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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을 통일한 진(晉) 제국 - 6
게시물ID : history_128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elisarius
추천 : 29
조회수 : 187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2/07 15:47:47
 
앞서 살펴보았던 외척세력 가남풍의 도를 넘는 전횡에도 황족들인 사마(司馬)씨들은
그저 조상이 세운 나라가 외척의 손에 놀아나는 것을 지켜만 보았느냐, 그건 아니올시다였다.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거나 자존심도 명예도 버리지 않은 이상, 
조상의 나라에서 외척이 판치는 꼴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다만 가씨세력을 제거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기에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만인으로부터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낼 만한, 명실명백한 명분이 없었다랄까.
단순 외척이 득세한다는 이유로 먼저 반기를 들었다간 되려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니 말이다.
가남풍에게 토사구팽 당한 초왕 사마위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던 중, 사마씨가 그토록 기다리던 찬스가 찾아오게 된다.
 
 
- 가남풍이 태자 사마휼을 죽이다 -
 
 
사마휼(司馬遹)은 혜제 사마충의 아들(가남풍의 소생이 아니라 후궁소생)로서 혜제가 즉위하자 태자가 되었고,
할아버지 무제 사마염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아버지 사마충과는 달리 유망주였다고 한다.
 
무제 사마염이 이 총명 손자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던 만큼, 사마충이 태자시절에
우둔함에도 불구하고 태자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은 이유도 이 사마휼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사마충을 폐태자 시켜버리면 그 아들인 사마휼의 정통성에 문제가 생겨버리니
훗날 손자 사마휼을 제위에 앉히려는 사마염의 의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총명한 사마휼을 가남풍이 경계하기 시작한다.
 
사마씨들은 죄다 찍소리 한번 못하는 머저리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미래를 촉망받는 젊은 사마씨 황족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장차 남편 혜제 사마충을 이어 제위에 오를 태자이니 만약 사마휼이
후계자로서 황제가 된다면 자신의 정권유지에 방해가 될 것이라 판단 것.
 
그래서 이 사마휼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가남풍 자신의 전공분야인
온갖 모함과 음모를 꾸며 사마휼을 견제하고 몰아내려 시도한다.
 
그러던 중, 하루는 가남풍이 사마휼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막상 만나지는 않고 신하를 시켜 황제가 하사한 술이라 하며 먹이게 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사마휼이었으나 어거지로 먹이는 신하때문에 사마휼은 꽐라가 되고 만다.
그리고는 사마휼에게 붓과 종이를 쥐어주며 황제의 조서를 베껴 적게 시켰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그냥 시키는 대로 쓴 모양인데, 문제는 그 내용이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폐하(사마충)께서는 이제 그만 물러나십시오. 스스로 물러나시지 않으면 제가 끝내드리겠습니다. 중궁(가남풍)께서도 또한 스스로 물러나셔야 될 겁니다. 중궁께서도 물러나시지 않으면 제 손으로 끝내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제 어머니 사씨와 더불어 기일을 정해놓고 행동을 개시할테니 괜히 미루어서 후환을 초래하지 마십시오. 삼진(해, 달, 별) 아래에서 털을 먹고 피를 마시며 맹세하고 황천이 걱정거리와 해로운 것을 없애버리라고 허락했으니 도문(사마반)을 세워 왕으로 삼고 장씨를 황후로 삼을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마땅히 천제에게 제사를 지낼 것입니다. - 자치통감
 
즉, 아들이 아버지에게 황제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얘기다.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 아버지와 양어머니(가남풍을 말한다)에게 자신의 친어머니(사씨)와 반란을
일으켜 두 사람을 해칠지도도 모르니 어서 양위하라는 것. 거기다 아들(본문에서의 사마반. 자(字)가 도문이다)을
왕으로 삼고 아내(장씨)를 황후로 삼을 것이라는 엄청난 패륜 시나리오가 담긴내용.
 
앞뒤분간도 안될 정도로 대취해있던 사마휼은 그저 생각없이 베껴 적었을 것이고
그 황제의 조서란 종이도 애시당초 가남풍이 사마휼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조작한 거짓 조서였던 것이다.
 
이 종이가 바로 다음날 혜제 사마충에게로 넘겨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마충은 즉각 대소신료들을 모아 사마휼을 죽일 것을 의논했고
워낙 증거가 분명한지라 변호해 줄 이도 없었다.
 
다만 평소 가남풍의 행실을 잘 알고 있는 몇몇 신료들, 삼국지연의에서도 등장하는 장화(張華)같은
신하는 조서의 진위여부를 더 신중히 조사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진언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사마휼은 즉각 폐위되어 서인으로 격하되었고 가남풍은 각각 사마휼의 친모와 아내인
사씨, 장씨를 죽여 없애는 치밀함까지 보여준다. 본래 역적모의에 관해서는 연좌제로 가족까지
책임을 물어 해를 입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남풍이 후환을 두려워하여 벌인 짓이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가남풍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섹X 파트너 태의령 정거를 시켜 독약을 제조,사마휼을 독살할 것을 명령한다.
아니나 다를까, 사마휼은 폐위된 후, 유폐지에서 지내며 항시 가남풍이자신을 독살할 것을 두려워하며 먹는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고 있었는데
황제의 하사주(酒)를 빙자한 가남풍이 보낸 독약이 당도하자 이를 알아차리고는 하사주 받기를 거부하다 결국에는 절구공이로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때가 정확히 A.D 300년이다.
 
 
- 가남풍의 죽음과 팔왕의 난의 시작 -
 
 
결과적으로 이 사마휼의 죽음은 그동안 기회만 노리며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있던 사마씨들이 들고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사마씨들이 그토록 바라던 대의명분이 생긴 것이다. 살해당한 사마휼은 많은 이들의 동정을 샀고 한편으론 많은 원망과 비난을 불러왔기 때문.
거기다 그토록 증오하는 가씨세력에 같은 혈육인 사마씨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분노와 복수심도 있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반기를 든 이는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 사마의의 9남)이란 번왕이었다.
 
즉각 군사를 휘몰아 궁성으로 쳐들어가 뜻을 함께한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 앞편에서 얘기한 사마유의 아들이다)과
더불어 가남풍을 찾아가 가남풍에게 사마휼처럼 독약을 마셔 자살할 것을 종용했고 가남풍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는다.
 
고서의 기록을 빌려 보자면..
 
조왕 사마륜이 입궁하여 익군교위 제왕 사마경에게 전각에 들어가 가후(賈后 : 가남풍)을 폐위하게 했다. 가후와 사마경의 모친이 서로 사이가 나빴기에 사마륜이 그에게 하게 했다. 가후가 놀라 이르기를, "경은 어찌 하여 온 것이오?" 사마경이 이르기를, "조서로 황후를 잡으라 하였소." 가후가 이르기를, "조서는 응당 나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무슨 조서란 말이오?" 가후가 상합(上閤)에 이르러, 멀리서 혜제를 부르기를, "폐하께서 부인을 가지시고, 타인에게 이를 폐하게 함은, 곧 폐하를 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사마경에게 묻기를, "이 일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가?" 사마경이 이르기를, "양(梁)왕과 조(趙)왕이오." 가후가 이르기를, "개를 묶으면 응당 목을 묶어야 하는데, 지금 도리어 꼬리를 묶었으니, 어찌 이와 같지 않을 수 있으랴!" 궁의 서쪽에 이르러 가밀(賈謐)의 주검을 보고는, 소리를 내 통곡하다 갑자기 그쳤다. 사마륜이 임금의 명이라 속여 상서(尙書) 유홍(劉弘) 등을 파견해 부절을 가지고 금가루로 된 술을 가지고 가 가후에게 건네며 죽음을 내리게 했다. 조찬, 가오, 동맹, 한수의 무리도 모두 주살되었다. - 진서 혜황후전 
 
사마륜이 혜제 사마충의 명을 빙자하여 가남풍을 죽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정변 또한 사사로이 저질러진 일이라는 얘기다.
거기다 앞서 언급한 가남풍의 조카 가밀과 가남풍의 동생인 가오도 죽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가씨일족은 물론이고 그 끄나풀들까지
모조리 숙청당한 것으로 나온다.
 
이 공(?)으로 조왕 사마륜은 사지절, 도독중외제군사, 상국, 시중이라는 거창한 벼슬을 하사받는다.
 
전횡하던 외척세력을 말소했고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다만 대권을 쥔 세력이 가씨에서 사마씨로 성씨만 바뀌었다 뿐,
정작 근본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 사마륜이란 사람도 가남풍에 비해 하나 나을 것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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