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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콘솔 이야기
게시물ID : gametalk_3308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치소환
추천 : 10
조회수 : 1007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12/17 12:46:18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 사업 때문에 필리핀으로 이민을 가야했다. 말도 안통하는 나라에서 어린나이에 사는게 힘들기만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집이 근처인 친구네에 가서 놀게 되었다. 

당시 필리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슈퍼패미컴과 세가 메가드라이브 파로 나뉘어 어느 게임이 더 재미있는지 매일 열띈 토론의 연속이었다. 나는 집에서 386 컴퓨터로 테트리스나 하고 있었다.

앞집사는 친구는 매일같이 나를 불러 메가드라이브 패드를 쥐어줬다. 친구 부모님이 안계실 때 그시절의 엄빠 앞에서 하면 안되는 게임 1순위인 모탈컴뱃을 하며 내 척추가 뽑혀나가는 것을 봐야 했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나도 내 게임기로 저놈을 반으로 갈라보고 싶다.

순식간에 메가드라이브 시대가 끝나가고 플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당시에는 피씨방은 없었지만, 게임센터에 부속으로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그리고 플스가 놓여있는 지금의 플스방 같은것이 있었는데, 플스는 항상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결국 뒤에서 손가락 빨면서 구경만 했다.

아버지를 조르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게임하는 것도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던 아버지였지만, 동생과 함께 맨날 친구집에서 놀러가서 게임을 얻어서 하고있는 것도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1년정도 징징대니 결국 승락하셨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학년 1등 해오라는 것.

미친듯이 공부해서 2등을 받아왔다. 정말 펑펑 울었다. 1등한 여자아이가 미웠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나 가지고 싶냐? 하며 물으셨고 나와 동생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목이 떨어질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아버지가 한국에 나갔다가 오실 계획이라 그때 하나 사다주신다고 하셨다. 기왕이면 플스다 하는 생각에 몇주에 걸쳐 플스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며 안에다가 씨디를 넣고, 패드는 꼭 2개가 있어야 하며 색은 회색. 

아버지가 돌아오기 까지 2주간 나와 내 동생은 오면 무슨 게임을 할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매일매일 자기전에 기도했다. 하나님 아부지가 꼭 플스 사오게 해주세요.




2주가 지난 뒤 마중 나간 공항에서 아버지 손에 박스가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환호했다. 환하게 웃으며 아부지한테 뛰어가서 박스를 채왔다. 바닥에다 엎드려 절했다. 하지만 그날 주말까지 기다려야했다. 주중에 게임을 하면 뺏어간다고 하셨으니. 

토요일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옥이었다. 혹시나 고장은 나지 않을까. 켜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게임은 뭐하지.

토요일이 되자 우리는 신나서 박스를 풀기 시작했다. 상자를 열자 아름다운 동그란 뚜껑과 동글동글한 버튼과 회색의 자태, 듀얼쇼크패드가 보였다. 

아직 게임을 사지 않아서 게임을 할 수 는 없었지만, 티비에 연결해 보았다. 켜진다.

open을 눌러보았다. 뚜껑이 열린다. 











씨디렌즈는 없고 팩을 꼽는 소켓이 보인다. 플스가 좋긴 좋구나. 다른 게임기 게임들도 할 수 있는가 보다........ 그럴리가 없는데


짱개 놈들이 만들 플스처럼 생긴 패미컴이다. 슈퍼패미컴도 아니고 그냥 패미컴.

hqdefault.jpg








아버지께서는 게임 사러 갈 필요 없이 안에 5백개가 넘는 게임이 내장되어있는 걸로 사왔다고 흐믓해 하신다. 동생은 우왕 게임기다 하면서 여전히 기뻐 한다. 

평생 게임이라는 걸 해본적 없는데 용던에서 아들들이 몇주간 졸랐던 게임기를 물어물어 찾아내서 샀다는 생각에 기쁘게 집에오셨을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플스로 슈퍼마리오를 하고있는 동생을 보며 나는 조용히 2P를 잡았다.
출처 본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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