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모 초등학교 일학년. 호윤이의 일기.


1. 모년 모월 모일, 화요일, 맑음

엄마가 운다. 맨날 운다.
아빠가 보고싶어서 운다.
방에 숨어있다가 일기장을 찾았다.
앞에 써진 일기는 글씨가 다 틀려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럼 엄마도 좋아할 거다.


2. 모년 모월 모일, 금요일, 흐림

동네 친구 기석이를 만났다.
안녕, 인사를 하니까 나를 보고 도망갔다.
너무 슬프고 기석이를 때려주고 싶다.
얼굴이 화끈화끈거린다.
화끈화끈한 거는 사고났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화상이라고 그랬다.
무서워서 거울을 안 본다.
이제 다 나았다고 했는데 아직도 얼굴이 화끈화끈한 것 같다.
가슴도 화끈화끈.


3. 모년 모월 모일, 월요일, 맑음

학교 앞에서 왔다갔다했다.
수위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가면 안 된다고 한다.
친구들이 무서워한다고 했다.
엄마도 나를 미워할까?
기석이는 날 보더니 '바보! 괴물!' 소리쳤다.
아니라고 나도 소리를 쳤더니 우아아악 소리를 치면서 도망갔다.
나쁜 애다.


4. 모년 모월 모일, 수요일, 비

아빠가 보고 싶다.
엄마도 아빠가 보고싶다고 울면서 나한테 말한다.
사고가 왜 났을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지 말걸.
엄마가 안 된다고 했는데 아빠가 사준다고 그랬다.
좋다고 방방 뛰었다.
비가 왔다.
아빠랑 둘이 차를 탔는데 쾅하는 소리가 났다.
얼굴이 뜨거웠다.
엄마가 누운 나를 보고 막 울었다.
아빠가 죽었다고 했다.
아빠가 죽었다.


5. 모년 모월 모일, 수요일, 흐림

엄마는 나를 때린다.
나를 보고 울다가 또 나를 때린다.
등이고 팔이고 마구 찰싹찰싹 때린다.
아프다고 우는데 한번씩 마구 때린다.
그럴때는 내 방에 들어가 책상 밑에 숨는다.
책상 밑에 숨으면 등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그래도 내 얼굴을 보면 엄마가 우니까 나는 책상 밑에 숨는다.


6. 모년 모월 모일, 화요일, 눈

병원에 갔다.
병원은 싫다.
안 간다고 했더니 엄마가 또 찰싹찰싹 때렸다.
의사 아저씨가 나한테 이것저것 물었다.
무서워서 아무 말도 안했다.
병원은 무섭다.


7. 모년 모월 모일, 목요일, 맑음

엄마가 술을 마신다.
엄마가 술을 안 마셨으면 좋겠다.
식탁 옆으로 다가가서 엄마, 불렀더니 엄마가 나를 향해 숟가락을 던졌다.
피하다가 넘어졌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엄마가 또 울었다.
엄마, 미안해.


8. 모년 모월 모일, 일요일, 흐림

엄마가 술을 마셔서 놀이터로 도망갔다.
애들이 놀고있었다.
내가 걸어가니까 애들이 우왁하고 도망갔다.
애들아, 애들아, 부르니까 더 도망갔다.
혼자 서있는데 기석이가 주춤주춤 다가왔다.
울지말라고 흙 묻은 손으로 뺨을 닦아줬다.
착한 애다.


9. 모년 모월 모일, 금요일, 눈

엄마가 못 살겠다고 울었다.
서있다가 엄마 손을 조심조심 잡았다.
엄마가 막 미안하다고 그랬다.
엄마가 울다 잠들어서 오늘은 학교에 갔다.
수업이 끝나있어서 교실은 나만 있었다.
내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너무 오래 학교에 안갔더니 기억이 안 났다.
얼굴이 화끈화끈거려 엉엉 울었다.


10. 모년 모월 모일, 수요일, 맑음

엄마가 하얀 종이를 줬다.
이름을 쓰라고 그래서 또박또박 이름을 썼다.
엄마가 아니라고 아빠 이름을 쓰라고 했다.
쓰니까 엄마가 또 울었다.
엄마는 왜 맨날맨날 울까.
웃으면 많이 예쁜데.
하얀 종이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열심히 공부해서 글자는 다 안다. 이혼서류.
호윤아빠.... 당신 탓이 아니야. 당신 탓이 아니야. 호윤이를....
엄마가 울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이상하다.
맨날 내가 죽었다고 그런다.
아닌데.
아빠가 죽었는데.
호윤이가 아니라.
우리 호윤이.
울고있는 엄마를 보고 나는 '엄마' 다시 엄마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