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2746&s_no=12746&page=1
라고 제목은 거창하게 써놨는데, 별건 아니고 일단 저 같은 학식이 낮은 사람이 가볍게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상기 링크의 이야기는 일단 말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아틸라가 고구려 인이다, 뭐 훈족이 고구려 계통이다 하는 소리는 훈족이 편두를 했다는 사실로 부터 무너집니다만 그건 넘어가고 다들 아실 이야기이지만 러시아가 고문서를 탈취한 이야기만 간략하게 미흡한 글솜씨임에도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일단 연도나 지역은 두리뭉실하면서 화물만 명확한 신빙성이 무척 낮은 증언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을 차지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첫째로 내몽고 지역은 청의 국경지역입니다, 즉 상시적으로 인접국 여기서는 러시아와의 마찰이 빚어지는 곳이며 지속적으로 이주 장려 정책을 행할정도로 안정되지 못한 땅입니다, 그러한 곳에 고서 수장고와 같은 국가의 중요한 시설을 배치할까요? 조선시대 실록을 비릇한 사서들의 보관 장소를 선정 기준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듯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상고사라고 하는 그 사서들이 거쳐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들의 교체 과정을 생각하면 이게 사실일 확률은 무척 낮아집니다만 이 문제는 넘어가지요.
둘째로 1912년~35사이 몽골이 러시아의 공산 종속국이었다고 하는데, 일단 이건 절반만 사실입니다,
1912년 몽골의 칸들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독립한 것은 맞는데, 이때는 '소비에트'가 아니라 '러시아 제국'입니다, 5년 뒤인 1917년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시 중국으로 그러니까 중화민국으로 편입되었지요, 몽골이 공산화 그러니까 인민 공화국이 된것은 소비에트에서 내전이 종결된지 1년뒤인 1924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몽골이 지금의 내몽골이냐 당시의 내몽골이냐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마 1912년인가에 맺은 제 3차 러일 협약 그러니까 베이징을 가로지르는 경도를 기준으로 서쪽은 러시아가 동쪽은 일본이 이익을 수탈한다는 그 것을 말하고자 하는것 같으니 당시의 내몽골일텐데, 문제는 소비에트 연방입니다, 왜 고서적을 노렸을까요? 굳이 일본과의 대립 구도가 팽배하던 시기에 병력 아니 백번 양보해서 인력을 내려보낼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장 1924년 레닌의 사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의 행보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대파 숙청, 군 개혁, 경제 개발 정책 등등 이런 어찌보면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보잘것 없는 일에 인력을 투자할 그런 여력이나 있었을지 모르지만 가치도 없습니다.
스탈린주의는 지도자 개인에 대한 일종의 숭배가 따릅니다, 어줍지 않은 잡음이나 불러올 그럴 일도 없을정도로 쓸모없는 쇠락한 옛 국가의 업적에 눈을 돌릴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했다 한들 말이 안되는게 이미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중 문관은 스탈린의 눈밖에 벗어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무관들 역시 빠른 군 내 개혁에 따라 굴라그냐 스탈린이냐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유가 없고 할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냥 그랬다 카더라일뿐이지요.
끝으로 내몽골과 러시아를 잇는 철도는 1949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야 1905년인가에 어쨌거나 개통되었고 내몽골 지역에도 중국과 연결되는 철도는 있었지만 둘을 잇는 철도는 없었으니, 사실이라 친다면 소비에트 정부는 울란우데까지 인력은 말도 안되고 차량을 이용해 이동했을텐데 이 엄청난 작업을 일본에서는 뭐라고 봤을지 외교는 또 조용합니다, 지역이나 소비에트를 넘어 주변국의 언론들도 말이지요.
일제 시대 분서 갱유에 버금가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더 재밌는 것은 시베리아 철도의 환승역이자 몽골, 중국, 러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울란우데는 러시아 혁명 직후는 반 혁명군의 본거지였고, 그 다음은 일본군이 차지했기에 소비에트가 차지한 것은 1920년인가 22년인가 입니다, 23년에 브리야트 인들의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섰으니 아마 23년이 맞겠지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소비에트 측에서 행하는 무분별한 현지 징발 같은 것은 생각할수도 없고 신생국에서 그 만한 여력이 있을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근 군관구에서 차출을 하든 뭐하든 자력으로 가져와야 했다는 것인데 당시 소비에트의 준 자본주의적인 신경제정책 대신 국영산업화를 택하며 혼란스러웠던 경제를 뭐 그 이전부터 혁명의 원인을 생각하면 답이 없습니다만 이 문제를 생각하면 또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지요.
화차로 115량 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화물입니다, 그것도 보관에 특히나 신경을 써야 하는 화물을 어떻게든 몽골 초월을 차량 혹은 인력으로 가로지른뒤 철도에 실어 운송했는데 지금도 열람할수 있을정도로 매우 상태가 양호하다? 글쎄요 저는 별로 현실의 가능성을 높게 쳐줄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