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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양치기 소년과 개의 모험 2. 도둑놈 소굴
게시물ID : readers_267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모여라꿈동산
추천 : 0
조회수 : 4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0/30 16:18:23

2. 도둑놈 소굴

 

마을 남쪽 구석, 그래버의 집.

 

마굿간을 개조한 집은 곧 무너질 듯 허름하다. 거미줄이 처마에 늘어져 있고 별다른 명패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빈집으로 착각하기 그만이다. 안을 들여다보면 가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양가죽을 덧댄 침대대용 판자 하나뿐이다. 창문틀에 켜켜이 쌓인 먼지가 집주인의 게으른 성격을 대변하는 듯하다. 집주인 그래버는 방구석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윗도리를 가슴근처까지 올리고 손을 바지 안에 넣고 단잠에 빠져 있다. 전형적인 성인 남자의 잠자는 자세다. 풋풋한 얼굴과 지나치게 털털한 그의 잠자는 모습이 대비돼 어딘가 배덕감까지 풍긴다. 그의 침대 곁에는 개 한 마리가 있다. 발을 몸 안에 숨긴 자세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다. 흰색 솜뭉치처럼 보이는 거대한 개다. 길이로 따지면 족히 성인남자의 키 정도는 돼 보인다. 눈이 아래로 쳐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순한 인상이다. 둘은 연신 코를 골아댔다. 그래버의 코고는 소리는 짧고 높은 소프라노 톤이다. 솜뭉치의 코고는 소리는 깊고도 길게 가는 바리톤에 가깝다. 둘이 코고는 소리가 뒤섞이며 그래버의 집에는 묘한 하모니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흠냐흠냐.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사랑하지. . 그럼. , 거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냐.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나야 좋지. 흐흐흐.”

, 멍멍... 으르르릉. , ? 멍멍...”

 

쿵쿵쿵.

 

! 형아!”

 

쾅쾅쾅쾅.

 

오늘 너무 박력 있는 거 아니야 자기? 아니 왜 싫겠어. 좋아 죽지. 흐헤헤헤.”

바우와우. 아우? 아우우.... 아우~~~~~”

 

! 그래버!”

누군가가 발로 문을 뻥 차며 들어온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햇빛에 그래버의 눈이 잔뜩 찌푸려진다. 개도 깜짝 놀란 듯 귀가 쫑긋, 세모 모양이 된다.

 

어떤 놈이야 대체? 얼마 만에 꾸는 귀한 꿈인데 이씨.”

 

짜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본 그래버의 눈 앞 에는 헤벌쭉한 표정의 이안이 서 있다.

 

뭐야, 이안이냐. 얌마.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노크도 안하고 문을 걷어차?”

노크를 안 하긴 왜 안 해. 형이 못 들은 거지. 헤헤. 형 우리 놀러가자. 벌써 해가 산머리에 걸렸다구.”

가긴 어딜 가. 말도 마라. 아침부터 꼰대한테 끌려가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 , 그리고 내가 놀러 다닐 나이냐. 이 형님은 지금부터 바쁘게 할 일이 있으니까 곱게 문 닫고 빨리 꺼져라.”

형이 무슨 할 일이 있어? ~! 양치러 가는구나? 그럼 나도 따라가도 돼? 나 너무 심심하단 말야.”

그래, 양치러 가니까 그만 좀... , 지금 몇시냐?”

지금 9시쯤 됐지.”

뭐야! 에이씨. 완전 조졌잖아 야 순돌아. 일어나. 아 일어나라고. 밥 달라고? 이 얼빠진 놈아. 지금 밥 타령 할 때가 아니야. 이번에도 지각한 거 걸리면 꼰대한테 진짜 작살난다니까.”

 

그래버는 스프링이라도 단 듯이 침대에서 바닥으로 뛰어 내린다. 그의 발길이 닫는 자리마다 쌓여있던 먼지가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다. 그는 서랍을 뒤적이더니 마구를 찾아내 바닥에 엎드려 있는 개에게 마구(馬具)를 던진다. 아니 말이 아니라 개니까 견구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까. 순돌이는 하루이틀일이 아니라는 듯 바닥에 떨어진 견구를 알아서 입는다. 왼발, 그리고 오른발. 순돌이가 견구 착용을 마치자 그래버는 능숙한 자세로 순돌이의 등에 올라 탄다.

 

이안. 문단속 좀 부탁한다. 이랴! 가자 순돌아

!”

 

소년과 개는 쏜살같이 이안 옆을 지나쳐 흙먼지를 일으키며 산길로 달려간다.

 

순식간에 혼자 남겨진 이안은 벙찐 표정이다. 그는 못내 아쉬운지 집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침대에 털썩 걸터앉는다.

가져갈 것도 없네 뭐.”

 

 

에팔로치아 산맥은 대륙 내에서도 험준하기로 악명이 높다. 숲이 무성하고 맹수가 많아서 일반인들이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험심을 주체 못하는 모험가나 맹수가죽으로 한 몫 챙기고 싶은 사냥꾼만 가끔 드나드는 정도다. 루왁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마운틴블루 산은 에팔로치아의 13번째 산이다. 별명은 위도우메이커. 쉽게 말해서 과부제조기. 길이 험한 에팔로치아 산맥 중에서도 마운틴블루의 산길은 거의 미로와 같이 난해하다는 평이다. 절벽 투성이인데다가 안개까지 잦게 끼어 초행자들에게는 절대 진입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런 악명이 오히려 유명세를 타 몇 몇 모험가가 발을 들였으나 결국 하얀 백골로 발견되면서 지금은 외부인이 전혀 찾지 않는 곳이 됐다. 하지만 블루마운틴에서 평생을 산 그래버와 순돌이에게는 그저 동네 뒷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순돌이 위에 탄 그래버는 팔짱을 낀 채로 30도는 족히 돼 보이는 경사길을 달리고 있었다. 웬만한 허리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빨갛고 노란 단풍잎 사이를 한참이나 헤치며 달려가던 그래버는 문득 아침일이 생각이 났다. 양을 팔아 치우다니? 물론 몇 번 떠돌이 보부상 플렉스 영감한테 양을 넘긴 적은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 맹세코 어제는 아니었다. 물론 잠자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제는 올해 들어 몇 번 안 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은 날이었다. 꼰대가 양 머릿수를 착각했다? 그럴 리는 없었다. 마을 재산 문제라면 죽었다가도 귀신처럼 다시 일어날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맹수? 이쪽도 가능성은 희박했다. 에팔로치아 산맥의 맹수들이라면 그 대장부터 쫄개까지 그레버와 순돌이의 악명을 모르는 놈들이 없었다. 양을 물어가려다가 걸리면 그레버는 그저 맹수들을 내쫓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놈들의 본거지를 추적해 들어가 맹수들을 포박하고 눈앞에서 가죽을 벗기고 바비큐를 구워 먹지 않았던가. 물론 짐승들이 아직 살아있는 채로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레버야 말로 에팔로치아산맥의 가장 끔찍한 맹수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은 후로 동물농장에는 맹수 코빼기도 찾아보기 힘든지가 꽤 오래됐다. 그레버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나 말고도 이 산맥에 도둑놈이 있다는 건데? 어떤 간땡이가 배 밖에 나온 놈이 감히 그레버님의 양을 건드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마을의 공동재산이지 그래버의 양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열이 받친 그레버에게 그런 사소한 문제는 이미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레버는 차오르는 분노에 바닥, 아니 순돌이의 등을 때렸다.

 

??” 순돌이는 갑작스런 충격에 당황스런 표정으로 그레버를 쳐다봤다.

뭘봐 임마. 너 오늘 아주 기어다닌다. 발이 보이지 응? 어떻게. 오늘 기강 한 번 잡아볼까?”

, ! 머머멍!” 사람의 말로 바꾸면 , 아닙니다요. 달립니다요쯤 될까. 순돌이는 서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개의 눈동자에는 원망과 두려움의 빛이 뒤섞여 차올랐다. 축 처진 순돌이의 귀가 소슬바람에 낮게 휘날렸다.

 

마을농장이 위치한 산 꼭대기, 소년과 개를 맞아준 건 촌장이 아니라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민들레 홀씨였다. 순돌이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홀씨에 신이 나 초원을 이리저리 폴짝 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태를 살피던 그레버는 촌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때서야 터벅터벅 양떼 우리로 걸어갔다.

 

어휴.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네. 우쭈쭈. 우리 순돌이 힘들었쪄. 난 낮잠 한 숨 때릴테니까 양 잘 지키고 있어라. , 어차피 올 놈들도 없지만. 크크

 

그레버는 우리 옆 움막으로 들어가 자연스레 몸을 뉘였다. 바람은 선선, 햇빛은 적당히 따뜻. 그야말로 낮잠 자기 딱인 날씨였다. 아마 별일이 없다면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지나갈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단조로움이 주는 안락감, 그레버는 이런 생활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아우! 아우! 아우!”

 

그레버를 깨운 건 순돌이의 울음 소리였다. 하울링 세 번이면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내는 소리였다. “늑댄가?” 움막 바깥을 쳐다봤지만 양떼는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순돌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의 위치를 봤을 때 정오쯤 돼 보였다.

 

순돌아~ 아으아으아으

 

그레버의 목소리가 산과 산에 반사되며 메아리로 돌아왔다. 이에 화답하듯 순돌이의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짐작해보건데 1마일(1마일=1.6km)쯤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길 잃은 멧돼지라도 들어왔나? 그럼 오랜만에 포식 좀 하는건데순돌이는 입맛을 다시며 잰 걸음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서 걸어갔다.

 

순돌이 주변에는 예상과 다르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끝없이 펼쳐진 초원뿐이었다.

 

순돌아!”

 

그레버의 목소리를 들은 순돌이는 귀를 펄럭이면서 달려왔다.

 

, 아무것도 없잖아 임마. 나이를 먹더니 노망이 들었나 이자식.”

 

순돌이는 그래버의 바지자락을 물고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너 또 날다람쥐 봤구나? 아냐? 그럼... 딱따구리?”

믕믕

 

순돌이는 아니라는 듯 낮게 짖고는 바닥을 탁탁 앞발로 두 번 두드렸다. 그레버가 자세히 보니 잡초 사이로 희미하게 핏자국이 나 있었다. 잡초를 발로 헤집으니 핏자국은 더 선명하게 마른 강줄기처럼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흐리멍텅했던 그레버의 눈에 별안간 불꽃이 튀었다.

 

이거... 혹시? 순돌아. 이 핏자국을 따라가. 아무래도 니가 양도둑놈을 찾은 거 같다.”

킁킁

 

순돌이는 땅에 코를 박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끊긴 건 오래된 포플러나무 아래였다. 이 나무는 루왁 마을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정 세 명이 팔을 둘러도 다 껴안지 못하는 두께를 생각해봤을 때 못해도 300년은 족히 됐을 것이다. 너무 커다란 탓에 멀리서 보면 마운틴블루산에 혹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집채 만한 그늘이 생겨 그레버도 촌장의 눈을 피해 종종 들리던 곳이었다.

 

이거 대왕 나무잖아. 핏자국이 여기서 끊겨다는 건 하늘로 솟았거나 땅으로 꺼졌다는건데.”

 

그레버는 탐정이라도 된 듯 오른손으로 턱을 잡고 눈을 훽훽 돌리기 시작했다. 대왕나무 뒤편을 살피던 그레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책상 크기 만한 단풍잎 덤불이었다. 산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평범해 보일지 모르는 덤불이었지만 그레버가 보기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대왕나무가 너무 큰 탓에 이 주변에는 다른 나무들의 자랄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햇빛도 토양도 모두 대왕나무가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풍잎이라? 거기다가 잎의 종류도 제각각인 것이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긁어 모아 여기다가 부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헤헤. 여기가 도둑놈 소굴이구만.”

 

그레버와 순돌이는 덤불을 헤치기 시작했다. 덤불을 날려보내니 과연 핏자국이 땅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흙을 조금 파내니 석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 같이 검고 광택이 나는 석판이었다. 흠 하나 없이 말끔한 것이 누군가 인위적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으랴차. 으헉. 뭐야 이거 더럽게 무겁잖아.” 그레버는 석판의 모퉁이를 잡고 들어올리려 했으나 석판은 요동도 없었다. 짱돌로 찍어보았지만 오히려 짱돌이 갈려나갈 뿐 석판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석판과 씨름한 그레버는 분노가 차올라 석판을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왜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어. 난 왜 행복할 수가 없냐구!”

 

그가 쾅 소리가 나도록 석판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 순간 석판에 두 개의 붉은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붉은 점은 점점 커져 이윽고 눈의 모양을 갖췄다. 그리고 매섭게 뜬 그 두 눈은 그래버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1화 골칫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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