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68일을 맞이하는 12월 8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김도언 학생, 같은 3반 김빛나라 학생, 2학년 8반 박시찬 학생의 생일입니다. 반 순서 + 이름 가나다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김도언 학생입니다.
도언이는 외동딸입니다. 집에서 엄마하고 무척 친해서 엄마랑 커플링을 만들어 끼고 다녔고 엄마는 언제나 도언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시고 데려오시면서 매일매일 대화도 많이 나누고 언제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학교에서 도언이는 선생님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도언이의 꿈은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을 다정하게 돌봐주는 것이었습니다. 도언이는 고민이 생기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나 가장 먼저 선생님들께 여쭤보았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꼭꼭 실행하는 아이라서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많이 사랑받았습니다.
도언이는 공부도 잘 했고 글짓기와 연극, 피아노 솜씨도 수준급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연극부 활동을 했고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에 나가서 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백일장에서 시를 지어 상을 탄 적도 있습니다. 사물놀이 공연에도 참가해서 안산과 인근 시흥은 물론 일본까지 가서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연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함께 하셨고, 도언이랑 엄마랑 같이 유적지 탐방을 가고 전국일주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4월 15일 저녁에 도언이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도언이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애타게 도언이에게 전화하셨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단원고 2학년 3반 교실에 있었던 도언이 책상입니다. 단원고 교실이송이 결정되었을 때에도 도언이 어머님은 교실을 빼앗기고 도언이가 생활했던 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데 강력히 반대하셔서 다른 책상들이 모두 포장되어 이송준비를 할 때에도 도언이 책상만은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도언이는 4월 23일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도언이 어머님은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시고 도보행진, 삼보일배는 물론 집회와 문화제에 모두 참여하시며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같은 3반 정예진 어머님과 함께 "김도언 정예진 장학회"를 설립하여 도언이 후배들을 지원해주고 계십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주 12월 3일 민중총궐기 때에 청와대 앞에서 도언이 어머님을 뵈었습니다.
함께 생일을 맞이한 같은 3반 김빛나라 학생입니다.
빛나라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 두 자매의 맏딸입니다. 빛나라도 도언이와 함께 연극부에서 활동했고, 연기를 잘 해서 은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빛나라는 그림을 잘 그리고 장식에 소질이 있는 재주꾼이었습니다. 빛나라의 장래희망은 방송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빛나라는 부모님을 잘 챙기는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엄마를 좋아해서 엄마랑 얘기도 많이 하고 엄마 옷도 코디해주는 친구 같은 딸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셔서 빛나라는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입학한 뒤에는 빛나라 스스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등교 준비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성경 잠언서를 틀어놓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8월에 단기선교 여행을 떠나기 위해 여권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때 빛나라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불안해하는 엄마를 오히려 안심시키며 기도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빛나라는 아빠한테 전화해서 "배가 기울었어. 아빠 무서워, 데리러 와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부모님이 들으신 빛나라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빛나라와 도언이가 함께 생활했던 2학년 3반 교실 전경입니다.
빛나라 아버님은 맏딸을 허망하게 빼앗기신 뒤에 416가족협의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셨습니다.
함께 생일을 맞이한 2학년 8반 박시찬 학생입니다.
시찬이는 연년생 누나가 있는 두 남매의 막내입니다. 집에서 시찬이는 귀염둥이 애교쟁이 막내라서 언제나 부모님을 껴안고 뽀뽀해드리고 사진을 찍을 때도 꼭 껴안고 사진을 찍는 아이였습니다. 누나랑 연년생이면 종종 싸울 법도 한데, 시찬이는 누나를 무척 좋아해서 누나 말을 잘 듣고 언제나 져주는 착한 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한테 시찬이는 언제나 무슨 얘기든지 터놓고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들, 이해심 많은 아들이었습니다.
시찬이의 특기는 컴퓨터였습니다.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프로그램은 뭐든지 잘 다루었고 친구들한테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시찬이는 겨울에 태어났다고 해서 "꽁꽁군"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할 때나 게임을 할 때 시찬이는 "꽁꽁군"이었습니다. 컴퓨터를 잘 하고 비행기를 좋아해서 시찬이의 꿈은 항공정비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찬이가 생활했던 2학년 8반 교실 전경입니다.
8반 칠판 중앙의 커다란 리본 왼쪽 옆에 보시면 "박시찬"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시찬이는 친구들이 나쁜 길로 빠지려 할 때 너그럽게 감싸주는 이해심 많고 성숙한 아이였습니다. 시찬이에게 의지해서 마음을 다잡고 위로받았던 친구가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당일로 팽목항에 달려와 시찬이 부모님 곁을 지켜드리기도 했습니다. 시찬이 부모님은 시찬이가 돌아온 뒤에도 다른 미수습자 부모님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반년 가까이 팽목항을 지키시다가 지금은 안산으로 돌아와서 안산과 광화문을 오가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문자 #1111은 무기한 정상 운영하며 무료입니다. #1111 문자는 세월호 가족분들께 가장 간단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1111로 문자 보내 도언이, 빛나라, 시찬이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엄마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던 다정한 도언이, 신앙심 깊고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빛나라, 그리고 온 가족의 귀염둥이였던 컴퓨터 잘 하는 시찬이를 잊지 말아 주세요.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 언제나 함께 하고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1111로 문자 보내 주시면 굳세게 싸워주시는 세월호 가족분들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