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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를 구별하자!
게시물ID : sisa_7991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종이조가리
추천 : 0
조회수 : 3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28 17:59:20

[신문기사중]

20113월 동일본대지진 때 후쿠시마 제1원전 앞에 살았던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원전 사고 직후 도쿄 근처 요코하마시로 이사를 갔다가 왕따를 당한 사건으로 일본이 시끄럽다. 아이는 5년간 왕따를 견디다 등교 거부에 들어갔고 중 1이 된 지금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23일 사건이 터진 뒤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나와 아들의 말을 전했다. “자기처럼 왕따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으면 아무 말도 못 한다. 도와주는 어른이 반드시 있다. 힘들어도 살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아이의 가족은 동일본대지진 5개월 뒤 요코하마에 왔다. 전학 오자마자 방사능에 오염 됐다는 의미로 바이킨(ぱい·세균)’ 이란 별명이 붇었다. 5학년 때는 또래 10명이 후쿠시마 사람은 보상금을 타서 돈이 있을 것 같다며 게임비·밥값·교통비 등으로 한 번에 5~10만엔씩 10차례에 걸쳐 150만엔을 뜯어갔다. 견디지 못한 아이는 등교 거부에 들어갔다.

부모가 알고 학교에 상담했지만 학교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화가 난 부모가 작년 12월에 요코하마 시교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여기서도 늑장 대응은 똑같았다. 조사 시작 후 10개월 뒤에야 왕따가 맞는다는 결론이 났다.

아이의 변호사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가 작년에 쓴 수기 일부를 공개했다. 아이가 5학년 때 당한 일을 적은 글이다. 노트 세 쪽에 띄엄띄엄 쓴 16개의 문장이 일본 사회를 울렸다.

체육관 뒤에서 3명이 사람 눈 없는 데로 돈을 가져 오라고 했다. 저항하면 또 괴롭힐까 봐 어쩔 수 없었다. (중략) 전학 왔을 때 맨날 걷어채었다. 연필이 부러지고, 노트에 낙서가 돼 있었다. 몇 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대지진 때 많이 죽었으니까 괴로워도 살기로 했다.”

일본 사회는 분노했다. 학교와 시교위는 그제야 늦장 대응을 사과했다. 문부과학성도 재발 방지를 지시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요즘 자건저 타고 싶다는 말을 할 만큼 안정을 찾았다면서 정부가 움직인 게 기쁘다. 빛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도 위 사건처럼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입니다. 보상금 문제로 말도 참 많았습니다. 큰돈을 받는다는 것에 부럽다고 생각이 들기도합니다만, 이런 문제는 공과 사를 구별해야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 신문기사의 일본의 어린이는 삶의 터전을 잃었고 세월호 사건은 큰 과실을 맺을 새싹을 잃었습니다. 세월호도 과적논란, 7시간 의혹 등 정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상금이 많다, 특혜가 많다 등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다시 한 번 공과 사의 문제를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출처 조선일보 2016년 11월 25일 금요일자 신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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