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둘째치고, 1939년 11월 30일은 핀란드와 구소련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한 날입니다.
당시의 소련은 아시다시피 동유럽의 거대한 제국이었고, 핀란드는 구 제정 러시아에서 갓 독립한 신생국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의 인구는 사백만에 지나지 않았고, 소련은 육군 하나만으로도 수백만을 동원할수있어 핀란드 군대를 손쉽게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월 26일, 마이닐라 발포사건으로 인해 양국의 긴장상태가 끊어졌고 30일에 소련군은 핀란드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전쟁은 소련의 압승으로 끝날것으로 보였고, 심지어 소련수뇌부에서 옆나라 스웨덴 국경을 넘지말라는 명령까지 내렸을 정도였죠.
어지간한 장성들이 쓸려나갔고, 중대 대대급을 지휘하던 하급장교들이 사단급을 지휘해야할 판에 놓인것입니다.
당연히 지휘에 공백이 생겼고 그 명령의 수준도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군에는 구 제정러시아에서 활약한 명장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만네르하임"장군이 대표적이죠. 일부에서는 명장이 아닌, 머릿수만 많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싸운 장군이라고 혹평하긴 합니다만 이건 넘어가고요.
핀란드군은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소련군을 맞았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보병의 숫자는 당연하고, 장비 숫자도 엄청난 차이를 보였습니다.
핀란드군의 전차는 30대가 전부였고, 소련군은 6541대(..)였죠.
항공기도 핀란드군은 110여대, 소련군은 3880여대였습니다.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양국간엔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죠.
하지만 대숙청을 겪은 소련군은 제대로 된 지휘체계가 잡히지 않아, 병력 운용의 질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또, 전쟁의 이름이 겨울전쟁인 만큼 핀란드의 겨울은 아주 혹독했습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운답시고, 우크라이나의 청년들을 이 얼음구덩이에 투입해서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죠.
숙청의 달인만이 할수있는 발상..
그리고 핀란드군의 전쟁 영웅이 탄생합니다.
공식적인 기록 542명…………을 사살한 위대한 저격수, 시모 하이하입니다. 아무래도 미친것같아요.
혼자서 중대, 대대급을 쏴죽인 먼치킨.
이렇게 4개월간 이어진 전쟁에서 핀란드군은 6만여명의 사상자가 났고,
소련군은 전사자만 12만명에 부상병이 3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합니다.
그리고 3월, 겨울은 끝났고 핀란드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은 평화 조약으로 막을 내립니다.
내용이 용두사미가 되긴 했습니다만 11월 30일. 오늘은 제 생일이고 핀란드와 소련 사이에서 겨울전쟁이 발발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