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에서 이재용이 하는 것을 보고, 바지냐, 멍청하냐, 남자 박근혜냐, 뭐 그런 평가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도대체, 왜 저 모양일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더군요.
먼저, 제가 궁금해 했던 질문입니다.
1) 왜 다른 총수들은 고개 뻣뻣히 들고 있는데, 유독 이재용만 의원들에게 의원님 소리 해가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인가?
2) 왜 전경련 탈퇴와 미래전략실 폐지를 이야기하는가?
3) 왜 지원금의 최종 책임자를 얘기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들과 삼성이 어떤 입장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우선, LG, GS는 특별한 특혜를 받은 것이 없습니다. CJ와 한진은 오히려 손해를 봤고요.
SK, 한화, 롯데, 현대의 경우는 좀 특별합니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횡령 처리와 감옥에서의 특혜 등으로 이득을 본 것이 있고,
롯데의 경우 면세점 사업 관련 이득이 있습니다.
한화의 경우, 삼성으로부터 유관 기업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재계 서열이 오를 만큼의 이득을 봤지요.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회장님 상태가 좀 그렇더군요. 질문을 해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듯한 느낌 이었습니다.
반면에 삼성은 가장 큰 이득, 경영권 승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지요.
결국, 최대 수혜자에게 집중이 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이재용에게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삼성을 내버려두고, 다른 기업을 털려고 하면, "아 왜, 쟤는? 쟤가 더 많이 혜택을 받았는데? 억울해!" 하는 소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성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고, 포커스의 핵심은
<이득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뇌물을 준 것인가? 아니면, 비선실세에 의해 돈을 뜯긴 것인가?>
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재용은 큰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뇌물이 아니라 돈을 뜯긴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돈을 뜯긴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에게 찐따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재계 서열 1위 글로벌 그룹인 삼성과 찐따는 왠지 어울리지가 않죠. 그래서 삼성이 아닌 이재용에게 "겸손"의 프레임을 입히게 됩니다.
이재용이 만든 프레임은 이렇죠.
1) 이재용은 삼성 그룹 전체를 다 책임지지는 않는다.
이것을 위해 이재용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합니다. <<미래전략실에 매일 가지 않는다. 한달에 1~2번 정도 만나는 것일 뿐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삼성전자"에 올인하고 있다. 문화 관련 재단 지원은 일상 업무라서, 담당자들이 적당한 사규에 따라 수행한다. 그룹의 모든 일을 일일히 다 보고 받지는 않는다.>> 이 말은, 그룹의 모든 결정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밑밥입니다.
2) 이재용은 겸손하다.
이를 위해 이재용은 어눌한 말투를 사용합니다. "음.. 어.. 저.." 라는 무의미한 말을 계속 사용하고,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발화합니다. 그리고, 다른 총수들은 사용하지 않는 "의원님" 이라는 말을 항상 붙이고, "저"라는 단어로 자신을 호칭하며, 답변의 끝에는 항상 고개를 숙입니다. 정몽구 회장이나 김승현 회장, 심지어 최태원 회장조차 하지 않는 언어구사입니다. 가장 강력한 금권을 가진 이재용이 누구보다도 가장 겸손한 말투와 행동을 보이는 것이지요. 혹시나 나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안민석 의원(1966)과 2살 밖에 차이 안나고, 최태원 회장(1960)이랑도 8살 밖에 차이 안납니다. 사장단 미팅에서 "실적 못내면 뛰어내리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런 식의 언어 구사를 한다는 것은 그것을 감수할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렇게 약자의 모습을 보입니다만, 사실 그것이 그냥 찐따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재용이 말한 내용들,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 "미래전략실을 폐쇄하겠다" 라는 말은 찐따나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우선 전경련 같은 경우, 5대 기업에서 내는 1년 연회비만 200억 정도라고 하는데, 이게 똑같이 40억씩 내는 것이 아니라 차등적으로 냅니다. 그 중 삼성이 내는 돈이 제일 많겠죠.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전경련을 탈퇴한다? 이건 마치 유엔에서 미국이 빠지겠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미국이 유엔을 나와서, 다른 조직을 만들면, 유엔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모두들 빠져 나와서, 미국이 만든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겠죠.
전경련 탈퇴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삼성의 자본력이 중요한 것이고, 삼성의 전경련 탈퇴는 결과적으로 삼성의 힘을 재확인해줄 뿐일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전략실 폐지와도 동일한데, 이는 히틀러가 SS단을 해산한다는 것, 박정희가 중정을 해산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말입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의 운영 및 유지에 있어서 핵심인데, 그것을 없애겠다는 것은, 이름만 바꾸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라면 미래 전략실 없어도 그룹 장악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습니다. 뭐가 되었든 이재용의 "야! 내가 곧 삼성이다. 이건희의 미래전략실 같은 것 없어도 내 조직으로 삼성을 운영한다" 라는 명명백백한 권력 이양의 완성을 공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조직원들에 대해서 이런 메시지도 전했지요.
"삼성의 이름으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 형사 책임까지도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를 믿고 충성하라!"
라고 말입니다. 의원들이 묻는 "누가 결제한것이냐?" 라는 질문에 절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하지 않기 위해, 박영선의원의 "이 무능력자! 사퇴하세요!" 라는 말에도 분노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면서 넘어갔습니다. 김승현 회장 같으면 그 자리에서 빠따를 꺼내 들었을 지도 모르는데, 이재용은 참은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랬다" 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조사가 끝난뒤, 책임여부가 밝혀지면 책임지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검찰을 구워삶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지요.
결국, 이재용의 전략은 이것이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을 향해서는 "삼성 역시 피해자"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삼성의 이재용은 겸손하고 약간은 어눌하지만 착하고 선한 사람" (옛날에 "쁘띠 건희"라면서 이건희에게 친근감을 주는 바이럴 마케팅의 재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삼성 직원들에게 "이제부터 이재용이 삼성이다. 그리고, 이재용은 너희들을 책임진다. 그러니 충성하고 따라와라!" 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