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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씨 |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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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김영광 1985년생. 중앙대 영문과/심리학과 2007년 졸업. 2010년 9월부터 재능기부단체 ‘끼친’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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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재능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 이것을 또다른 스펙쌓기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고급인력을 공짜로 쓰려는 놀부 심보 때문에 이 단어의 의미에 다소 금이 가긴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재능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능기부단체 ‘끼를 나누는 친구를 찾습니다’ 끼친의 대표 김영광씨를 17일 서울 종로의 카페에서 만났다.
“저의 꿈이요? 대기업 입사였죠. 복수전공과 학사장교를 선택한 것도 모두 대기업이 제 목표였기 때문이죠.” 그는 2009년에 그 꿈을 이룬다. 그런데 곧 회의에 빠졌다. “대기업 좋죠.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출근하기도 좋고 배지를 달고 출입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손에 든 채 길을 걷는 것도 상상했던 것과 똑같았어요.” “그런데 왜요?” “대기업은 다 보여요. 내가 몇 년 뒤에 대리가 되면 저 책상에서 일을 하겠구나. 7년 뒤에는 저기쯤에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직급에 따라 배치되는 2차원적인 공간, 회장님은 맨 꼭대기층에서 일하는 신분에 따른 3차원적인 구조. 그는 이 매트릭스 안에서 정해진 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못 견딜 정도였다. 한편 그는 대학생 때부터 장애인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대기업 입사 뒤 그는 아름다운가게를 통해서 차상위층 학생들의 절망을 접하게 된다. “원래 봉사활동을 하긴 했었는데 차상위층까지는 신경을 못 쓰고 있었어요.” “네? 당연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저도 차상위층이었거든요. 학교 다닐 때 스터디를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제가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가난해도 남들도 다 저처럼 하는 줄 알았어요.” 머쓱해진 나는 제대로 입력이 안 된다는 듯 블루투스 키보드를 퉁퉁 내리쳤다.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옮기며
집에서 쫓겨날 뻔“회사를 옮겼어요. 사회적 기업으로요. 회사에서도 보람을 찾고 제가 직접 뛸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요.” 난 김영광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인기 개그맨을 닮은 선한 얼굴과 저 결연한 행동은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에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둘 수 있을까? 그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님한텐 집에서 쫓겨날 뻔했고요. 7년 사귄 여자친구 부모님께서는 딸한테 헤어지라고 하셨대요. 뭐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죠.” 대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엄밀히 말하면 전직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대기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복합적이죠. 대기업의 꽉 짜인 구조에 대한 환멸과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결합된 거죠. 만약 시기적으로 따로따로였다면 그냥 가만히 있었을지도 몰라요.” 왜 그렇게 돕고 싶은 걸까? “아이들에게 꿈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제적으로 힘들수록 현실 속에서 허덕거리면서 아이들은 더 큰 내상을 입죠.” 꿈, 사랑, 어린이. 이젠 대기업 이미지 광고에서나 접하는 말들을 그는 역시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회사를 옮기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저의 생각을 올렸더니 추천이 2만건이 넘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그게 ‘끼친’의 시작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업성취도만으로
꿈을 결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란 걸 말이죠”그들의 감격적인 첫 활동은 어땠을까? “그런데요. 저희한테 아무런 실적이 없다 보니까 그 어떤 단체나 학교에서도 저희를 안 받아주더라고요. 저희도 너무 미숙했고요. 그냥 마음만 있을 뿐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꼬마 신랑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한강 가서 쓰레기 주웠어요.” “네?” “말 그대로 한강 가서 쓰레기 주웠어요. 봉사활동은 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곳은 없으니 쓰레기라도 줍자. 하하하.”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음을 짓던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오랜만에 제대로 싱크가 되었다. “혹시나 해서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어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남부교육청을 연결해주시더라고요.” 남부교육청의 소개로 서울 모지역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드디어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저희는 교육이 아니라 정서지원을 목표로 했어요. 피시방 외에 다른 놀거리가 없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죠.” 영어 연극과 종이접기, 제기 만들기, 비사치기(비석치기) 등 3시간짜리 프로그램은 좋은 반응을 얻고 학교 쪽은 아예 1년간 이들에게 토요일을 할애했다.
“회원이 600명까지 늘어나자 직업군도 70여가지로 늘어났죠. 그래서 중고생들에게 꿈과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직업이요?” “요즘 중고등학교 가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희망 직업이 서너개밖에 안 돼요. 대기업 직원, 의사·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 그리고 슈퍼스타케이(연예인)요.” 지금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40대 후반과 50대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일 것이다. 앞으로 늘어날 전망은 거의 없는 소득에 늘기만 하는 지출, 그리고 체력의 쇠락을 실감하는 건강까지. 그 상태에서 자녀들이 대기업 또는 ‘사’자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자녀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순히 학업성취도만으로 꿈을 결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말이죠.” 열명에서 스무명이 한 팀을 이루어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학교로 직접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절대다수가 20대 후반부터 30대인 그들에게 ‘불금’은 없다고. “토요일 아침 7시에는 준비를 마쳐야 하니까. 금요일 밤에 일찍 자야죠. 덕분에 토요일에 집에서 늘어진 채로 티브이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보는 직장인의 낙을 잃어버린 지도 3년이 넘었네요.”
‘착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우린 착한 사람을 순종적인 사람이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란 공동체를 위한 선의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광은 진짜 착한 사람이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