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69일을 맞이하는 12월 9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이민우 학생과 2학년 9반 박예지 학생의 생일입니다. 그리고 2학년 7반 손찬우 학생은 음력 11월 10일이 생일이라서 2016년 올해는 어제 12월 8일이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신경쓰지 못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음력 11월 10일, 양력으로 어제 12월 8일이었던 손찬우 학생입니다.
찬우는 형하고 열 세살이나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입니다. 부모님께는 갑자기 찾아온 뜻밖의 선물이었고, 형도 꼬맹이 동생이 생겨서 너무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형은 찬우를 굉장히 사랑해서 찬우가 하고 싶다는 것, 갖고 싶다는 건 뭐든지 해주었습니다.
찬우는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학원을 다니며 한식과 일식을 배운 찬우는 요리를 만들면 엄마 드시라고 꼭 갖다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찬우 요리가 간도 잘 맞고 맛있었다고 하십니다.
찬우는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찬우는 친구를 오래, 깊이 사귀었고 성격이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2학년 7반 기억교실에 있었던 찬우 책상 위에는 찬우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이 남긴 편지와 쪽지들이 가득합니다.
찬우 책상입니다. 친구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잇과 과자들로 책상 위가 빽빽합니다.
어머님 소원은 찬우가 꿈에 나와서 같이 얘기도 하고 쓰다듬어 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찬우 없이 벌써 세 번째 맞이하신 찬우 생일에 어머니 꿈에 찬우가 나왔기를 바래 봅니다.
그리고 오늘 12월 9일 생일을 맞이한 같은 7반 이민우 학생입니다.
민우는 누나가 하나 있는 두 남매의 막내입니다. 민우는 가족의 중심이었고 엄마, 아빠, 누나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였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시고 누나도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라서 가족 모두가 마음을 터놓고 가족들 속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민우였습니다.
누나는 용돈이 필요하면 아빠한테 직접 얘기하지 않고 민우한테 부탁했는데, 그러면 민우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아빠, 나 용돈 좀 주면 안 돼?" 하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고 합니다. 민우 아버님은 지금 민우의 그 목소리가 가장 사무치게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민우는 집중력이 뛰어나고 추진력도 좋아서 뭔가 하나 열중하면 완전히 파고드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곤충에 빠져서 곤충도감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는데,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애벌레를 척 보면 무슨 벌레, 무슨 종, 하고 다 맞추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컴퓨터에 열중해서, 친구들한테 가르쳐줄 정도로 실력이 좋았습니다.
민우는 엉뚱한 유머감각도 있는 아이였습니다. 민우 아버님은 민우에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만 강조하셨을 뿐 공부나 성적은 별로 잔소리를 안 하셨습니다. 어느 날은 민우가 시험을 보더니 자기 뒤로 두 명이나 생겼다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서 "그래 다음 번에는 50점은 한번 넘어 보자" 하고 격려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민우는 아버지가 야단을 안 치고 같이 웃어주셨기 때문인지 진짜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시험에서는 성적이 확 올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야 이러다가 성적 도로 떨어지면 큰일이다, 너무 올리지 마라" 하고 또 칭찬 아닌 칭찬을 하셨습니다. 아버지하고 민우는 그런 만담 같은 대화도 많이 하는 사이였습니다.
민우 아버지는 광화문에서 일 년 반이 넘도록 더우나 추우나 농성장을 지키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민우 얘기를 거의 안 하셨는데, 생일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민우 얘기를 여쭤보았을 때 말씀하시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민우 아버지 소원은 민우를 딱 한 번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여 보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민우와 찬우가 함께 생활했던 2학년 7반 기억교실, 담임이신 이지혜 선생님 자리에서 본 풍경입니다. 민우 자리는 교탁 옆 맨 앞 자리였습니다.
오늘 함께 생일을 맞이한 박예지 학생입니다.
예지는 여섯 살 터울 남동생이 있는 두 남매의 맏이입니다. 집에서 예지는 동생을 알뜰살뜰하게 잘 보살펴주는 믿음직하고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게 미안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말했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자기 식사는 물론 동생 밥까지 예지가 챙겨 먹였습니다. 그리고 엄마 안심하시라고 밥 차려놓은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보내는 든든한 맏이였다고 합니다.
예지는 알뜰하고 생활력 강한 살림꾼이기도 했습니다. 용돈을 모아서 아버지께 중고차를 사 드렸고, 할머니께는 생신에 영양크림을 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지를 잃은 뒤에 할머님은 도저히 그 크림을 바를 수 없어 그저 바라보면서 우셨다고 합니다.
예지 부모님은 세월호 참사 소식을 처음 들으셨을 때 누구나 다 그랬듯이 구조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예지가 바닷물에 젖어 추울까봐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팽목항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지는 침몰하는 배 안에 속절없이 갇혀 있었고, 애타게 기다리셨던 부모님은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낸 뒤에 참사 8일째 되던 4월 24일에야 예지를 만나실 수 있었습니다. 예지의 유품인 가방이 바닷물에 젖고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되었을 때 어머님은 밤새도록 울면서 손에서 피가 나도록 그 가방을 빨고 또 빨아 냄새까지 말끔히 지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지가 생활했던 2학년 9반 기억교실 전경입니다.
예지 어머님은 "우리 예지 수학여행 갔지" 하고 애써 마음을 달래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예지를 잃은 아픔을 견딘다고 하셨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무료문자 #1111은 무기한 정상 운영합니다. #1111로 문자 보내주시면 찬우, 민우, 예지 가족분들은 물론 세월호 가족분들과 분향소를 찾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실 수 있습니다. #1111로 문자 보내 찬우, 민우, 예지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귀염둥이 막내였고 요리를 잘 했던 찬우, 집안의 중심이고 가족 모두에게 따뜻했던 민우, 동생에게 더없이 다정하고 자상했던 예지를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