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위의 형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까지..
우리 아버지는 단 한번도 내 입학 졸업식에 오신적이 없다..
물론 우리형의 입학, 졸업식은 온가족뿐만 아니라 근교 친척
까지 모여서 단체로 식사하는 날이었다.
서운했지만 이해할수 있었다.
고등학교때 난 교과서를 산적이 없다.
한권에 천몇백원 하는 교과서를 형꺼를 물려 받아 썻다.
이해할수 있었다.
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국립 사범대에 합격하였다.
등록금은 120만원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등록금을 줄수가 없었다.
이유는 형이 지방 사립대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했던 나와 달리
형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당시에 중부대학교라는 사립대 학비는 우리 가족이 감당하기엔
어마어마 했으며, 학교를 다니던 형이 나때문에
학교를 그만둘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학교를 포기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서운했지만 이해할수 있었다.
재수후에 나는 돈을 빨리 벌수 있고 학비도 싸고 장학금도 준다는
지방 전문대의 3년제 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그게 나로선 최선이었다.
형은 2년동안 다닌후 미래가 안보인다는 이유로 학교를 자퇴 하였고
그리고 집근처 직업 전문 학교 에 입학하였다.
형의 학비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등록금과 입학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 7시부터 아침 8시 30분까지
학교 근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잠잘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고..난 대학교 생활 3년 내내 MT,OT, 개강파티,
종강파티 같은것은 단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점심시간과 쉬는시간에 잠을 자야 했으며, 한달에 두번있는 휴일은 유일하게
풀로 잘수 있는 날이었다.
평범한 대학교 생활은 단 하루도 한적이 없으며, 지금도 난 대학교 친구는 없다.
물론 우리형은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한적이 없다.
군대에서 난 운좋게 천만원을 모아 올수 있었다.
911 테러가 일어났고 해외 파병에 선발되어 해외 파병도 가고 돈도 모을수 있었다.
그 천만원으로 집에서는 형에게 차를 사줬다.
서운했지만 이해할수 있었다.
학교 졸업후 난 병원에 취직했다.
형은 공장에 취직했다.
난 결혼할 교사 여자친구가 있었다.
집에서는 종교와 편모 문제로 반대를해 결국헤어졌다.
우리형은 나이 30이 되도록 한번도 직업이라는걸 가져본적 없는 형수와 결혼을 했다.
종교는 물론 같았다.
30살까지 나와 우리형은 월급을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
처음부터 부모님은 그걸 요구 했으며,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 모두 돈은 부모님이
관리해주신다는 인터뷰를 한다.
난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이 결혼을 할때 아버지는 집의 거의 전재산을
많은 세금을 주고 형에게 증여를 해주셨다.
난 더이상 집에 돈을 드릴 수가 없었다.
서울로 이직을 하고 부모님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생각이 많았다.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았다.
부모님은 단 한번도 나에게 옷을 사주신적이 없다.
30이 다 되도록 나이키 신발 같은 운동화나,
필라같은 메이커 옷을 입어 본적이 없다.
(아직도 난 나이키나 필라정도 밖에 모른다.)
항상 얻어 오거나 중앙시장에서 삿다.
난 옷에 관심이 없어서 상관 없었다.
옷과 메이커 관심이 많은 형의 옷장은 늘 옷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대학면접, 취직 면접을 보는 순간에도 정장이 없었다.
형은 고등학교 졸업, 대학입학, 대학졸업, 생일, 회사면접..
모든 이벤트 순간에 아버지께서 구두와 양복을 한벌씩
맞춰 주셨다.
부모님은 늘 어렵다고 힘들다고 했으며,
실제로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은 정말 힘들게 돈을 버셨다.
난 아르바이트와 취직을 해서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것을
늘 행복해 했고 자랑스러워 했고,
늘 공부도 잘하고 알아서 앞가림 잘하는
나를 부모님도 자랑스러워 하셨다.
정말 행복한 가정이었다.
난 우리집이 정말 힘든줄 알았다.
결혼하는 형에게 시내 한복판에 있는 34평짜리 자이 아파트와
지방의 24평짜리 아파트 이렇게 두채를 증여해주고,
그 막대한 세금을 낼때 까지는...
많이 싸웠다..
부모님은 현재 살고 계신 집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형에게 증여하신
상태다..
난 패륜아다.
이제 부터 옷도 사고 여행도 가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
이렇게 5년이 흘렀다.
친척들이 많이 욕한다.
이해 할수도..이해 하고 싶지도 않다.
돈때문이 아니다..
내 지나간 세월이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다.
글재주가 없다.
더 속상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냥 대충 상황이 이렇다.
부모님은 한달에 한번 문자가 온다.
잘지내냐고...
잘지낸다고..하고 끝낸다..
난 패륜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