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위를 지속적으로 참여했왔던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박근혜까지 평화시위를 얼마나 개똥으로 여기는 지를요.
그렇지만 오늘 광화문에 모인 100만 인파 중에서는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분들에게는 오늘의 이 시위는 평화적이고 성공적인 시위였을 겁니다.
저도 처음 참석했던 시위가 생각납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기억이 안나지만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였습니다.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시청 앞 광장으로 갔었죠. 그리고 그날 집회는 낮 집회였고, 본 무대에서 진행을 하다가 집회 시간이 끝나서 해산했습니다.
허무하더라구요. 기차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바뀌는 건 보이질 않고.. 허무감과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아.. 이런 평화시위는 말이 통하는 정부에만 소용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요. 그동안 집회를 계속 해오셨던 분들은 아마 더 느끼실 겁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평화시위에 계속 참여를 했었고,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셨을 때 몇백미터 옆에서 직접그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속에는 "이 ㅅㄲ들은 말로 해서는 듣지 않는 놈들이다"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폭력 시위 프레임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평화시위가 쓸모 없다는 주장이 한편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집회를 여러번 참여하고 나서야(많지는 않지만), 또 상대방의 불통과 아집과 독선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나서야 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지금 논란의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똑같이 집회를 하면서도 서로 "생각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만약 지금까지 집회에 많이 참여하면서 박근혜정부의 불통과 아집을 더 경험한 분들은 폭력시위 프레임이라던지, 평화시위에 대한 의문 등 인식의 전환이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많은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생각의 끓는 점" 이 있다면, 오늘의 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의 온도"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전 앞으로 박근혜가 현재의 태도와 같이 불통을 고집한다면 머지 않아 곧 모두의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끓는점'이 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이 100도가 넘지 않았는데도 "왜 끓지 않느냐"고 푸념하거나 억지로 끓어 넘지게 하려고 한다고 해서 끓지는 않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정서가 "박근혜는 더이상 말로 해서는 듣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의하게 될 때, 평화시위에 대한 프레임이 깨질 것이고 그 결과는 두려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앞으로의 시위 방향이 박근혜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박근혜가 지금과 같은 불통으로 일관한다면 시위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으로 변질 될 것입니다. 만약 그 전에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시민들은 거기에서 멈출 것입니다. 앞으로의 결과와 책임 모두 박근혜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시위를 하는 사람도, 막는 사람도 시민입니다. 잘못은 박근혜가 하고 있는대도 말이죠.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게 기도밖에 없을 것 같네요. 오늘의 시위로 박근혜의 심경의 변화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두려움이라던지 깨들음이라던지 무엇이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