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1. 넥슨?
넥슨의 본사는 일본법인으로, 다들 알다시피. 이미 한국기업은 아니다.
2011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본사를 일본법인으로 변경했다.
여기서 ‘넥슨 재펜’은 본사의 칭호인 ‘넥슨’을 얻게 되고 반대로 한국법인 ‘넥슨’은 '넥슨 코리아’로 변경됐다.
이 때문에 먹튀네 매국노네 하는 말을 듣고 있지만, 현재 국내 게임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봐선,
넥슨이 오히려 현명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한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일본의 다국적기업이라 보는 게 맞겠다.
뭔소리야? 아무튼,
일렌시아,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 대작게임개발에 힘입어.
2009년 던전엔파이터 개발사인 네오플 인수
2010년 서든어택 개발사 게임하이 인수
2012년 프리스타일 개발사 JCE 인수
같은해 EA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피파온라인3 제작 및 배급까지 하며 퍼블리싱 회사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현재 NC소프트의 지분 15.08%를 인수하며 최대주주에 올랐고, 요즘엔 경영참여 입장까지 내세우며
곧 한국은 넥슨 공화국이 돼버릴 지도 모르겠다.
2. 최초. 최초. 최초.
그들이 국내 게임 산업에서 일궈낸 기틀까지 무시할 순 없다.
넥슨은 국내외로 게임업계에서 ‘최초’란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 전까지 온라인 게임은 MUD기반의 텍스트 형식 게임이 전부였다.
바람의 나라가 출시된 후 리니지, 영웅문 등 국산 온라인 게임이 등장할 수 있었다.
넥슨은 퀴즈퀴즈로 국내 최초 부분유료화라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 정책은 쉽게 말해, 게임플레이 할 때는 돈이 들지 않고,
아이템 등을 구입할 때만 돈을 내는 신박한 아이디어였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었다.
PC와 콘솔에만 집중했던 게임회사들과 달리 넥슨은 새로운 디바이스를 찾아낸 것이다
2004년엔 카트라이더가 국내 PC방 점유율에서 최초로 스타크래프트를 뛰어넘었다.
단지 PC방 점유율 따위로 생각하거나,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된 날짜를 생각하면,
e스포츠를 탄생시킨, 게임계의 김연아, 게임 이상의 그 무언가인 그 스타크래프트를,
그것도 국산게임이 추월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2010년 발매된 마비노기 영웅전, 통칭 마영전도
상상력, 도전정신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현재의 넥슨은 ‘최초’란 단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 넥슨은 앞서 말한 ‘최초’들을 만들 때의 초심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3. KAIST
국내 게임업계를 얘기 할 때 카이스트 출신들을 빼먹을 수 없다. 넥슨도 물론 마찬가지.
26세에 불과했던 카이스트 학생 김정주는 천리안, 유니텔과 같은 PC통신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단군의 땅’이란 국내최초 PC통신 게임의 성공을 보고,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알아챘다.
이후, 서울대 재학당시 동기 이민교, 같은 카이스트 출신 김상범,
그리고, 훗날 리니지의 개발자로 유명해진 송재경을 창업멤버로 모집했고, 넥슨을 창업하게 된다
그러나 초기엔 게임회사가 아닌 ‘웹 오피스’라는 인터넷 솔루션 개발 회사였다.
이 때 넥슨은 아시아나항공의 인터넷 예약시스템, 현대자동차 홍보 시스템,
어쨌든,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게임개발에 있었다.
이때 세명의 카이스트 출신을 포함한 넥슨의 초창기 멤버들이 일궈낸 첫 열매가 바로 ‘바람의 나라’인 것이다.
캐쉬카우란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이나 사업을 말한다.
넥슨의 초기 캐쉬카우가 바람의 나라였다. 이 게임이 없었다면 넥슨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배경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여기에 그래픽을 입힌 국내최초의 MMORPG가 바람의 나라다.
세계최초 MMORPG를 논하자면 1991년 네버윈터나이츠와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바람의 나라가 세계최초라는 건 좀 억지이다. 세계가 아닌 국내최초가 맞겠다.
다시 돌아와서, 바람의 나라는 ‘MUD’기반에 그래픽을 입혀 ‘MUG’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지금이야 게임 속 그래픽이 당연하지만, 당시엔 낮은 PC사양, 복잡한 그래픽 개발과정,
비싼 PC통신비용으로
그래픽 온라인 게임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에 첫 발을 내딛은 게임이
바람의 나라다.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 사냥하고, 채팅하고, 물건을 교환하는 것.
물론 초반엔 부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람의 나라는 선풍적 인기를 끌며
어떤 사람들은 바람의 나라를 만악의 근원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송재경은 바람의 나라 개발경험을 살려 리니지를 만들었고,
넥슨은 바람의 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퀴즈퀴즈, 카트라이더 등을 개발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국내 게임의 다각화를 앞당겼다고도 할 수 있고 이 뿌리에 바람의 나라가 있었다.
넥슨 바람의 나라 성공은 그 당시에 한에선, 국내 게임 개발자들에게 단비와 같았다.
당시 개발자들은 패키지게임 만들기 자체에만 전념했다.
게임에 대한 열정하나로,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 매일 밤 뜬눈으로 지새우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게임을 만든다.
그런데 유통 첫 날. 카피본이 용산에 깔리기 시작한다.
게임 잡지사들은 이런 게임을 번들로 배포해버린다.
이런 게임들이 회수되어 ‘쥬얼’이라는 낙인을 달고 ‘세 개에 만 원’식으로 팔려나간다.
개발자가 1년 이상을 애지중지하며 만들어낸 작품이 싼값에 나뒹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게임업체전반이 고사 직전. PC통신이 태동한다.
개발자들은 더 이상 보안, 카피 등의 걱정 없이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메크로 같이 게임수명을 단축시키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긴 했지만, 게임자체가 복사되는 것 보단 나았다.
또, 유통사의 횡포와 불합리한 수익구조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PC통신사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았지만, PC통신이라는 매체를 통해
얼마안가 PC통신세대마저 끝나고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게임개발은 새 로운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 후 엔씨소프트, 태울, 청미디어 등 게임 회사들의 출범으로, 대 온라인 게임 시대가 열리게 된다....
온라인 게임 산업이 발전 할 수 있었던 바탕은, PC통신, 인터넷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배경이 얽혀 있었다.
앞서 말했듯, 한국 게임 개발사들은 무분별한 불법복제와, 불합리한 유통구조에 고군분투 하고 있던 차,
역풍을 맞게 된다. 스타크래프트와 에이지오브 앰파이어 등 대작게임 폭풍이 국내로 들이친 것이다.
바람의 나라와 같은 버팀목 없이 도태 되고 만다. 이 시기에 문을 닫은 회사나, 버려진 게임은 수도 없었다.
여기서 온라인 게임업계에 크게 분 바람이 바로 IMF.
아이러닉 하게도 국가 전체에 슬픔과 절망을 안겨줬던 이 IMF가 온라인 게임업계엔 반대로 순풍이 됐다.
IMF가 터진 뒤 나라 전반에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쳤다.
더 이상 이직을 하기엔 늦었고 음식장사 따위를 하기엔
마음적으로나, 시기상으로나, 경험상으로나 힘들었다.
결국, 이 사람들이 선택한 게 바로 소규모 창업인 PC방.
또 스타크래프트 국내 열풍과 맞물려, 하루에도 수십, 수백여 개의 PC방이 생겨났다.
여기에 게임인구 상승도 IMF가 한몫했다. IMF로 인해 처음으로 청년실업문제가 대두되고,
1시간 단돈 천원에 친구들과 즐길 수 있었던 PC방은 젊은이들의 새로운 모임, 놀이장소로 각광받게 됐다.
이렇게 온라인 게임업계는 경쟁상대의 간소화, 게임인구 급등이란 순풍을 얻었고
이 속에서 넥슨은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란 돛을 달고 순항을 시작했던 것이다.
출처 | http://slid.ee/player?objectid=piGe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