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어제 오후, 즉 2월 28일 세시
브레이크 타임은 세시부터 다섯시까지이므로 그 사이엔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식사 후 담배를 한대 피고 화장실로 향했다
몇일전 심한 장염으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갔다온 이후 계속 설솨만 쏟아내는 중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대장의 설솨 친구들을 세상 밖으로 뿜어냄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때
나는 뱉은 한숨을 다시금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바로 화장실의 화장지가 없었던 것
매일 그 자리에 있었는데..
애브리데이 애니웨얼 늘 휴지는 그 자리에 분명 있었는데..
나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머리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바보같이 핸드폰도 들고오지 않다니 왜 하필..
변기물을 내리고 변기통의 물로 닦아야하나? 그러기엔 너무 비위생적이라 치질 발생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 팬티로 닦아야 하나? 아니다 팬티로 닦고 노빤쓰로 일하기엔
바지가 너무 극세사로 하늘하늘 거린다 분명 비치거나 윤곽이 자리잡을거다
누군가에게 "어맛 저 사람 노빤쓰야!! 으악!" 하고 들켜버린 뒤에 "헤헿 남자는 아래가 서늘해야 한다해서.."
하고 이상한 엿같은 별명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 그랬다간 내일 아침식사는 분명 철창안에서 즐기는
설렁탕과 깍두기의 콜라보로 시작하겠지
그렇담 양말로 닦아야하나? 제기랄 양말로 닦기엔 서서 일하는 조건때문에 발에 땀이 흥건하여
닦을 수 없다 항문에서 발냄새가 나는 상황은 두번 세번 생각해도 역겨웠다
왜지 왜 오늘따라 똥휴지통의 휴지의 면적들은 죄다 핫플레이스 인거지
재개발 지역 하나없이 휴지 곳곳이 빽빽하게 갈색 향연으로 물들어있다
그렇다면 이들도 볼 일을 보면서 휴지가 부족할 거란걸 알았단건가..?
다음 사람의 차례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은체?! 사이코패스들이 가득하다..
이 곳은 이기심으로 가득찬 지옥이다
어쩌면 누구 말마따나 이 곳에 평생 갖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리도 저려왔고 식은땀마저 흘러내렸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이런 상황은 군대 혹한기때 땅파고 변누다가 휴지가 없어
눈으로 해결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문득 머리속을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바로 주머니 속의 무전기(일명 워키토키)
우리 가게는 규모가 굉장히 크기때문에 일하는 직원들은 각자 무전기를 차고 일을 한다
출근했을때 분명 내 무전기가 충전이 되어 있지 않아 충전기에 꽂아 놓고 온 기억이 있어서
지금 가지고 온 무전기를 보니 친한 사람의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그마저도 쓸까 말까 고민을 엄청 했던 것 같다
결론은 쓰기로 마음 먹었지만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이 개같은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줄수 있는 그 어떤 수단 방법보다
효율적일 것 같았다
먼저 나는 내가 자주 따로 맞춰놓고 친한 사람들과 얘기하던 채널로 변경을 했다
가게는 2층이고 화장실은 1층 구석이어서 중간 중간 사람들의 무전이 들렸다 끊겼다를 반복했다
과연 닿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들을 수 있을까
버튼을 누르고 "아..저기 누구 계십니까..?" 하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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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무전을 받았던 사람의 상황에 입각하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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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본인은 토익 시험 준비로 브레이크 타임때 여유있게 공부를 했습니다
브레이크 타임때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누워서 잠을 자거나 쉬거나 해서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빈 방을 찾아다니기 일쑤였죠
여기 저기 방을 열어보다가 무전기를 꽂아 놓고 여러가지 비품을 저장해놓는
사무실이 비어있어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왼편에서 "누구..계십..까"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건 뭐지 싶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계속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꽂혀있는 무전기가 한 두대가 아니라 어디서 들리는지 찾기가 정말 난감했습니다
한 사람이 무전을 하면 채널에 맞춰져 있는 사람들 무전에서 동시에 소리가 나오니까요..
게다가 브레이크 타임이라 전부 충전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시선이 간 곳에 소리가 나는 무전기가 있었어요
곧바로 무전을 들고 "누구..세요?" 라고 말하며 이름표를 봤는데
비둘기 라고 적혀있더군요
무전에서 몇번 지직거리더니 "아 저는 ㅇㅇ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둘기라고 합니다"
의아했어요 자신의 무전기로 자신이 무전을 한다..?
"그런데 왜 무전으로 하세요? 어디신대요?" 라고 묻자
비둘기는 "아..저는 지..금 ..층 ..입니다"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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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둘기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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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무전을 받았다!!
그것도 남자다!
나는 그가 누구이건 이 사람에게 비싼 마키야또를 사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열심히 상황을 알렸지만 층의 탓인지 소리가 계속 끊겼다
다 글러먹은건가 하는 순간 일단 우선적으로 무전이 선명히 잡힐 수 있는 스팟(spot)으로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옮기지
팬티를 반쯤 걸치고..? 아직 그 곳이 마르지 않았다
잠깐 다리를 움켜보니 아직 축축하다 제기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그치만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 판단력이 빨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 팬티를 걸친채 빠른 위치 확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심호흡을 한 뒤 마지막 무전으로
"아 ..저기 저 1층 구석 화장실입니다 1.층.구.석.에.있.는. 화장실 입니다 휴지가..없어서 그런데 가져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외친 후 혹시나 듣지 못했을까봐
바지를 걸친 뒤 문을 걸어잠고 사방팔방 워키토키 존을 찾으며
"1층 구석 화장실인데 휴지 좀 부탁해요!" 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제발.. 제발! 닿아라 닿아라 나의 음성이여
"여기 1층 구 ㅅ......" 하는 도중
한기가 느껴져 돌아보니 휴지를 든 무전의 그 사람이 날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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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을 받은 그 분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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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렸어요 1층 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휴지 좀 가져다 달라는 목소리..
휴지를 챙겨가 1층 화장실로 올라가는데
두어걸음 전부터 "1층! 화장실이에요! 구석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문고리를 잡고 휙 돌려서 문을 열었는데
문 손잡이가 덜컹하고 반쯤 빠져서 엄청 당황했어요
그리고 2차적으로 당황한게 들어가보니
팬티를 반쯤 걸치고 무전기를 높게 든 사람이 스쿼트 자세로
1층! 1층! 하고 있더라구요..
비둘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