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 최순실 박근혜 일가 측근 등으로 40여년간 이어져온 비밀 세력이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워 인사 · 예산 · 정책 등의 국정 전반을 사유화한 것입니다. 이들은 나라의 향방이 걸린 국정 운영을 ‘주술’에 의존하며 남북 대결을 가중시키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며 민생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최순실 · 최순득 일가 측근만으로는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이 ‘비밀 정부’ 세력이야말로 “반국가단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대통령 대국민사과부터 관련자의 일제 출두, 최순실 늦장 소환, 주요 인사 경질, 책임총리제 검토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비밀 정부, 주술 국정’의 진실을 축소,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라 경제와 민생 위기, 북핵 문제와 4강 압력, 국가에 대한 신뢰와 리더십의 붕괴라는 난국 앞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주권자로서 다음의 7가지 사안을 엄중히 요구합니다.
1.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고 수사를 받으라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법적 자격도 없는 ‘비밀 정부’ 구성원들에게 넘김으로써, 헌법이 규정한 주권재민원리(헌법 제1조2항)와 대통령선거제도(헌법 제67조)를 실질적으로 파괴했습니다. 또한 이미 사실로 드러난 ‘청와대 문건 유출’ 지시 혹은 묵인에 대해 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헌정 질서와 국민 주권을 부정한 대통령은 ‘탄핵’ 당해야 마땅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후임 총리를 임명하는 ‘책임총리제’와 새누리당이 후임 총리를 추천할 수 있는 ‘거국중립내각’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하며 국정에서 손을 떼지 않는 이상, 40여년간 진행되어온 ‘비밀 정부’ 세력을 뿌리까지 드러내고 바로잡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국정 혼란”을 이유로 대통령 하야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혼란 또한 민주주의의 과정이며 오히려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끝내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하야 정국’을 이겨내온 역사적 경험이 있으며, 나라의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만들 수 있는 성숙한 역량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실로 참회하고 하야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서서 성역 없는 수사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2. ‘비밀 정부’의 실체를 밝혀 구속하고 부당 재산을 몰수하라
최순실과 관련자들에게 적용되는 ‘형사 처벌 죄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대통령 연설문을 유출한 ‘공무상 비밀 누설죄’와 청와대 관련 기록물을 유출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 이는 ‘국헌 문란 행위’로 내란죄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둘째, ‘외교상 비밀누설죄’. 최씨의 것으로 밝혀진 태블릿PC에서 주요 외교 정보가 담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셋째,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죄’. 이 PC에는 2012년 12월 28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와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독대 자료가 담겨 있었고, 북한과 국방부의 비밀 접촉 등 국가 안보에 관한 민감한 정보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정부와 공공기관 ‘인사 개입’,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과 자금 모금에 관련된 ‘포괄적 뇌물죄’와 ‘탈세 횡령 배임죄’, 독일로 자산을 이전하는 과정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및 ‘증여세 탈루’ 의혹,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 특혜 입학’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검찰은 ‘정치’가 아닌 ‘법치’에 따라 최씨와 주요 관련자들을 ‘구속 수사’하고 ‘엄중 처벌’해야 합니다. 또한 수사를 통해 ‘국민 세금 남용‘ 및 ‘불법 재산 축적’이 드러난다면 마땅히 몰수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하고 이행해야 합니다.
3. 저들의 암약을 묵인해온 ‘새누리당’ 의원은 사퇴하라
가까이는 한나라당 시절부터 권력을 움직이며 암약해온 최순실 등의 세력에 대해 청와대와 내각, 새누리당 의원들은 “모른다”고 부인해왔습니다. 그러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옆에 최순실이 있는 걸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라 했고, 박근혜 대표 시절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은 “친박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권력 나눔, 즉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 개연성은 없겠는가”라고 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공식적 증언을 통해, 새누리당이 이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묵인하며 야합해왔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애국’과 ‘원칙’의 보수적 가치를 스스로 져버리고, 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국민들의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집권 여당이 앞장서 “자유민주, 법치국가”의 질서를 위배하고, 대통령을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의 역할을 방기했습니다. 이정현 당대표와 지도부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전원은 국민 앞에 자백하고 사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보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4. 정경유착에 공조한 ‘재벌 기업’ 수사하라
지난해 최순실이 설립과 운영을 조종하고, 청와대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했다고 여겨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두 재단은 설립 1달 만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도 하에 53개 기업에서 774억 원대 기금을 모았고, 최씨 일가 명의의 기업 비덱스포츠 · 더블루케이 등을 통해 자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두 재단에 출연한 기금은 삼성이 204억으로 1위, 이어 현대 128억, SK 111억, LG 78억, 롯데 45억 순입니다. 삼성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정유라에게 후원명목의 200억 원대 투자계획을 세웠다는 정황이 있으며, 실제 정씨는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 본인 소개란에 ‘한국 삼성팀’이라 기재했습니다.
두 재단의 기금 출연 당시 삼성은 이재용 회장 승계, SK는 최태원 회장 특별 사면, 롯데는 그룹 전반에 대한 수사를 앞둔 상황으로, 이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경유착의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됩니다. 그러나 수사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두 재단이 불법 정치 자금 조성에 이용됐으며 따라서 이 기업들도 ‘비밀 정부의 공범’이자 ‘차기 집권을 준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특별 수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5. 비밀 정부가 개입한 ‘박근혜 정책 전면 재검토’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제1과제로 내세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거기에 무려 21조 원이라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었고 그것을 좌우하는 ‘창조경제추진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최순실씨의 수족인 차은택씨였습니다. 그리고 최순득의 딸 장유진(장시호)씨도 13조 원이 투입되는 2018년 평창올림픽의 거대 이권을 노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남북 관계’와 ‘국가 안보’ 개입입니다.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의 돌연한 ‘개성공단 폐쇄’ 결정은 “2년 안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최씨 등의 ‘주술적 예언’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통일부는 잠정 중단 의견을 냈으나 묵살당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국민 다수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한일 위안부 굴욕 회담’,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 배치’, 국민감시법으로 악용될 ‘테러방지법’, 친일-독재 역사왜곡의 ‘국정교과서’ 시행 등에도 ‘비밀 정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국회는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술과 이권 개입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정당성 없는 정책의 ‘전면 재검토 및 폐기’를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6. ‘대통령 잠적,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혀라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당시 전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묘연했고 오늘까지 비밀로 감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최순실씨와의 연루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기사로 검찰 조사까지 받은 가토 다쓰야(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씨는 “검사가 최태민, 최순실에 관해 끈질기게 물어봤다”, “두 사람과 관련된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 최대 약점임을 깨달았다”고 밝혔습니다.
‘세월호 참사 하루 전날’ 벌어진 일들은 “분명 무언가 있다”는 국민적 직감과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참사 하루 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씨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에 임명됐습니다. 참사 하루 전, 선장 대신 1등항해사가 선장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참사 하루 전, 단원고와 계약된 선박이 오하나마호에서 세월호로 바꼈습니다. 참사 하루 전, 세월호 선장이 휴가로 교체됐고, 1등항해사 신정훈씨가 입사했습니다. 사고 직후 신정훈씨와 국정원의 통화 정황이 포착됐으며, 이후 그는 살인죄 기소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리고 참사 당일, 짙은 안개로 여객선 10척의 출항은 모두 취소됐고 인천항을 출항한 배는 세월호 한 척뿐이었습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믿기 힘든 루머까지 증폭되고 있는 지금, 관련자와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빨리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7. ‘무능’과 ‘분열’의 야당은 각성하라
결정적 위기 앞에서 그 조직과 사람의 진정한 실력과 품격이 드러납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두 거대 야당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박관천 전 행정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의 인사들, 끈질긴 시위를 이어온 이화여대 학생들, 그리고 여러 언론과 기자들이 ‘비밀 정부’ 내막의 일단을 폭로해왔음에도 야당은 정보력도 판단력도 정치력도 부재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비선 실세’와 ‘국정 농단’ 수준으로 안일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초유의 국정 붕괴 상황을 수습해야 할 두 야당은 이해관계 속에 갈팡질팡하며 ‘분열’했고 대응에는 ‘무능’했습니다. 국민적 요구 속에 ‘대통령 하야’를 내세울 만한 사태임에도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제안을 꺼내 결과적으로 ‘청와대 참모진 사퇴’ 정도로 무마할 빌미를 주었고, 새누리당이 이를 전격 수용하자 어이 없이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치지도자의 ‘말의 무게’는‘실행의 무게’이며 ‘신뢰의 무게’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심화되어온 불평등과 양극화의 분노로 지난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준 국민들은 이러한 야당의 모습에 실망을 넘어 절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야당에 요구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비밀 정부’ 세력이 ‘드러난 꼬리’만 잘라내고 진실을 축소 은폐하기 전에, 나아가 ‘차기 집권 플랜’을 가속화하기 전에, 당리당략을 떠나 ‘대통령 하야’를 이뤄내야 합니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우리에겐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1년 4개월은 향후 한 세대를 좌우할 엄중한 시기입니다. 국민 선출에 의한 ‘합법 권력’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두 야당은 깊이 반성하고 국민이 위임해준 권력만큼 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의 절망, 두 개의 희망
지금도 40년 뿌리의 ‘비밀 정부’와 박근혜 정권의 ‘컨트롤타워’는 냉철하고 치밀하게 이 정국을 주도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주권자의 자격으로 7대 요구를 끈질기게 제기하고, 참여와 행동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힘을 보태야 합니다. 동시에 이런 정세에서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 상황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사건들로 이 사태를 덮으려 하거나,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폭력 충돌로 유도하며 ‘계엄사태’로 몰고 가거나, 남북간 국지전 등의 ‘전시상황’을 조성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깨어있고 성숙하게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의 절망, 두 개의 희망이 우리 앞에 주어져 있습니다. ‘비밀 정부, 주술 국정’이라는 이 절망적 사태는 친일, 독재, 독점 기득권 세력을 일거에 드러내고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와 부국강병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경제만 성장한다면, 돈만 된다면, 원칙도 양심도 정의도 눈감아온 우리 사회 물신주의의 가치관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추악한 인격과 허약한 내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당당히 말해주었으면 합니다. 나쁜 사회에서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인간의 도리와 양심은 지켜야 한다고,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나누어야 한다고, 성실한 노력과 공동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서로 우애를 나누며 힘내서 살아가자고.
또 하나의 희망은, 지금 이 사태가 우리 공동체의 ‘대통합과 화합’의 계기라는 것입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해온 분들께 위로를 전합니다. 10%까지 급락한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 깊은 허탈과 상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헌정 유린의 사태 앞에서만큼은 정치적 책동에 휘말려 서로 분열하고 미워하고 탓하기보다, 보수 진보 · 지역 감정 · 세대 갈등의 분열을 넘어 함께 나라 공동체를 걱정하며 주권자의 목소리를 모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참으로 보기 드물게 ‘좌우 이념 위에 진실 보도가 있다’는 것을 언론이 먼저 보여줬습니다. 보수는 가치 있는 보수답게, 진보는 책임 있는 진보답게, 서로 화해하고 협력한다면 이 춥고 거센 시대의 하늘을 비상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해결은 축소되고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맙시다. 그리 함부로 좌지우지되는 역사가 아닙니다. 멀리 앞을 보는 사람은 정의롭고,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은 자애롭습니다. 봄이 올 때까지, 진정 새봄이 올 때까지 긴 호흡으로 강인하게 함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2016년 11월 1일
나눔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