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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과 동기로 만나 친구로 지내온지 벌써 8년째, 첫인상의 넌 눈웃음이 참 매력적인 아이었어.
중딩때부터 여자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쭉 남자애들과만 어울리던 내게,
끝내주는 사교성으로 먼저 손 내밀어주고 함께 웃어주던 넌 늘 새롭고 즐거웠지.
입학후 2주간 정신도 없을 뿐더러 부끄러워 친구들과 통성명도 못하고 학교를 다니던중, 개강파티덕분에 친해지게 됐어.
부끄러워 여자쪽 테이블은 쳐다도 못보고 앞에 앉은 남자 동기와 얘기만 하며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던 내게 네가 먼저 다가와줬어.
술게임 시작한다던 선배의 말에 남자여자 붙어서 앉게되고, 내 건너편에 앉은 널 위해서 난 취한척 잠깐 나갔다오겠다며 편의점에 달려가 컨디션을 여섯병이나 사왔어.
왜 그랬을까.. 모솔에 연애고자였던 내게 처음 관심 가져준 너에게 뭔가 해주고싶었나봐. ^^;
물론 후에 너랑 썸탄다는 소문이 돌던 세살 위 동기 형이 한번에 두병이나 마셔버리는 바람에 넌 마시지못했지만..
덕분에 학교생활은 참 재밌었어. 지방까지 서울에서 통학하는 너와 경기도에서 통학하는 나, 네가 타는 통학버스가 우리동넬 지나가는 시간에 맞추려 일부러 일찍 집에서 나오기도 하고.
네가 늦는 날엔 나도 일부러 안들어가고 교양수업 건물 앞에서 기다리며 마치 우연히 같이 늦은 날인척도 해보고.
도서관에 갈 때면 졸졸 따라오는 너, 점심시간이면 점심약속있냐고 물어보던 너, 빈 강의실에서 함께 조별과제 발표자료 띄우고 연습하던 너.
지금도 일이 있어 학교에 가보면 곳곳에서 네 웃음소리, 네 눈웃음이 떠오르더라.
참 이상하지. 나한테는 이렇게나 상냥하고 활기찬 친구가. 친구가 없었어 너는. 입학 초엔 누구와도 친하고 남자애들 여자애들 할 것 없이 친했던 네가 점점 친구들이랑 멀어지는게 보였어.
오며가며 친구들한테 네 뒷담화도 많이 들었고. 남자애들은 쟤 사차원이다 좀 이상하다 맹하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한테 흘리고다닌다, 이남자 저남자랑 썸탄다.
용기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던 나는 속으로만 아니라며 널 대변하고 있었다. 참 미안해 그게 뭐라고.
그런데 그런 난 네 덕분에 성격이 바뀌고 초딩이후로 처음으로 여러 여자친구들과 어울려도 보고 매일같이 즐거웠었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친구에게 고백도 받아봤어. 사귀진 않았지만.
난 군대를 다른 친구들보다 한학년 늦게 갔지. 남자가 22명인 우리 학번에서 1학년이 끝나니 15명 군대, 2명은 휴학. 2학년 올라가고 보니 여자 20명 남자 5명.
여전히 우린 1학기 내내 붙어다녔고, 왠지모를 이유로 한바탕 크게 싸웠어. 방학끝나고 2학기는 아마 연락한번없이 그냥 지나갔던것 같다.
왜 싸웠는지도 모를 이유로 시간낭비한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아쉬워. 딱 2학기가 끝나자 마자 거짓말처럼 우린 화해를 했고 겨우내 지겹도록 강남에서 만나 놀기바빴지.
이듬해 넌 3학년이 되고 난 영장을 받아 5월에 입대를 했어. 난 그저 군대가 가기 싫어서 2학년 한학기만 더 다니려 했는데, 다니다보니 이유가 생기더라고, 너라는 이유.
근데 넌 왜인지 3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되기 전에 휴학을 했다. 내 멋대로 날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해도 될까?
군대에 있을 때 연락도 잘 받아주고, 취사병이었던 내게 주말이면 언젠가 알려준 식당 직통전화로 먼저 전화걸어 이것저것 얘기해주던 네가 너무나도 고맙다.
그러던 와중에 너에겐 남자친구가 생겼어. 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만나고 있는 학교 선배.
별 느낌은 없었어. 우린 절친이긴 해도 서로 연애상대로 생각한적은 없었으니까. 잘됐다 생각했지.
시간이 지나 난 전역을 하고 바로 여자친구가 생겼고, 한달만에 복학까지 했어.
복학해보니 이미 작년에 자퇴한 애들, 복학을 미루고 휴학을 연장한 애들 등등 같이 다닐 친구가 없던 참에 마침 일년만 쉬고 복학했던 넌 4학년이었고, 4학년은 원래 시간많다며 늘 점심시간마다 날 기다려줬어.
항상 나보다 먼저와서 기다려줬던게 생각나. 수업을 마치고 내려가보면 봄바람에 흔들리던 개나리를 뒤로하고 분수대앞에서 한손엔 삼각김밥이 든 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론 열심히 손흔들어주던 네 모습이,
그 삼각김밥 두개가 뭐라고 4학년 선배가 사주는거니까 흘리지말고 꼭꼭씹어먹어라 라며 농담하던 네 모습이.
만개한 벚꽃 아래 사슴상 앞 벤치에 앉아 커피한잔에 오손도손 얘기하다 다음 수업시간 늦었다며 허겁지겁 뛰어가던 귀여운 네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남자친구가 있건 없건, 내가 여자친구가 있건 없건 우리 우정엔 크게 영향이 없었지, 그 다음해에 내가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넌 졸업생, 난 4학년 휴학생 신분으로 각자 직장에 들어갔고 그다지 자주 볼 기회는 없었다.
연락은 전보단 뜸해져도 주에 두세번정도는 하고, 네가 남자친구와 싸운날이면 꼭 나한테 연락해 남자는 다 그러냐고 남친이 잘못한거니 내가잘못한거니 묻는 네게 나는 마치 솔로몬이라도 된 듯 이렇게 저렇게 얘기해주는게 참 재밌고, 낙이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며 새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여친의 압박으로 우린 연락이 끊겼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한 결정이었다.
좋아하는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친하게 다른 여자와 지내선 안되겠다며 너에게 보낸 문자가 지금에 와선 너무나 후회되고 미안했다.
' 나 여자친구 생겼어, 미안한데 여자친구가 널 많이 불편해 해. 우리 서로 연인에게 잘 하자. 미안해 잘 지내. '
여자친구 앞에서 이렇게 보냈고, 내가 뭘 한거지..싶은 멍한 10분이 흐른뒤 너에게 ' 알겠어. ' 라는 문자가 오자 네 번호를 차단하고 번호를 지운 뒤 카톡에서도 차단했다.
나름대로 순정파였던 나는 여자친구와 사귀는 내내 널 차단목록에서 풀어볼 용기도 내어볼 수 없었고, 우린 그렇게 연락없이 일년을 넘겨버렸다.
어느날이었다, 여자친구와 크게 다툼한날. 어디 하소연할데 없나 하고 카톡 친구목록을 들여보고있었다. 당연하게도 여자친구의 압력으로 단한명의 여자인 친구도 없었다.
그리고 난, 마치 어릴때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할때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차단친구 목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 널 차단할땐 네 이름으로 설정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날 봤을때 네 이름은 달님 이모티콘이었다.
직감적으로 난 그게 너라는걸 알았다. 차단친구목록에 친구가 30명은 족히 되지만, 알 수 있었다. 그 작은 프로필사진 썸네일에, 네 사진도 아닌 네가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해놨던 너였지만, 너라는 확신이 들었다.
호기롭게 차단을 풀고 연락을 해볼까 채팅방을 켰지만, 도무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날 개 병신같이 생각할까..민망하고 미안했다. 도저히 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세달쯤 시간이 흘렀을 무렵 너에게 메세지가 왔다.
' 뭐해, 잘 지내? '
가슴이 뛰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헤어지고 그리워하던 전 여자친구에게 새벽 두시에 자니? 라고 연락왔을때의 느낌. 아니 전혀 그런느낌이 아니다. 차원이 다르다.
솔직하게 말해서 공포였다. 날 잊고 살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 약 400일만에, 그것도 네가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해 올줄이야.
너무 놀라서 습관처럼 하던 '헐 뭐지'라는 혼잣말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감정엔 기쁨은 없었다. 마냥 네가 무섭기만했다.
뭐라고 빌어야될까, 뭐라고 내가 말을 할 수가 있을까....뭐라고..
너무 미안하고 미안해서 선뜻 대화방을 들어갈 수가 없었고 들어가서도 한참이나 답장을 고민했다.
아무렇지않은척 난 이게 얼마만이냐며, 그땐 미안했다며 ㅋㅋㅋ를 남발해서야 겨우 답장을 할 수있었다.
넌 만나면 죽을 줄 알라며 가볍게 한소리 듣고,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전처럼 얘기를 풀어나갔다.
며칠내로 오랜만에 한번 만나기로 약속도 하고. 만나서는 둘다 뭐가그리 신이나는지 주량껏 술 한잔 하며 털어놓고 얘기도 했다.
타이밍도 참 좋았다. 넌 마침 전날 헤어졌고, 난 여자친구랑 위태위태한 상태고.
넌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연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있는 비상구같았다.
결국 넌 3주뒤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붙잡아 다시 만나게 됐지만, 그 주에 난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단언컨대 너때문에 헤어진 것은 아니다. 정말 1도 아니다. 그저 그 친구의 행동들이 날 너무 실망시켰기때문이다.
농담이지만 ' 너 나보고 같이 솔로하자더니 왜 나 솔로되니까 넌 커플로 돌아가냐 빨리 안돌아오냐 새로운 솔로는 언제나 환영이야 ' 라며 툭 던진 한마디.
넌 정말 놀라며 미안하다고 그거때문에 헤어진거냐며 다시 붙잡으라 했지만 그럴리가 있겠냐. 그 친구를 붙잡을 생각도 뭣도 없다.
난 차라리 네가 남친과 다시 잘 된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역시나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왜 내가 여기, 연게에 글을 쓰고 있냐면. 확신이 생겼다.
넌 남자친구와 화해를 하고서도, 그날부터 또 말다툼이 시작됐다. 자연스레 나에게 연애상담이며 남자의 심리를 물어보는 일이 잦아지고
순siri마냥 이렇게해, 저렇게해, 튕겨라 잡아라 조종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당연하게도 시간이 많아진 나는 틈틈이 널 고민했다.
이 친구 연애를 어떻게 코치해줘야되나. 아니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넌 도대체 나한테 뭘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미 난 7년 전 부터 널 좋아했었다. 동기들이 무슨사이냐고 물어볼때도 어허이 하면서 대강 넘기며 속으론 쾌재를 부르던 기억이,
한번도 누구에게 그런적 없던 내가 너와 대화중에 넘나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네 머리를 가볍게 헝클고 쓰다듬다가 깜짝 놀랐던 내 행동이 그렇다.
왜, 로코드라마 보다보면 주인공끼리 문자로 대화할때 꼭 그러지않나. 이모티콘도 ㅋㅋ 같은것도 하나 없이 덤덤하게 문자만 보내기.
난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메세지 보낸 상대 기분이 어떤지 표가 안나니 왠지 그 사람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봐야 될것 같고, 머릿속으로 그 사람 목소리로 문자를 한번 읽어보게되는것 같아서,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어 요즘. 마치 우리가 한참 빠져있던 연애의 발견, 또 오해영의 에릭이라도 된냥^^;
그리고 함께 있을때 내 행동과 말 한마디 모두가 널 고려하고 있단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덕분에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도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지만, 마음만큼은 자기만족인지 뿌듯하더라.
우린 오늘 한달만에 만났다.
처음엔 어쩌면 형식적인 만남, 정기모임? 같은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처음엔 으레 한달에 한번정도는 봤었으니까.
처음 계획은 며칠전 네가 먹고싶다던 곱창에 반주를 하고, 전에 몇번 가봤던 올드하지만 분위기가 퍽 좋은 재즈바에 갈 생각이었다.
식사까진 좋았다. 농담도 주고받고 남친과의 불화설도 상담해주고. 아뿔싸, 재즈바가 오늘 열지 않는 모양이다.ㅋㅋㅋㅋㅋ
아쉬운대로 인디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간단히 칵테일 한 잔 할수있는 가게에 갔다.
전에 가본적이 있는, 보컬 목소리는 음향 세팅이 잘못됐는지 귀가 찢어질듯 크게 들리지만 어두운 조명의 인테리어가 분위기 깡패인 기억으로 남아있던 가게다.
일년이 지나 방문했지만 역시나 변한건 없었다. 고막이 터질것같은 사운드, 어두컴텀한 조명, 테이블 위에 촛불하나. 생각한 그대로였다.
칵테일을 서로 골라 주문하고 담배를 한대 태우고 왔다. 시끄러워 인상쓸법도 하지만 넌 인상쓰지않고 오히려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고있었다.
그 뒷모습에 나도모르게 흐뭇한 아빠미소와 함께 이 아이 착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한잔 들어간 탓인지 조명때문인지, 대화하며 보이는 네 작지만 빛나는 눈이 더 순수해보였고, 웃을때 갈매기가 되는 눈이 더없이 귀여워보였다.
공연에 집중한 네 뒷모습에도 한참이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망년회 겸 12월 중순에 보자는 약속을 하고 대중교통 마감시간에 떠밀려 집에 오게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고민하고 결정했다.
확실한건, 나는 널 좋아한다.
근데, 넌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 3년이나 만난. 아무리 매일 싸운다지만 지금도 냉전상태라지만.
그래서, 나는 널 건드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절대로.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절대로 이간질하고 네 남자친구를 무작정 나쁜사람이라고 표현하진 않으려고해.
네가 너 스스로 행복할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게 어떤 방향이던지.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너 또한 솔로가 된다고 해서 날 만날거라고 생각은 안해. 아니 아마 날 만날 일은 없겠지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몇 안되지만 정말 소중한 친구중 하나일텐데, 그런식으로 잃기는 싫을테니까.
그래, 그래서 나도 널 그저 연예인 좋아하는 팬처럼 뒤에서 응원하려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근데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널 잃는걸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해.
참 근데 친구야.
깜빡이는 잘 키고 들어와라.
멍하게 마주보고있는데 뜬금없이 눈웃음 치지말고
사람 많아서 길 잃어버린다고 난데없이 팔짱끼지말고
이거 진짜 맛있다!! 라며 은근슬쩍 내 앞접시에 먹을거 쌓아주지말고
통화하면서 OO아 나 어떻게해... 하고 불쌍한 말투로 그렇게 내 이름 부르지마.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금새 보고싶어지잖아. 더 많이 알아가고싶어지잖아.
살려줘라 나좀..
출처 | 집 들어와서 널 생각하며 세시간에 걸쳐 이 짧은 글을 써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