하지 마시구요... 어르신이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저 사람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거잖아요. 많이 다치신 거 같은데. 고발 하실지 말 지만 말해주세요. ?”
그 놈은 죽어도 싼 놈이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과대망상증 환자는 파출소의 단골 소님입니다. 게다가 사실 그 즈음의 저희는 관내에서 벌어진 미스테리한 자살 사건 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거든요.
이장건, 188센티미터에 200kg은 족히 나갈 거구의 소유자이자, 악덕 사채업자로 소문난 관내의 골치덩이였죠. 그런 그가 전 날 새벽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아니었습니다. 단순 실족사였죠. 평소 가난한 시장 상인들의 등을 쳐먹던 못 된 놈이라 잘 죽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그의 죽음과정에 남은 석연치 않은 의문은 끝내 저희로 하여금 그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난리를 피우더니 뛰쳐나가더라구요. 오지마라고 했던가? 살려줘라고 했던가!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었어요.”
겁에 질린 표정이었어요. 요 근래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처음 봤거든요. 오줌을 지렸는지 바지는 축축해 뵈고 지린내가 진동했습니다.”
내 그 놈 언젠가 한 번은 벌 받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높은데서 뛰어내릴 줄은 몰랐지! 에라 쌤통이다. 그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모를거요. 돈 몇 푼 빌려주고 원금의 몇 배를 받아내는 데다 그래 놓고도 제 어미뻘 되는 노인들을 두드려패기 일쑤였다니까!”
 
주변인들의 진술은 하나같이 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고 했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거리는 물론이고 차도에도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통에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얼마 안가 시장 초입에 있는 7미터 높이의 난간에서 투신...
뭐 여기까진 사실 특이점이 없었습니다.
명백한 자살이었고 CCTV속 영상이 그 사실을 뒷받침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7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사체의 상태였습니다.
 
처음엔 워낙 거구다 보니 떨어지는 충격에 눈알이 뽑혀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죠. 손을 보고 깨달았죠. 뛰어내리기 전에 이미 스스로 제 눈을 뽑은 겁니다. 믿겨지세요? 마취도 없이 자기 눈을 스스로 뽑았다구요. 눈 부위에 난 상처들 보이시죠? 손톱자국이에요. 쥐어뜯고 생 살에 손가락을 박아넣어 뽑은 겁니다. 119구급대만 10년째지만 이런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 ... 그럼?”
무슨 생각하시는 지 알아요. 하지만 아닙니다. 그래서 더 놀랬죠.”
? 그게 무슨...”
마약이요. 깨끗해요. 사망 후 실시한 일체의 약물검사에서 모두 음성반응 나왔습니다. 있는거라곤 그저 내장지방과 고도비만... 당뇨관련 약 그 뿐입니다.”
약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게 저희도 궁금할 따름입니다. 대체 무얼 보았기에... 자기 눈을 뽑고 싶었을까요? 고통? 아니죠. 눈이 뽑혀나가는 고통보다 더 한 고통이란게 있을까요?”
 
사실 저는 영화광입니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아이덴티티같은 스릴러 영화를 특히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 노인... 처음엔 취객에게 봉변당해 얻어맞은 부위나 어루만지고 있더니만 그 새 우리가 하던 이장건 사망사건을 엿들었구나, 참 나... 세상에 참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네.’
 
그냥 장단이나 맞춰주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쓸 데 없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 같습니다.
 
외롭고 대화가 필요하다.’
 
노인은 맹인인데다 돌봐주는 사람도 없어 보였습니다. 며칠은 거리를 배회한 듯 때가 탄 겉옷과 다 헤진 고리땡바지, 풀어헤쳐진 머리, 그의 꾀재재한 행색이 그의 처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장건 사망 사건 당시의 CCTV라면 이미 몇 번이나 돌려본 뒤였습니다. 민 사람도 잡아 끈 사람도 없는 100% 자살임에 분명했지만 대체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려나 궁금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죠.
하지만 실제로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야. 우리 집에 남자라곤 아버지와 삼촌 뿐이었지. 지금의 나처럼... 맹인인 삼촌.
삼촌은 직업도 없이 매일 같이 술에 쩔어 살았어, 술만 마시면 할아버지를 욕하고 또 아버지를 향해 비겁하다 욕지거리를 했다네.
 
내 덕에 니가 발 뻗고 자는거다. 고마운 줄 알아라! 이 개 잡놈아!’
 
어린 내가 보기에도 삼촌은 이해가 되질 않았어. 집은 어려운 형편이었고, 삼촌은 집 안의 유일한 골칫덩이였지. 그런 그가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식구들을 괴롭히니 왜 안그렇겠어.
하지만 이상했던건, 아버지도 할머니도 삼촌에겐 이상하리만치 기가 죽어 있었다는 거야. 흡사 꼭 무슨 죄인 같았지. 유일하게 불만을 가졌던 건 엄마와 나 뿐이었달까?
그래도 잘 참았지.
삼촌이 난동을 부리고 난 뒤면 늘 할머니와 아버지가 엄마에게 머리까지 조아리며 사과를 했거든.
난 그게 싫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어. 삼촌은 또 집기를 부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는 말리는 아버지를 때리기까지 했지.
그래도 아버지는 참았어. 친동생인 삼촌이 자신에게 침을 뱉는데도 말이야.
하지만 끝내 문제는 생기고야 말았어.
그 날 따라 심하게 흥분한 삼촌은 어디서 구했는지 기름을 한 통 구해와 집에 뿌렸어.
그리곤 말했지
 
이 저주! 내가 끝내버릴꺼야! 끝내 버린다고!”
 
아버지가 놀라 달려들었지만, 삼촌의 광기는 극에 달해 있었어.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집안은 아수라장이 됐지. 그건 아직도 잊을 수 없어. 어린 내 눈에도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집과 검게 차오른 연기는 무시무시했거든. 정말이지 끔찍한 순간이었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든 불을 끄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지. 불이 붙은 휘발유는 곧장 사방으로 퍼졌고, 결국 불을 끄는 것을 포기한 아버지는 나를 잡아 끌었어.
나를 살리겠다는 생각이었지.
콜록대며 밖으로 내던져진 나를 두고 아버지는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어. 나를 살렸으니 그 다음은 엄마 아니면 할머니였겠지.
아버지는 역시나 엄마를 구해냈고 울며 매달리는 내게 말씀하셨어.
 
삼촌과 할머니를 구해올테니,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어
 
하지만 불길은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어. 아버지의 얼굴도 굳어 있었지. 그러자 이번엔 엄마가 울며 매달렸지, ‘가지 말라, ‘가면 죽는다.’...
하지만 소용 없었어.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끝내 그 끔찍한 불길속으로 뛰어 들었어.
아들인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삼촌만큼은 꼭 살려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걸 끝으로 다시는 나오지 못하셨지.
참 아이러니한게 뭔지 아나?
절망에 사로잡힌 그 불길 속에서 그 순간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나오고 있는거야. 그 참혹한 불길을 뚫고 말이네. 얼굴은 온통 새까맣게 그을리고 옷은 타버렸지만 우린 알 수 있었지.
그가... 아버지가 아닌 삼촌이라는 사실을...
그때 나는 보았어.
웃고 있는 삼촌의 얼굴을...
하지만 기쁜 표정은 아니었어. 뭐랄까? 일종의 체념? 삼촌의 허탈한 웃음이 엄마의 절규와 함께 울려 퍼졌지.
 
그 후 일주일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어.
잿더미가 된 집과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버지와 할머니의 시신, 두 분은 꼭 끌어 안고 있었지. 곧 장례가 시작됐고, 가진 게 없던 우린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두 분을 마을 뒷 산 후미진 곳에 묻을 수 있었지.
아버지와 할머니를 묻던 날...
그때도 삼촌은 술을 마시고 있었어. 의사는 화상이 심해 계속 술을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소용없었어.
웃고 울고... 삼촌은 완전히 미쳐있었지.
종일 하는 말이라곤 그저...
 
느그 아버지가 나를 살렸으니, 내가 이 더러운 목숨 끊지 못하고 산다.”
 
그 말 뿐이었어. 아마도 아버지는 삼촌을 문 앞까지 끄집어 낸 후, 할머니를 구하려 다시 들어갔던 모양이야.
결국 보다 못한 엄마는 결단을 내리고야 말았다네.
 
삼촌을 죽이기로...
 
야심한 밤, 이장님의 선처로 마을 회관에 마련된 조그만 안식처에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울려퍼졌어.
엄마는 내가 자고 있는 줄 알았겠지만...
난 깨어 있었지.
그리고 보았지.
삼촌의 목을 조르는 엄마의 모습을...
엄마는 분노에 차 있었어.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집을 불태웠으며, 남편까지 죽게 만든 원흉을 없애려는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네.
평소라면 맹인이긴 해도 사내인 삼촌을 당해낼 리 없겠지만, 삼촌은 취한데다 심한 화상의 후유증으로 몸이 말이 아니었어. 겨우 목숨만 붙어 있다고 보는게 옳았지.
거칠게 반항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엄마는 귀신처럼 달라붙어 울며 삼촌의 목을 졸랐어.
 
죽어! 죽어! 죽어! 너 까짓게 왜 살아! 내 남편 잡아먹은 니 까짓게 무슨 면목으로 살아! 죽어!”
 
삼촌은 안돼! 나는 살아야 돼! 살지 않으면 안돼!” “이러면 살아남은 보람이 없잖아같은 궤변을 늘어 놓았지만, 엄마는 완강했지.
 
죽어!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해!”
 
그제야 삼촌의 손과 발이 차가운 마루바닥에 닿았어.
난 알았지, 삼촌이 결국 체념했다는 걸...
눈이 마주쳤거든, 숨을 거두기 직전... 그 짧은 순간에 삼촌의 시선이 나를 향했어. 엄마의 손이 목을 졸라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 눈빛은 마치...
 
미안하다...’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어.
그때는 몰랐지. 단지 아버지의 죽음을 사과하는 것 뿐이라 생각했으니까.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난 당신을 용서하지 못 한다.’ 눈빛으로 그렇게 항변했어.
바보같았지...
어렸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도 할머니도 한 번도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무얼 말이죠?”
'눈...'
 
 
문제는 그 때부터였어,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거든?
 
엄마! ... 저기 하... 하얀 것이... 히익! ... 누가 나를 보고 있어! 나를! 나를!”
 
헛것이 보였어. 죽은 사람들, 그들이 나를 노려보고 내게 다가와 어른거렸어. 처참한 몰골이었지. 하나같이 썩고 피를 뒤집어 쓴 흉측한 자들 말일세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그런 모습들 말이야.
엄마는 말했어.
 
삼촌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이 삼촌을 죽였기 때문에 내게 변고가 생겼다 믿었어.
나를 다그쳐 끝내 답을 듣고야 말았거든.
그 날 삼촌이 죽던 날, 내가 잠들지 않았고, 또 보고야 말았던 그 진실 말이야.
이후 엄마는 내게 삼촌의 귀신이 씌였다며 병을 고치려 애썼어.
없는 살림에 굿도 하고 용하다는 무당도 찾아가 보았지.
하지만 그도 소용 없었다네.
 
오지 마시오. 아가 우리 집 문턱을 밟는 순간부터 신령님이 노하셔서 고함을 지르신당께요.”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 미안하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돈이라면 돌려 드리겄소. 나도 밥 벌이는 해야 할 것 아니오. 어린 아한테는 미안허지만 이것은 내 도력으론 어찌 할 게 아니오.”
나무아미타불... 불자의 몸으로 도리는 아니오나, 아이의 몸에 씌인 귀신의 힘이 너무 강해 어찌할 도리가 없소. 나무아미타불... 어찌 이 어린 것에게 이런 시련을... 허허 통재라...”
 
덕이 높다는 절과 고승을 찾아가 봤지만 모두다 고개를 가로 저을 뿐, 마땅한 대답을 주진 못했어. 모두들 내 안에 깃든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했지. 자신은 감당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다들 곧 내가 죽을거라고 했어.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지. 전국 팔도 방방곡곡을 수소문해 끝내 찾아내고야 만거야.
아직도 기억해...
봉신당이란 이름의 허름한 암자였지.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 하면 무릇 탈이 나게 마련... 초라한 인간의 그릇에 한 종지 샘이 아닌 폭포수와 망망대해를 채우려하니 어찌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줄기차게 이어진 악연이로구나 악연이야.”
무녀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조상의 업인게야. 욕심이 탈을 부른게지. 신묘한 법력으로 중생을 구제해야 할 자가 그 힘으로 말미암아 금전을 취하고 생명을 취하니 그 업이 자자손손 그칠 날이 없구나. 아이가 불쌍타! 제 죄도 아닌 조상의 업으로 이 어린 것이 고통을 받아야 하다니... 필시 아이 아버지도 그랬을 터?”
... 남편은... 아닙니다. 아이 삼촌... 그러니까 남편의 동생이...”
허허... 형을 대신해 업을 진 동생이라. 형재의 우애가 깊고 또 깊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무거운 굴레를 진단 말인가!”
 
그때였어. 갑자기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지.
 
미.친.놈입니다. 벼락을 맞아 죽을 인간이었어요. 그 짐승같은 인간이 우리 아이까지 이래 만들어 놓은겁니다.”
어허! 네 이 년!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망발이냐! 네 집안... 장자 계승의 업을 대신 지어준 은인에게 어찌 그런 몹쓸 말을 한단 말이냐!”
... 장자계승이요?”
 
무녀의 말은 그랬다네. 먼 조상중 한 분이 지니셨던 내세의 법력이 하늘에 닿아 산 자와 죽은 자를 보고, 또 그 신통력으로 억울한 이들을 구제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던거지.
덕을 쌓기는커녕, 외려 그 힘으로 선량한 자들을 혼에 씌워 죽이고, 금전을 취했으며, 그 일을 업으로 삼아 나라의 권력을 탐하는 자들과 작당까지 했던거라네.
하지만 무릇 제 손으로 뿌린 씨는 제 손으로 걷게 되는 법, 결국 그 끝은 참담하여 죽음으로 죄를 갚은 것은 물론, 그 업이 대대손손 내려와 내세의 보지 않아야 할 것과 보아선 안 될 것들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지.
그리고 삼촌은 그런 불행한 운명을 이어받은 아버지를 대신해 업을 짊어 진 것이고 말이야.
 
 
보지 않아야 할 것과... 보아선 안 될 것... 들이요?”
산 자에겐 지옥같은 일이지...”
 
 
무녀는 말했어.
 
방법은 하나 뿐일세. 두고두고 그 업을 갚으며 덕을 베풀게. 사악한 악령의 힘이 자자손손 내려온 것 역시 그 순리를 지키지 않고 인위적인 힘으로 업을 풀려 했기 때문일세.”
안 됩니다. 당장 아이가 죽어 나갈 판입니다. 언제 업을 갚고, 언제 덕을 쌓는단 말입니까? 당장 아이를 살릴 방도를 알려 주십시오.”
눈을 뽑게
? 멀쩡한 눈을 말입니까?”
약을 줄 터이니 달여마시면 삼일을 앓을 것이고, 그 삼일 이후 내 지금 나눠주는 부적을 태워 그 재를 달포간 달여 마시면 이후 고통없이 눈이 흐릿해지며 점차로 평안해 질 것이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멀쩡한 애를 소경으로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어허! 빛이 있다한들, 그 빛이 심성을 현혹하고 아우성치게 하여 목숨까지 쥐고 흔드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있어도 있느니만 못하고 없으면 차라리 흔들리진 않을 터이니. 한 낱 눈알 두 개가 사람 목숨보다 중하단 말인가!”
... 무녀님...”
눈이 있어 보고, 그로 인해 괴로우니, 눈이 없으면 오직 느껴지기만 할 것이라. 결국 그 업은 지워내지 못 해 만져지고 들릴 것이나. 그냥 놔두면 그 빛에 현혹돼 고통만 거듭되다 끝내 스스로 파내어버릴 것을... 쯧쯧쯧 미련을 버리게! 지금 가진 것에 연연하다 모두 잃고 싶은겐가?”
흐흐흑....흑흑...”
 
 
노인은 그 대목에서 입이 타는 듯 말을 멈추었고, 문득 저는 노인의 눈을 보았습니다. 회색의 희뿌연 눈동자 속, 알 수 없는 것들이 이글거립니다. 섬뜩한 생각에 급히 눈을 돌렸지만, 오금이 저린다고나 할까요? 기분이 묘했습니다.
설마 노인의 허무맹랑한 말들이 사실인걸까요?
아니면 그저 정신나간 맹인이 만들어낸 망상이요 거짓 넋두리에 불과 할까요?
노인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그 후 나는 소경이 되었네... 무녀의 말은 사실이었고, 눈이 멀자 이후론 더 이상 그 괴상말측한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네. 하지만 아직도 느껴져. 내 머리칼을 흔들고, 등을 간질이지. 이따금 괴성을 질러대기도 하고 말이야. 마치 지금 자네 등 뒤에서 씩씩대고 있는 이장건, 그 자처럼 말이네
히이익!”
 
저는 놀라 자리에서 넘어졌습니다. 노인의 손이 잠깐 제 팔에 와 닿았을 뿐인데 고통스러운 누군가의 비명이 들리는 듯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환청이었습니다.
저 밖에 들리지 않는...
그때였습니다.
 
이런 개..!”
 
함께 근무하던 경장님이 노인을 폭행한 후 골아떨어진 취객을 향해 급히 달려오며 소리쳤습니다.
 
? 왜 그러세요 홍경장님
계순경! 이거 이거! 이 새끼 수배 떨어진 새끼야!”
? 수배요?”
 
홍 경장님은 제가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골아떨어진 취객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주민번호를 조회해 본 모양이었습니다.
 
죄목도 이거 어디... 사람 새끼가 할 짓이야?”
? 뭔데요?”
아동 성폭행! 어휴! ! 계순경 이 새끼 바지 좀 까봐!”
... 제가요? 바지를요?”
어휴! 위에 말고 밑에... 바짓단 말야.”
 
아니나다를까? 잠든 취객의 발목을 살펴보니 상처와 더불어 묘한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단단히 조여져 있던 흔적이었습니다.
 
이거 봐! 발찌 끊었네. 수배중인데, 그 와중에 술을 마셔? 에라이...”
 
당황하여 전산으로 재차 확인해 보니 정말로 타 지역에서 9세 여아를 추행한 후 도주중인 성범죄자였습니다. 이주 전 전자발찌를 끊은 후부터는 계속 수배중이었구요.
그때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제 그만 가봐도 되겠소?”
? 이 작자 고소 안하시구요? 가지마세요. 이런 놈은 벌을 좀 받아야 됩니다.”
 
저는 당황하여 소리쳤습니다. 아동 성범죄도 큰 죄지만, 이런 인간이 수배중에 술에 취해 폭행까지 했으니 어쩌면 더 큰 벌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되물었습니다.
 
어찌 벌을 줄 생각이오?”
감방에 쳐 넣어야죠!”
그 후엔...”
뭐 그거야... 전자발찌... 집중관리...”
듣자니 지금도 도망친거라던데, 또 도망치면?”
? ... 그거야...”
 
제가 더듬거리자 노인은 갑자기 씨익 웃어보이더니, 취해 누워있는 성범죄자의 눈가를 어루만집니다. 웃고 있지만 재미있다기 보다는 회한과 슬픔이 담긴 미소였습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세상의 벌로 다스릴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소. 불쌍한 상인들의 고혈을 뽑아 먹던 이장관 그 자처럼 말이오.”
... 죽은 사채업자 이장관이요?”
몇 년 전이오. 내 그 무녀를 다시 찾았더니 그녀는 죽고 그 딸이 자릴 이었더군요. 헌데 그 무녀님이 그럽디다. 업을 쌓으면 업으로 받고, 덕을 쌓으면 덕으로 받는다고요. 하지만 난...”
“......”
업으로 덕을 쌓을 팔자라 하더이다.
? 그게 무슨...”
저 자가 깨어나면 알꺼요. 내 가진 눈을 조금 나누어주었으니...”
 
노인은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라졌습니다. 취객에게 두드려 맞아 퉁퉁 부은 얼굴로요. 고소, 고발은커녕 어떠한 행정절차도 없이 말입니다.
아동 성범죄자를 좀 더 단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웠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지금 지은 죄만으로도 꽤 오랫동안 사회와 격리 될 테니 말입니다. 그가 나올 때 쯤이면 전자발찌나 사회의 격리조치도 좀 더 발전될테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실정법상 잘해야 5, 술에 취해 이뤄진 범죄면 고작 2~3년으로 감형되는 솜방망이 처벌조차 그에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끄아아악! 뭐야! 이게 뭐야! 안돼! 오지마! 오지마! 으아악! 살려줘! 하아하아 크악! 으아아아아아악!”
 
감옥에 가지 않은 대신, 그는 시설 좋고 괘나 안락하다고 정평이 난 정신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하루 세끼, 균형잡힌 식사가 나오고, 재활과 갱생을 위한 프로그램도 잘 갖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비싼 약을 먹고, 증상에 따라 여가 시간엔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다더군요.
그 뿐인가요?
때때로 치료 경과가 좋으면 외출도 허용이 된답니다.
 
그 새끼 팔자 늘어졌네!”
 
함께 근무하는 경장님은 그가 를 하고 있다며 열을 내셨습니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저런 몹쓸 인간을 치료해줘야 하냐며 한 바탕 울분을 토해내셨죠.
하지만 저는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 날의 노인이 자꾸만 떠올라 찾아간 법정에서 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그곳에 없었지만, 울며 오열하는 성범죄자의 얼굴에서 노인이 보였습니다.
고통에 사무쳐 절규하는 그의 표정과 괴성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파내버렸음에도 붕대로 칭칭 감긴 미간을 끝임없이 긁어대는 그의 참담한 모습 말입니다.
그에 비하면 사채업자 이장건의 죽음은 행복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의 심각한 자해사건으로 말미암아 꽁꽁 묶여 죽을 기회조차 박탈당했으니까요.
저는 아직도 그 날...
노인의 손이 스치던 순간 들었던 끔찍한 환청을 기억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자신의 업을 지우려, 아니 업으로 덕을 쌓기 위해 당신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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