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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를 단순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취급하는 한 ‘일베 프레임’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다양한 형태로 ㅡ그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것에서부터 일베는 원래 저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어린 용인에 이르기까지ㅡ 부지불식간에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베는 생각하지 마’라는 암묵적인 금기를 깨고 일베의 사상을 내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노선이다. … 그들을 비인격화하거나 벌레 취급한다고 해서 일베와 같은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9~10쪽
이들에게 단순한 법적인 책임을 넘어선 윤리적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들의 행동이 (비록 무의식적이지만) 어떤 적극적인 사상에 입각해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 그러한 행동은 일부의 돌발적이고 우연한 일탈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행동이 ‘반복’되는 현상은 그러한 사회적 논란과 처벌을 감수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사상적 의지’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일베 유저들에게 윤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즉 자율적인 사상에 입각한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 – 17~18쪽
일베 유저들이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이른바 ‘팩트’다 검색을 통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팩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정치적 주장과 이념도 의심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일베는 과거 인터넷에서 진보적인 ‘논객’의 말빨이 가졌던 권위와 도덕적인 힘을 이제는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일베는 인터넷 담론을 굴절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된다. – 39~40쪽
단순히 한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의식적으로 일상적인 도덕적 관념과 미적 감각에 위배되는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을 ‘병맛’ 코드라고 말할 수 있다. … 특히 병맛 문화는 게시판 내부에서 익명의 이용자들 상호 간의 예의와 존중을 중요시했던 ‘PC통신 시절’의 미덕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린다. 상대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 상대가 어이가 없고 웃기다고 말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더 좋은 인정 방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병맛 문화가 확산된 커뮤니티일수록 게시판에서 서로에 대한 ‘반말’이 일상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 47~48쪽
그렇게 공격받고 상처 입은 만큼 다시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것이 인터넷 세계에 존재하는 일종의 ‘윤리’이다. 그렇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증여와 답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인터넷은 묘한 생태적인 균형을 맞춰간다. 물론 이러한 인터넷에서 관철되는 보복의 논리(나를 조롱한 만큼 되갚아준다)를 근대적인 사고방식이나 윤리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 일베의 새로운 점,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점은 그들이 인터넷에 관철되는 논리를 인터넷을 넘어 현실에도 끌고 온다는 점이다. – 62~64쪽
짤방의 증여와 답례는 (이상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인터넷을 ‘평등주의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흔히 인터넷은 모두가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공론장이기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주의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모두가 참여하고 글을 올릴 수 있다고 해서 그 공간이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누군가(논객)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발언권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 속에서 상호 간에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실질적인 행위가 확보되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그러한 가치 있는 무언가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짤방들이다. – 66쪽
부정적인 형태든 긍정적인 형태든 인터넷의 평등성은 유저들 간의 상호적인 짤방과 콘텐츠의 교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기서 짤방은 호의를 띨 수도 악의를 띨 수도 있는 양의적인 존재다. … 그렇기 때문에 악의적인 콘텐츠를 중심으로 호수적인 증여와 답례, 즉 공격과 보복을 지속적으로 주고받는다고 해서 인터넷에 무언가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원래 인터넷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러한 양의성이 없다면 인터넷이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참여를 끌어들이는 세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84~85쪽
“월드컵과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에 보여준 것은 이전과는 다른 감성을 지닌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다는 것이었다. 10대, 20대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기성세대와 같이 민족주의/국가주의적 감성을 지니긴 했지만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식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대변자들을 비난했으며 대변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스스로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젊은이들은 그 두 사건들을 통해 누군가가 간섭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거리에 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외치고, 원하는 대로 즐기고 놀 수 있는 자유로운 ‘욕망의 주체’로 자기 자신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 99~100쪽
일베는 이렇듯 합의 지반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적대(antagonism)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라는 점에서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온갖 욕과 비난을 할 수 있었던 예전의 다음 아고라와 같은 장소가 네티즌에게 주었던 묘한 정치적 ‘해방감’을 주는 곳이다. – 116~117쪽
이렇듯 일베에서는 여성의 여성성, 전라도의 지역성 등이 명확히 인지되고 담론의 대상으로 가시화된다. 여기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일베에서는 역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문화적 권리’로 여겨진다. 여성과 지역 등의 정체성에 관한 ‘인지(recognition)’가 점차 중요한 문화적 권리로 여겨지고 있는 다원주의적인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 ‘혐오’역시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121쪽
일베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치적 동질성과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인 갈등과 적대들이 특유의 '혐오 문화'라는 전치되고 응축된 형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그점을 직시하지 않고서 일베의 혐오 문화에 대해 관용과 예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요점에서 어긋난다. 일베 자신이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젊은이도 애국보수가 될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을 표명하며 정체성에 대한 관용과 예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관용적인 자유주의 정치의 공간에 스스로를 위치짓는다. 만일 우리가 일베에 관용과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가 일베를 관용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일베를 관용하더라도 일베의 공격성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베가 보수든 진보든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 123쪽
오늘날 인터넷 문화는 언어의 수사적이고 상징적인 측면, 내면적인 진실성보다는 언어의 논리적인 정합성과 외면적인 사실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 확실히 오늘날 네티즌들은 모두가 마치 아마추어 ‘논리실증주의자’처럼 행동하곤 하는데 이는 일베의 등장 이후 더 두드러지게 된 현상이다. – 137~138쪽
일베 유저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대중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명확한 이상과 이념을 내세우며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베 유저들은 ‘몰이상’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몰이상성 역시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념적이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야말로 어떤 이상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의 심리적인 경향마저 부정하고 조소하는 것이야말로 ‘이념적’이다. – 144쪽
인터넷은 극도로 개방된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불투명한 타인들에게 둘러싸인 밀실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이러한 각자의 밀실 안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표현의 가능성을 떠안으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전전긍긍한다. 즉 인터넷을 하는 모두가 ‘밀실 안의 주권자’이다. 이러한 인터넷의 (개방성과 밀실성이 겹쳐진) 공간성이 ‘관심을 받고 싶다’거나 ‘한 번쯤 위악을 부려보고 싶다’는 ‘내면’을 각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 151쪽
낭만주의 미학은 … 스스로의 이상적 존재방식과 감성적인 존재방식에서 생겨나는 ‘몰이상적인 어긋남과 간극’을 사전에 깊이 반성하고 고려하면서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간극을 계속 반복하고 전시하는 인간의 고도로 내면적이고 자의식적인 상태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인터넷 유저가 부지불식간에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감성적/심리적 기질로서 관심병을 표출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 그러한 관심병의 감수성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고 공공연하게 전시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미학적인 존재방식(관심병 문화)이 된다. – 155쪽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적대와 갈등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정치적 상상으로부터 자립하기는커녕 오히려 각자가 상상하는 ‘이상적 국가’를 중심으로 굴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상에 입각하여 누군가는 인터넷에서의 적대를 ‘수꼴 대 민주시민’ 간의 대립으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종북좌파 대 애국보수’로 표상할 것이다. 여기서도 촛불시민들과 일베 유저들은 저마다 다른 국가에 대한 정치적 이상에 기반을 둔 채 적대를 표상한다. – 209쪽
일베 유저들의 애국보수적인 정체성은 주류 사회에 의해 수용되기 힘든 반골기질과 삐딱함을 공공연히 전시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리고 그러한 삐딱함은, 앞서 보았듯이 자신이 원하는 국가의 이상을 굳이 현실의 국가에 의해 인정받을 필요가 없으며, 그러한 이상은 자신이 즐기고 노는 방식에 의해 저절로 실현된다는 일베 유저들의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일례로 일베 유저들은 국가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안보와 외교 외에는 딱히 없다. 현실의 국가에 그 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사회에서 실현될 수 없는 집단적인 평등과 형제애적인 관계를 국가가 실현해주리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 224쪽
현실의 장소에서 남성으로서든 여성으로서든 자신의 권리 주장을 제기할 수 없는 개인들이 모이는 인터넷은 결국 ‘타인 지향적인 세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어떻게 표상될지 전전긍긍하면서도, 어떻게 자신의 권리 주장을 현실에서 제도화하고 물질화할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모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의 자그마한 도발에도 격분하고, 타인의 정체성을 조롱하고 공격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269쪽
출처 | http://blog.naver.com/mlnookang/220837545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