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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살펴보는 옷치긴 왕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3)
게시물ID : history_127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6
조회수 : 76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1/29 12: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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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 사후 임시로 몽골 제국을 섭정 하고 있던 톨루이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차기 칸을 선발하기 위해 열려야 할 쿠릴타이를 하루 이틀 미루고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버틸수는 없었습니다, 1227년 2월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주치로 인하여 세력이 크게 위축된데다 우구데이와 차카타이의 압력을 버텨낼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때문에 야율초재의 간언에 따라 1229년 케룰렌 강에서 쿠릴타이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우구데이가 몽골 제국의 2대 칸에 오르게 되는데, 황금씨족의 지원을 받지 못한 톨루이는 주치 가문과 함께 우구데이의 옹립에 불만이 상당했던것 같습니다. 이런 불만은 이후 주치 가문의 바투가 톨루이 가문의 뭉케 칸의 계승 정당성을 피력할때 잘 나타나지요.

"칭기스 칸 가문의 일족 가운데 확고한 생각과 올바른 견해로 나라와 군대를 장악할수 있는 사람인 뭉케 칸, 칭기스 칸의 막내 아들이자 그의 대목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의 좋은 숙부 툴루이 칸의 아들, 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왕자가 있는가? 야사의 법령과 초원의 법칙에 따르자면 부친의 자리는 막내 아들의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을 살펴볼때 군주의 자리는 뭉케의 자리이다."

여기서 바투는 야사와 초원의 관습을 주지시키면서, 막내아들이 아님에도 대칸의 자리를 얻은 우구데이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징기스칸의 막내 아들에서 출발한 툴루이 가문이야 말로 자리에 걸맞는 자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출발부터 불안했던 몽골 제국의 칸위 계승 문제는 우구데이의 즉위와 반 우구데이 세력의 거두 툴루이의 잇단 사망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억눌러 놓았던 이 문제는 우구데이 칸의 사후 재차 주치 가의 바투, 툴루이 가의 뭉케, 우구데이 가의 구육, 차카타이 가의 예수 뭉케 등 2차 칸위 계승 전으로 번지며 몽골 제국의 국정은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혼란은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칸위 계승 분쟁을 통해 입지와 권력을 키워나갈수 있었던 동방의 왕가들에게는 말이지요. 

우구데이 칸의 즉위식에서 수행한 동방 왕가 특히나 옷치긴 왕가의 역할은 군대와 대 올루스를 장악하고 있던 톨루이를 경계하던 우구데이의 입장을 충분히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의 사료들을 통해 재현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 몽골비사 269장

차카타이, 바투를 비릇한 우익의 아들들, 옷치긴 노얀, 예쿠, 이숭게를 비릇한 좌익의 아들들, 톨루이를 비릇한 본영의 아들들, 딸들, 부마들, 만호, 천호들이 무리가 되어 케룰렌의 쿠데우 아랄에서 모두 모여 칭기스 칸이 지명한 그 분부대로 우구데이 칸을 추대했다.

2. 집사

차카타이는 우구데이 칸의 오른팔을 잡고, 톨루이는 그의 왼팔을, 숙부 옷치긴은 그의 혁대를 잡고 칸의 자리에 앉혔다. 툴루이 칸은 술잔을 받쳐들었다. 천막 안과 밖에 있던 모든 참석자들은 아홉 번 무릅을 끓고 "그의 칸위로 말미암아 왕국에 축복있으라!!" 고 말하고 그에게 칸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3. 세계 정복자의 역사(세계정복자사)

차카타이는 그의 오른손을 옷치긴은 그의 왼손을 잡고 오랜 회의의 결정과 어린 사람의 행운에 대한 지지로서 그를 칸의 자리에 추대했다. 올루그 노얀은 잔을 들고 궁전 안과 밖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세번 무릅을 끓고 "그의 칸위로 말미암아 제국에 번영 있으라"고 기도하며 외쳤다.


몽골비사와 집사, 세계 정복자사 간에 쥐의 해인 1228년이냐 이슬람력 262년이자 소의 해인 1229년 인가의 연도 차이가 있기는 한데, 원사에서도 1228년은 톨루이가 몽골 제국을 섭정하던 기간으로 기록하고 있어 집사와 세계정복자사의 1229년이 좀 더 신뢰성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쿠릴타이의 의식에 참가하는 것은 대칸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묵계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칸의 제위에 불만을 품거나 반대하는 제왕이나 장수들은 불참함으로서 의사표시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위의 우구데이 칸의 즉위 기사는 서방 왕가와 동방 왕가들이 새로운 대칸의 즉위를 인정하고 그의 지배에 복종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차카타이는 서방왕가를 옷치긴은 동방왕가를 톨루이는 중앙 올루스를 대표해 우구데이 칸의 즉위를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우구데이 칸의 즉위식에서는 좌익과 우익 그리고 톨루이 등 모든 제왕들과 그 들의 자녀들이 참가함으로서 표면상으로는 일단 모든 황금씨족이 우구데이 칸의 즉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식은 우구데이 칸에게 대 올루스와 제국의 군대를 총괄하는 톨루이를 경계해야 할 과제를 안겨주었고 톨루이의 불만을 억누르면서 거행된터라 표면상 칭기스칸의 유지를 받는다는 명분위에 서있는 불안한 의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우구데이 칸은 非톨루이 세력인 동방왕가의 참여를 통해 칸 즉위의 정당성을 공고히 할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옷치긴은 이 의식에서 주치 가나 톨루이 가의 미온적 태도와 다르게 차카타이와 함께 우구데이를 칸의 자리에 즉위시키면서 황금씨족 최고 연장자의 지지를 안겨주어 우구데이의 불안을 일단락 시켜주기 까지 했지요.

3번 세계정복자사에서 옷치긴은 우구데이의 왼손을 잡고 있으므로 좌익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우구데이 칸의 즉위에 대하여 찬성과 지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2번 집사에서도 옷치긴은 우구데이의 허리띠를 잡음으로서 황금씨족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우구데이는 이렇게 칸의 자리에 오른뒤 비록 위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칭기스칸의 막내 아들로서 톨루이가 차지하고 있던 올루스와 군대를 받아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칭기스 칸 사후 계승한 중앙 올루스 중 수니트 부部 1,000호와 술니스 부部 2,000호를 빼앗아 아들인 쿠텐에게 분봉했습니다, 이는 우구데이 칸권을 과시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강대한 톨루이 가의 부민을 빼앗아 그 세력을 꺽어놓고자 하는 것이었지요, 게다가 우구데이 칸은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라 톨루이 사후 그의 처 소르칵타니 베키를 자신의 장남 구육에게 재가再嫁 시키려고 까지 했지요, 

또한 제국 운영에 관한 일은 대부분 차카타이와 상의해 진행하는 일이 많았고, 차카타이 가문에게 몽골 제국 서반부의 운영을 맡김으로서 차카타이 올루스는 우구데이 칸과 구육 칸의 치세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수 있었습니다, 차카타이 가문이 구육 칸의 즉위뿐만 아니라 뭉케 칸의 즉위에서도 일관되게 우구데이 가문을 지지했던 배경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266.jpg

한편 몽골 제국의 제왕들이 1237년 바투의 지휘하에 중앙 아시아, 러시아, 동유럽에 대한 원정을 떠난 상태에서 1241년 우구데이 칸이 사망했습니다, 가족이나 부락의 수장이 사망했을때 그의 처가 그러니까 미망인이 그 권력을 계승한다는 몽골의 옛 풍습에 따라 예케 카툰 무게 Moge 木客 가 그 자리를 대행했지만 그녀마저 얼마뒤 세상을 떠나면서 칸의 자리는 공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우구데이 칸의 살아있는 유일한 형제이자, 우구데이 가문의 최대의 조력자이던 차카타이는 장자 구육의 생모 투레게네 카툰에게 몽골 제국의 섭정을 맡김으로서 몽골제국내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베이니가 차카타이의 궁정에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가깝고 먼곳에서 사람들이 왔다"라고 저술할 정도로 황금기를 누리며 몽골제국 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차카타이 마저 1242년 세상을 떠나면서 칸의 자리는 명실상부하게 비어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몽골 황금씨족 최고령의 웃어른인 옷치긴은 돌연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 칸의 오르두 즉 칸의 천막를 에워싸는 군사행동을 벌입니다, 옷치긴은 대다수 제왕들이 서방 원정을 떠나 있었으므로, 우구데이 칸의 사후 이 들의 귀환이 늦어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칸의 자리가 별 능력이 없는 미망인 투레게네 카툰에 의하여 지탱 되고 있었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옷치긴은 몽골 제국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쿠릴타이 없이 무력으로 칸의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일어선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음 글에 잇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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