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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가능했던 월드컵과 불가능했던 대한민국
게시물ID : wc2014_127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체이탈가카
추천 : 1
조회수 : 7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11 22:52:30
http://sports.media.daum.net/sports/wc/brasil/news/column/newsview?newsId=20140711133543732&gid=114764

브라질 월드컵이 이제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다. 20번째 월드컵의 주인공을 가리는 결승전(14일/이하 한국시간)과 유종의 미를 위한 3-4전(13일)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결승 매치업은 '전차 군단' 독일과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이고, 3-4위전은 개최국 브라질과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격돌로 펼쳐진다.

돌아보니 풍성한 대회였다. 시작되기 전에는 미진한 대회 준비와 불안한 치안 등으로 안팎의 걱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심했으나 월드컵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회로 손꼽힐만한 기억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인 경기 내용이 좋았던 까닭이다. 볼거리도 많았다. 빛만 좋은 개살구가 아닌 알이 꽉 찬 열매가 수두룩하게 떨어졌다.

브라질 월드컵을 관통한 화두는 '불가능은 없다'였다. 안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예상을 깨고 현실이 되자 보는 이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뻔하지 않아 흥미진진했고 진심으로 도전하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짐작으로 '그럴 리 없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브라질 월드컵을 되돌려 보길 권한다.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함께 묶여 있고 잉글랜드-이탈리아-우루과이가 한 배를 탔다면 그 그룹은 소위 말하는 죽음의 조 조건을 충족시킨다. 사이에 낀 팀들은 갖은 욕을 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상황이다. 브라질 월드컵 B조와 D조가 그랬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 올랐던 이들이고 잉글랜드-이탈리아-우루과이는 모두 월드컵 우승 경험을 지닌 전통의 강호다. 답답한 벽의 느낌이다. 하지만 B조의 칠레, D조의 코스타리카는 예상을 비웃으며 훌쩍 뛰어 넘었다.

코스타리카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를 모두 탈락시키고 D조 1위로 조별예선을 통과했다. 당당히 8강까지 진출했다. 8강에서도 네덜란드와 충분히 잘 싸웠으나 아쉽게 승부차기로 석패, 4강 고지는 실패했다. 그러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칠레 역시 마찬가지다. 스페인을 쓰러뜨리고 16강에 오른 칠레는, 하필 브라질을 만나 역시 승부차기 끝에 중도하차했다. 하지만 칠레가 보여준 투지는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2002년 한국을 보는 듯했다.

칠레가 부상하면서 가라앉은 팀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1승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1차전에서 네덜란드에 1-5로 참패했고 2차전에서도 칠레에 0-2로 졌다. 초라한 퇴장이었다. 유로 2008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까지 모두 정상에 오르면서 '무적함대 전성시대'를 누볐던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가 역사 뒤로 사라졌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결국 영원한 것은 없음을 역사가 또 입증했다.

스페인 시대를 종식시킨 것은 흥미롭게도 구시대의 유물로만 여겨졌던 '스리백'이다. 네덜란드와 칠레가 들고 나온 스리백 카드는 '재발견'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브라질 월드컵의 큰 흐름 중 하나였다. 2000년대 초반 이후 포백이 수비 전술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거의 종적을 감췄던 스리백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퇴보된 전술로 월드컵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류였는데, 오판이었다. 네덜란드,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팀들과 함께 스리백에 대한 재조명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는 사건은 또 있었다. 더 이상 선수 한 명이 경기를 좌우하는 '원맨쇼는 불가능하다'는 게 현대 축구의 진리인데 그 명제를 부정하는 일이 나왔다. 이번 대회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1960~1970년대 펠레의 브라질이나 1980년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같은 느낌이었다. 알고도 당했고 다 막았다고 생각하면 뚫렸다. '메시 원맨팀' 느낌을 부인하기 힘든 아르헨티나인데 결국 대회 결승까지 올랐다. 호불호를 떠나,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록될 메시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천재' 메시가 드디어 월드컵 한을 풀었다면 미로슬로프 클로제는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 월드컵에서만 16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5골을 터뜨렸던 클로제는 2006년 독일에서 5골 그리고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또 4골을 추가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또 다시 2골을 추가하면서 호나우도의 15골을 넘어섰다. 19살 때까지 목수 일을 겸했던 평범한 독일 7부리거 출신이 '황제'를 추월한 엄청난 사건이다.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게으른 천재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위대한 인간' 클로제가 입증했다.

기회를 잡아 인생을 역전시킨 드라마틱한 인물도 나왔다.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가 주인공이다. 대회전부터 주목할 신예였으니 전혀 의외는 아니지만 이번 대회가 배출한 최고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다. 인간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라다멜 팔카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콜롬비아의 대회 전망은 어두웠다. 그런데 로드리게스가 대신 기회를 잡았다.

8강까지 5경기에서 모두 골을 터뜨리면서 6골로 대회 득점왕을 노리고 있다. 아직 독일의 뮐러(5골)와 아르헨티나의 메시(4골) 등 추격자들이 있어 장담키는 힘들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골든부트를 받게 된다면 1986년 월드컵 게리 리네커 이후 '8강 득점왕'이 다시 탄생하게 된다. 우승권 팀이 아니더라도, 23살 젊은 공격수도 집중하면 월드컵 득점왕을 노릴 수 있다.

로드리게스가 깜짝 스타라면 깜짝 포지션은 골키퍼다. 그야말로 골키퍼들의 전성시대였다.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 칠레의 클라우디오 브라보,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 코스타리카의 케일로 나바스, 미국의 팀 하워드, 나이지리아의 빈센트 엔예아마, 콜롬비아의 다비드 오스피나, 프랑스의 휴고 요리스, 아르헨티나의 세르히오 로메로 등 골키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02년의 올리버 칸(독일)이나 2006년 잔루이지 부폰(이탈리아) 그리고 2010년의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처럼 특별한 수문장이 등장한 경우는 있으나 포지션 전체가 각광받은 적은 없었다. 스포트라이트와는 늘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던 골키퍼인데, 이런 날도 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건의 백미는 브라질의 역사적 참패다. 개최국 브라질이 4강에서 독일을 만나 1-7이라는 믿기지 않는 스코어로 무너졌다. 전반 30분 만에 5골을 내줬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브라질 축구는 상대에게 공포감을 주었다. 그런데 2014년 7월9일은 브라질 축구가 공포를 느꼈다. 우승을 노리던 스콜리라의 브라질 대표팀과 브라질 국민들은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세상은 브라질이 처참하게 쓰러지는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 브라질은 그럴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브라질 월드컵이 깨뜨렸다.

이처럼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모조리 눈앞의 현실이 되면서 보는 맛을 높였던 브라질 월드컵이다. 모든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이 무대에서 대한민국 축구만은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나섰으나 전보다도 못했다. 많은 팀들이 역대 최고의 월드컵을 경험했는데 우리는 역대 최악의 대회를 마쳤다.

머리로만 준비했던 영향이 크다. 과거에 잘했으니 또 잘될 줄 알았다. 2009년(U-20월드컵 8강)에도 2010년(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에도 그리고 2012년(런던 올림픽 동메달)에도 잘했으니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자신감에 호되게 당했다.

기술은 부족해도, 그래도 정신력은 우리가 최고일 줄 알았다. 그런데 멘탈도 형편없었다. 자유분방한 남미 국가 선수들이 간절히 국가를 부르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몸을 던져 절실함을 표출하는 무대가 월드컵이다. 허울 좋은 '투혼'을 입으로만 말했던 한국 선수들은 오랜 미덕인 근성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온 국민이 침통함에 빠져 있을 때 그 슬픔을 안기고도 자신들은 웃고 떠들었다니 결과는 자명했다.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난 뒤 역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꽤 괜찮았던 대회로 기억할 것이다. 불가능은 없음을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인 축구를 통해 새삼 다시 느꼈다.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 멋진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는 불가능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부디, 되돌아보는 작업만은 남들보다 곱절로 애를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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