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눈물은 왜 가식적이고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가?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찾아보면 그동안 언론 조명을 굉장히 많이 받은 정치가였음에도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음에 놀라고 그 눈물 흘리는 장면들이 하나같이 대본읽다 회상에 잠기며 흘리는 배우의 눈물과 유사함에 두번 놀란다. 따라서 최순실 파문에 의한 사과 기자회견장에서 억지로 흘리려했으나 실패한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눈물은 결국 슬픔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 슬픔이란 자신과 가족, 그리고 타인, 공동체가 대상인데 박근혜의 눈물과 두 전직 대통령의 눈물의 차이는 그 다소에서도 차이 나지만 결정적 차이는 박근혜의 슬픔이 본인을 대상으로 삼는데 비해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은 타인으로부터 슬픔이 연유됐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사이코패쓰를 타인에 대한 공감력 결여자에 대해 지칭하는데-연쇄 살인마들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기에 이 범주에 들어가지만 살인마가 아닌 사이코패쓰도 많다고 봄- 나는 오래전부터 박근혜를 사이코패쓰로 생각해왔다. 눈물 흘리는걸 잘 본적도 없거니와 남의 아픔에 대해 진정 슬퍼하는 장면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부모의 죽음, 특히 모친의 죽음과 어려서 영부인 자리를 대신하며 일렉트라컴플렉스가 뒤엉키고 아버지는 낮엔 집무, 밤엔 주색 여색에 빠져 소통이 단절, 그마저도 10.26으로 부친마저 잃으며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 능력마저 상실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심신미약 상태에 국가에 대한 강박의식 주입, 확고부동한 아버지 우상화, 모성 상실, 타인과의 소통 단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최태민 일가...
300명이 넘는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태연자약하게 본인을 위한, 최순실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괴물'은 그렇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들만의 감정을 위해서 그 아스라진 목숨들에겐 단 한방울의 눈물조차 아까워하며.
초라한 초가집과 우람한 아파트 숲, 연탄불과 보일러, 6,70년대를 관통한 경제적 성장과 함께 가난에서 벗어난 기성세대의 박정희우상화, 물질적 풍요를 모든 공을 독차지하게된 독재자에 대한 부채의식, 거기에서 연유한 그 딸에 대한 연민, 조건 없는 맹목적 지지....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이 비극의 원천은 거슬러 거슬러올라가면 결국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군중의 이성과 빗나간 우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