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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길어요) 꿈과 꿈의나
게시물ID : panic_915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iense
추천 : 6
조회수 : 7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1/22 17: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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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오래 전에 겪었던 일 하나를 말해줄게. 요새 들어 할 일이 없어서 많이 심심했거든. 글 쓰는 거 원래 잘 못하는데 워낙 할 게 없으니 이런 거라도 재미 붙여보려고. 아, 얘기하기 전에 지금부터 내가 할 얘기는 내가 직접 겪은 백 퍼센트 실화라는걸 말할게. 솔직히 말해서 너희들이 이 얘길 실화라고 믿을 거라는 기대는 거의 없어. 나도 여전히 이해가 다 안 되는 이야기거든. 근데,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니까 작은 소설 쓴다 생각하고 써보지 뭐. 그러니까 내가 군대 막 제대하고 학교 복학을 기다릴 때였어. 겨울방학이었는데, 1월 말인가, 2월 초인가 아마 그랬을 거야. 내가 23살 때였는데, 그때 겨울 참 추웠던 것이 기억이 나. 어느 겨울이든 겨울은 항상 춥긴 하지만, 서울 외곽에 싸게 구한 반지하 방에서 혼자 지냈어서 그런지 유난히 춥게 느껴졌던 것 같아. 실제로 돈을 아껴야 해서 난방을 거의 안 했던 이유도 있고. 어찌됐건 나는 제대 하자마자 카페 알바로 학비나 모으며 개강만 기다리던 할일 없는 복학생이었어. 그렇게 매일을 똑같이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외할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온거야. 그때 나 정말 놀랐거든. 외할아버지라니! 전화를 받고 들려오는 외할아버지 목소리를 들었을 때 사실 좀 기분이 안 좋게 묘했어. 왜냐면 나 외할아버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외할아버지도 나를 별로 안 좋아하시고 말이야. 아니, 그분은 나를 ‘안 좋아한다’ 라는걸 넘어서 거의 있는 사람 취급도 안 하셨어. 계속 전화가 울리는데,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아버지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았지. 전화를 받고 더 놀랐던 건 외할아버지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던 거야. 처음엔 놀라고 당황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지. 오시겠다는 말에 왜 대답이 없냐는 소리에 나는 결국 어찌어찌 목소리 쥐어짜내 “예..” 라고 답하긴 했어. 외할아버지랑 전화를 끊고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서 말씀 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셨던 것이 기억이 나. 당연하겠지, 외할아버지가 나를 너무 싫어하셔서 엄마가 나를 데리고 결국 외갓집을 나오시기 까지 하셨는걸. 아, 그러니까 우리집 이야기가 좀 복잡한데, 그냥 짧게 설명하자면 나에겐 아버지는 안 계시고 엄마만 계셔. 아버지는 나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엄마에게 들었어. 그래서 나는 외갓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 여자가 임신한 몸으로 밖에서 홀로 살림을 꾸린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 더군다나 옛날에는 더더욱. 그래서 엄마는 엄마가 어릴 때부터 쓰시던 방에서 나와 함께 지냈어. 그 집에서 나를 기르고 나중에는 취직도 하고 그러셨지. 외갓집이 그래도 나름 풍족해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가 그 집에선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단 거야. 대여섯 살 땐 엄마가 일하러 나가신 동안은 나도 집밖으로 내쫓겼으니까. 외할아버지께서 손수 나를 밖으로 내보내시고 대문을 걸어 잠그셨어. 밥 못 먹는거야 뭐 일상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께서라도 계셨으면 좀 나았을까 싶은데, 안타깝게도 외할머니께서는 일찍 돌아가셔서 안 계셨어. 결국 어느 날 밤,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랑 크게 싸우고 나를 데리고 집을 나오셨어. 뭐, 그 이후로는 계속 우리엄마랑 나랑 둘이 산거야. 외할아버지는 간간히 엄마에게 연락을 하신거는 같은데, 나에 대해선 묻지도, 궁금해 하시지도 않으셨어. 그런 상황에서 외할아버지가 직접 나에게 전화를 하신거야. 내가 놀랄 수 밖에 없었지.  외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나고 주말이 되었어. 나는 할아버지를 뵈러 버스 터미널로 나갔지. 플랫폼에서 멋쩍게 서성거리고 있으니까 멀리서 외할아버지가 보였어. 정말 형식적으로 인사 드리고 짐을 들어드렸지. 우리 둘은 점심 먹자는 말에 터미널 근처 아무 식당에 들어갔어.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아무 말 없이 식당을 나왔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얘기를 할만한 적당한 장소를 아냐고 물으시는 거야. 그래서 난 주변 커피숍으로 가자고 했지. 카페 구석에 앉아서 어색한 노래 속에 할아버지와 나는 한참을 커피만 마셨어. 한참 후에 할아버지는 나에게 학교는 어떤지, 군대는 언제 제대했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같은 흔히 말하는 ‘명절질문’들을 하셨고, 나는 성실하게 대답해드렸지. 그런 질문들이 끝나자 할아버지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주머니에서 뭘 꺼내서 나에게 주셨어. 빨간색 작은 복 주머니였는데, 받아서 열어보니 부적이 들어있더라.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는 좋은 직업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부적이라고 설명하셨어. 그리고 그 동안 나를 손자로 인정하지 않고 너무 심하게 대해서 미안하시다며 지금이라도 나를 돕고 싶다며 용한 무당에게서 내 성공을 위해 부적을 사오셨다는 말도 덧붙이셨고 말야. 아무튼, 할아버지 만난 감정적인 얘기 같은건 이제 그만하고, 그 다음부터 일어난 일로 넘어갈게. 그게 더 중요하거든. 그날 나는 엄마에게 다녀와서 연락 한다는 약속도 까먹고 지쳐 쓰러져 잠들었어. 너무 많이 긴장했던 탓 인가봐. 그리고 그 날 밤에 그 꿈이 시작되었어.  첫날 꾼 꿈속에서 나는 한 고등학교 앞에 서있었어. 그냥 눈떠보니 그 학교 정문 앞이었던거지. 나는 이게 뭐지 싶은 마음에 두리번거렸어. 특별한 건 없었어. 그냥 평범한 한 여고 앞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가게도 다 평범했어. 좀 이질감이 있던 것이라면 모든 것들이 오래되어 보였다는 것 정도? 나는 한참을 서 있던 정문 앞에서 발걸음을 떼어 학교 안으로 들어가봤어. 나중에 알고보니 이런걸 자각몽이라 하더라고. 꿈속인데도 불구하고 내 의식이 있고, 내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런 꿈. 학교도 역시 특별한 게 없더라. 그냥 정말 평범한 여고였고 대낮에 수업 중 이어서 교내는 조용하기만 했어. 운동장 가장자리를 지나 교실건물 뒤쪽으로 해서 한 바퀴 돌아본 다음 나는 그냥 학교를 나왔어. 그리고, 그게 끝이야. 정신차려 보니까 내 원룸이더라고. 그때는 몰랐지,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그 첫 꿈 이후로 매일을 같은 꿈을 꿨어. 매번 같은 고등학교 앞에서 시작해서 한 두어 바퀴 학교건물을 돌고 나면 꿈이 끝나버렸어. 도대체 그 고등학교가 무엇일까, 나는 너무 궁금했거든. 그래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려 시도해봤었는데, 그때 꿈이 끝나고 잠에서 깨는 거야. 그렇게 궁금하고 답답한 꿈을 꾼 지 한 일주일 지났을 때, 나는 꿈이 조금 더 길어진걸 느꼈어. 그래서 학교 밖을 벗어나 시내로 걸어나갔어. 꿈속 길을 걷는데, 내가 아까 말했잖아 뭔가 오래된 느낌이었다고. 길가에 떨어진 신문조각을 들어 봤는데 87년도인 거야. 1987년! 그 날짜를 보는데 사실은 처음에 되게 신이 났었어. 영화 같잖아! 아니면 가상현실게임이라던가! 그날의 꿈은 그냥 그렇게 끝났어. 신나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정말, 옛날 뉴스에서만 보던 거리들을 직접 보고, 촌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돌아다니고 구경하다가 어느 순간 잠에서 깬 거야.  그러다가 꿈이 이상해진 건 그로부터 며칠 후부터였어. 그 날도 꿈꿀 것에 신이 나서 잠에 들었고, 평소와 똑같이 학교 앞에서 꿈이 시작되었지. 근데 그 날은 좀 달랐던 게, 원래는 수업중인 학교를 배경으로 시작해서 되게 조용했거든. 근데 그날은 아이들이 우르르 학교하고 있었어. 여고생들만 나오던 걸 보면 여고였던 것 같아. 정말 짧은 단발에 옛날 교복을 입고 쏟아져 나오는 여고생들을 보니 새삼스레 이질감이 느껴졌어. 괜히 먼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 아이들 사이를 뚫고 갈 용기가 생기질 않아서 그냥 교문 옆에 붙어서 아이들이 다 나가기를 기다렸어. 그렇게 그냥 멀뚱히 서있는데, 교문 건너편 골목에서 한 남자가 여고생들을 숨어보는걸 목격하게 되었어. 근데, 가끔 그럴 때 있잖아, 괜히 촉 같은 게 생기는 거. 그 남자가 너무 나에게 불쾌한 기분을 가져다 주는 거야. 그리고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그 남자를 계속 주시했어. 그 남자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한참을 신경 쓰고 있는데, 그 남자가 드디어 골목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여고생들 사이로 함께 길을 걷는 거야. 나는 그 남자를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꿈이라 할 일도 없는데 뭐. 그렇게 한참을 따라가는데 점차 학생들 수도 줄어들고 길거리엔 그 남자랑 여고생 두 명, 그리고 멀찍이 그들을 따라가는 나 말고는 없었어. 좀 더 걸어가니, 한 갈림길이 나왔어. 그 갈림길에서 여고생 두 명이 인사를 하고 각자 흩어졌어. 그리고 그 남자는 그 여고생들 중 좀 더 키가 컸던, 머리에 빨간 작은 핀을 꽂은 아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는 거야. 설마 싶었어. 너희도 직접 보면 느끼겠지만, 정말 불안한 남자였거든. 그 눈도 그렇고. 발걸음을 서둘러 그 골목으로 나도 따라 들어갔어. 들어가자마자 작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소리를 찾아 뛰기 시작했어. 뛰면서 찾고 있는데, 한 건물 틈새에서 아까 그 남자의 등이 보이는 거야. 그리고 등 아래에 아까 본 여고생 다리가 보이고 말이야. 나는 아무런 생각을 못했어. 그냥 머리에 실 같은 게 탁 끊어지면서 그 이후론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아. 난 골목으로 들어가 남자를 여고생에게서 억지로 떼어놓고 그를 밀쳤어. 그는 나를 노려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바로 움켜쥐었어. 그때서야 아차 싶었어. 칼은 못 봤던 거지. 나는 일단 여고생을 내 뒤로 오게 해서 골목을 빠져나가게 했어. 여고생이 도망치려 하자 그 남자가 아이를 잡으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온 힘을 다해 그 남자를 막아 섰지. 막아 서자 마자 그 남자는 칼로 나를 찔렀어. 꿈이라 안 아플 줄 알았는데, 정말 아프더라고.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어. 식은땀 줄줄 흘리면서 딱 꿈에서 깼는데, 꿈속에서 칼을 맞은 그 부분이 너무 아픈 거야. 옷을 들춰보니까 그 부분에 엄청 크고 시뻘건 피 멍이 들어있었어. 나는 너무 소름이 끼쳐서 온 집안의 불을 다 켜고 남은 밤을 샜어. 단순히 신기한 꿈 인줄로만 알고 즐기고 있었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한 거야.  그 다음날부터 잠에 들 수가 없었어. 처음 하루 이틀은 괜찮았는데, 며칠 더 밤을 새니까 알바를 하면서도 계속 실수를 하고 조는 거야. 혼나기도 엄청 혼났는데, 그래도 다시 잠들기는 싫었어. 그렇게 한 다섯 일을 잠을 안자니까 사실 조금 힘들어지더라. 그래서 일람을 막 5분단위로 계속 맞춰두고 자기도 하고 그랬었어. 5분마다 자다가, 깨다가 했던 거야. 지금 생각하면 결국 이렇게 될 걸 뭐 그렇게 애썼나 싶어. 하여간 그렇게 지낸 지 한 일주일 즈음 되었을 때 결국 나는 졸음을 못 이기고 깊은 잠에 들게 되었어. 역시 마찬가지로 꿈을 꾸게 되었는데, 딱 저번 꿈의 시작과 같았어. 우르르 몰려나오는 여고생들과 그 건너편 수상한 남자도 그대로였지. 시간이 다시 반복되는 것 같았어. 정확히 말하면 꿈이 반복되는 거겠지만, 이젠 이 꿈이 평범한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나니까 너무 소름이 끼치는 거야. 그 남자와, 그 골목과 그리고 그 여고생의 일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러면 또 그 남자를 막기 위해 칼을 맞아야 하나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 그렇게 교문 옆에 서서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남자가 사라져 있는 거야. 나는 찰나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다시 그 일이 반복 될 까봐 두려웠거든. 칼 맞는 거, 정말 아프단 말이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찝찝함을 덮어두고, 그냥 다른 쪽 길로 갔어. 그렇게 예전에 했던 것처럼 평온하게 옛날의 길을 걷고 구경하고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 그렇게 길을 걷고 있는데, 어제 보았던 그 갈림길이 나오는 거야. 처음에는 당연히 그때 그 골목의 반대쪽 길로 가려 했는데, 자꾸 그 다른 골목이 눈에 밟히더라고. 그래서 결국 나는 그 골목으로 들어섰어. 이전 꿈에서는 미친 듯이 뛰느라 자세히 못 봤는데, 이번엔 걸으며 이곳 저곳을 보니, 우리 외갓집 가는 길이랑 너무 비슷한 거야. 신기하다 생각하며 천천히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갔어. 가다가 저 앞에 어제의 그 일이 일어난 작은 샛길골목이 눈에 들어왔어. 나는 숨을 크게 쉬고 그 쪽으로 다가가서 그 샛길 안쪽을 살펴봤는데, 보는 순간 나는 정말 다리가 풀려버렸어. 왜냐면 어제 봤던 그 빨간 삔 꼽은 아이가 그 안에 쓰려져 있었거든. 그 아이의 교복상의는 다 풀어헤쳐져 있고, 교복 치마 아래로 빨간 선혈이 흠뻑 흘러나오고 있었어.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갔어. 그리고 그 아이를 살짝 안아 일으켜 세워보려던 참에 꿈에서 깨버린 거야. 정말 화가 났었어. 꿈이었지만, 그 몹쓸 짓을 당한 아이가 자꾸 맘에 걸렸어. 혹시 내가 이번 꿈에서 그 남자를 막지 않아서 그 아이가 피해를 본 건 아닐까, 이 꿈이 현실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거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된 걸까, 정말 너무 화가 나면서 죄책감이 한 가득 밀려왔어. 그리고 나는 그 꿈을 다시 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다음날 밤이 왔어. 나는 집에 있던 칼을 내 품속에 넣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어. 현실과 연결이 되어있는 거라면, 그 칼이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 남자를 차라리 내가 죽이거나 하면 그 아이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고, 나 또한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남자에게 너무 화가 나서 견디질 못 하겠어서 어떻게든 꿈 속 상황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나는 잠에 들었어. 이번에 꾸는 꿈은 그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한 이후부터 시작하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는데, 다행이 같은 시작으로 꿈을 시작했어. 아, 그리고 또 다행이, 내가 가져온 칼도 그대로 내 품에 있었어. 우르르 나오는 여고생들과 교문 옆의 나, 그리고 건너편의 그 수상한 남자까지 모든 게 같았어. 그리고 내가 예상한 것 과 같이 그 남자는 조금 서성이다가 여고생들 무리 속으로 들어갔고, 그 중 빨간 핀을 꼽은 아이의 뒤를 계속 따라갔어. 나도 그들을 계속 쫓았지. 곧 골목길이 나타났고 나는 더욱 가까이 그들과 붙어 따라갔어. 물론, 그 남자가 눈치채지 않을 정도의 거리는 두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남자가 그 여자아이의 입을 막고 골목 샛길로 끌고 들어가는걸 보았어. 나는 바로 그쪽으로 뛰어가 그 안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한 틈 망설이지도 않고 그 남자의 등에 내가 갖고 온 칼을 힘껏 꽂았어. 나는 내 손부터 시작해서 온 몸으로 느껴지는 이상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어. 그제서야 몸이 덜덜 떨리더라. 그 여고생도 모든 상황을 보며 놀란 게 보였어. 놀라다 못해 그 아이도 나처럼 덜덜 떨었지. 그 남자가 풀썩 쓰러지자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 여자아이를 끌고 골목을 빠져 나왔어. 그 남자가 확실히 죽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피가 엄청 나왔으니 다른 사람이 일찍 발견하지 않는 이상 적어도 과다출혈로 죽지 않았을까 생각해. 우리는 정신 없이 그 골목 안을 빠져나왔어.  한참을 빠르게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시내 한가운데 였어. 시끌벅적한 시내 가운데 있으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시더라. 그제서야 내 옆에 여자아이를 쳐다봤어. 얘는 아직 떨고있는거야. 나는 어쩔 줄 모르다가, 입을 뗏어.  “저… 괜찮아요?”  내가 말을 건네자 그 여자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어. 오면서 울었는지 아직 안 마른 눈물방울이 볼에 흥건했어. 나는 당황해서 근처 앉을 곳이라도 찾아서 쉬자고 하려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 아이가 말을 하는거야. “아까, 감사해요. 저 갈게요.” 라고 말하고 그 아이는 그대로 뒤돌아서 가버렸어.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에 아까 그 남자가 다시떠올라서 그 아이를 쫓아갔어. 가봐야 집에 갈텐데, 아까 그 일이 그 아이 집가는 길목에 있잖아. 그게 생각이 난거지.  “집에 데려다 줄게요!”  나는 그 아이를 바짝 쫓아가 팔을 살짝 잡으며 말했어. 그 여자아이는 잠시 멈춰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어. 나도 그냥 따라갔지 뭐. 강아지마냥. 우리는 그렇게 말 없이 걸었어. 그 아이는 아까 그 골목을 지나치지 않고, 아예 다른 길로 해서 집을 찾아갔어. 한 빨간 대문집 앞에 가서야 그 아이는 걸음을 멈추더라. 그리고 초인종을 눌렀어. 잠시 후 한 아저씨가 나와서 대문을 열어주었어.  “다녀왔습니다. 아빠.” 여자아이는 그 아저씨에게 끄덕 목례를 하며 인사했어. 그 아저씨는 여자아이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면서 근처에 멀뚱히 서있던 나를 흘깃 봤어. 그리고는 다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으시는 거야.  “니가 죽였나?”  내가 엄청나게 당황했단 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생각해. 나는 순간 눈이 캄캄해지면서 무언가가 내 몸 아래로 쑥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굳어서 어버버 하고 있자, 아저씨가 입을 뗐어.  “그럼 됐다. 끝났다. 끝났어. 이제 느그 엄마는 행복할거다.” 그 말을 마치고 아저씨는 바로 대문을 세게 쾅 닫고 들어갔어. 나는 무슨 소리지 하고 고민하다가 집의 문패를 보고 말았어. 외할아버지 이름이 문패에 적혀 있는거야. 그제서야 나는 눈치를 챘어. 익숙한 골목, 빨간 대문, 87년도....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 댁인데, 명패까지 맞다면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구해낸 그 여자아이는 우리 엄마인거야. 우리엄만 외동이니까.  내가 겪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그 이후로 나는 그 골목을 떠나와서 잘 곳을 찾아다니고, 작은 일을 구해서 소소하게 먹고살며 지내고 있어. 이후론 그 여자아이를 본 적도 없고, 연락해 볼 길이 없었어. 골목을 여러 번 찾아가 보았는데, 명패가 없어진걸 보면 아예 이사를 가버린 듯하더라. 아, 그 남자는 결국 죽었어. 신문에 나와서 알게 되었지. 아, 그래서 눈치는 챘니? 그래, 내 꿈은 여전히 깨지 않고 있어. 23살이었던 나는 꿈 속에서 나이도 들고, 벌써 30대 후반이 되었는데 난 사실 아직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지금이야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이렇게 담담히 적어 내려가지만, 그 당시에는 반 미쳤었어. 무당도 찾아가보고 그랬었는데, 그냥 하는 말은 그거더라. 내 사주가 없다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나. 그 말을 듣고 바로 내쫓겼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 여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 맞더라고. 꿈 바깥세상에서 왔으니까. 좀 더 속 시원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여전히 답답해. 그래도, 이 안에서도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이 일을 겪은 87년도에는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쓸 수도 없었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흐른걸 보니 말이야. 근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면 이게 너희에게도 전해질까? 그러면 나 대신 좀 물어봐줄래? 이 빨간 부적이 무슨 부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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